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문재완 위원이 지난달 22일 전체회의에서 ‘미디어위원회 운영에 관한 의견’을 문서로 배포하며 언론법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부적절함을 재차 확인했다. 문 위원은 미디어위원회의 법적 지위와 그에 따른 업무 범위에는 여론조사가 포함되지 않으며 민주국가의 대의 원리는 여론조사를 허용하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으며 결과를 반드시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안에 따라 여론조사가 부적절한 세 가지 이유를 내 세웠다.

▲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여의도통신
먼저 여론조사 실시는 미디어위원회의 법적 지위와 업무 밖에 있다는 주장이다. 미디어위원회는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설치했지만 국민에게 직접 책임질 수 없는 조직으로, 위원회의 업무는 헌법과 법률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국회 문방위가 구체적으로 부여한 범위로 제한적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에 따라 지난 3월2일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여야 간 합의문 중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후…”에 대한 문구 해석으로 위원회의 여론조사 권한 없음을 판정했다.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에 대한 문리해석상 여론수렴의 주체는 미디어위원회가 아니라 문방위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것이 위원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의문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근거없는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합의문을 잘못 해석한 것은 문 위원과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다. 합의문 중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을 근거로 여론수렴은 문방위가 전담한다면 대체 사회적 논의기구인 위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며, 지금까지 문 위원이 참석한 위원회의 많은 회의와 공청회는 대체 무엇에 근거한 활동인지 답해야 한다. 합의문은 문방위 아래 사회적 논의기구(미디어위원회)를 둔다는 실체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더불어 논쟁으로 끌어들인 합의문뿐 아니라 사회적 논의기구의 운영에 관한 3월5일 여야 간사 간 합의문도 함께 살펴야 한다. 7개 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명칭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로 하고 위원회 운영은 문방위의 간섭 없는 자율을 보장받으며 논의 결과는 문방위가 입법과정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위원회는 여론 수렴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로서 자율성을 보장받아 지역순회공청회, 전문가 청문회, 토론과 검증, 자료수집과 분야별 여론조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여론을 수렴하여 합당한 합의안을 찾아내는 것이 문방위가 위원회에 부여한 업무이고 권한이라는 해석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다.

다음으로 대의 원리를 여론조사 부적절 이유로 들었다. 우리 헌법에 국민이 직접 국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대통령이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사항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경우와 헌법 개정을 확정하는 경우 뿐이고 국민 다수 의사(경험적 의사)가 국가와 전체 국민에 이익이 되는 의사(추상적 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대의기관(국회)이 국민의 의사를 추정하여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 대기업과 수구 거대신문이 사회공공재인 방송을 소유하는 것이 국가와 전체 국민에 이익이 된다는 추상적 의사라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국민 다수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폐해와 재벌 대기업의 통제 불가능한 위험성을 경험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지켜보면서 더욱 구체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국민 다수의 경험적 의사와 국가 이익이란 추상적 의사가 대립하는 경우 국회의 일방적 결정은 사회가 다양화되고 다원화된 지금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통합을 해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가 주권자를 대신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지만 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인의 견해나 당론을 좇아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선출된 이후에 모든 국민의 의사결정 권한을 백지위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의 소통이 매우 다양하고 용이한 지금에는 직접민주주의를 넓혀가야 하는 것이 인터넷 시대에 합당한 방식이다.

한편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아니란 식의 논리는 언론법을 발의한 한나라당이 법 개정 목적조차 오락가락하면서 그들과 정치적 궤를 같이하는 자들에게 언론권력을 불하하여 우호적인 언론환경 구축을 통한 장기집권을 꾀할 목적이란 것이 드러난 마당에 상식에도 벗어나는 사족이다. 법안 개정에 찬성하는 한나라당 의원과 그 아류들은 전혀 국가 이익을 우선하지 않으며 양심적이지도 않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애국심 덩어리의 양심세력이란 증거가 필요하다.

▲ 지난 3월23일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의도통신
마지막으로 여론조사가 불가한 핵심 세 가지 주장에 관해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혼합해야 하는 경우, 여론조사만이 정책수립 및 법 개정의 유일한 근거로 사용될 우려가 있는 경우는 여론조사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첫째, 다른 사람의 헌법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의 사안에 여론조사가 부적절한 것은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언론법 개정에 대한 이해 충돌자의 소수와 다수를 산술적 숫자로 단순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신문·방송의 겸영으로 이익이 예상되는 자는 소수의 재벌 대기업과 거대신문이다. 이들은 국가의 공적 통제조차 어려울 만큼 우리사회 모든 부분을 조종하고 있다. 이들을 소수라 칭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들의 편향적인 여론형성과 독점으로 피해를 입을 시민과 중소·지역신문, 방송이 다수인가? 문 위원은 이번 방송법의 개정 내용은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일부 해제할 것인지가 담겨져 있다”고 하여 법 개정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소수 특정 집단에 국한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편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한 예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방부는 작년 12월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 이었던 종교적·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위해 병역법, 사회복지 관련법, 향토예비군 설치법 등을 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론 조사 결과 국민의 68.1%가 대체복무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법령 개정을 취소했다. 종교와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더 없이 중요한 일임에도 말이다.

둘째, 정책이 조합되는 경우, 즉 과거의 규제유지 여부, 규제방법 등의 정책 조합은 전문가의 영역이지 일반 시민의 상식에서 합의할 수준이 아니란 주장도 설익기는 마찬가지다. 문 위원이 양해한 대로 국민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지 않고 설문지를 잘 만들면 된다. 다만 걱정한대로 여론조사 현황과 변화 추세를 국민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방법으로 여론 영향력과 언론시장 현황 조사를 실시하는 등 쟁점을 정리할 기본 자료조사를 선행하는 경우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기본자료 조사는 이미 민주당 측 위원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했지만 한나라당 측이 매번 묵살해 버렸다. 유감스럽게도 회의에 성실히 참석한 문 위원이 이런 쟁점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민주당 측 위원들이 여론조사 실시를 주장하여 위원회 운영을 방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마지막으로 위원회 활동이 얼마 남지 않았고 쟁점은 여전하며 불신으로 트집과 말꼬리 잡기로 이어지는 때에 여론조사는 위원회의 유일한 업적으로 비쳐질 수 있고 여론조사만이 법 개정의 유일한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이유다.

여론조사가 정책과 법 개정의 유일한 근거로 사용될 수 없고 위원회의 유일한 업무성과일 수 없다는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여론조사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여론조사가 정책과 법령 개정 여부를 결정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책 결정에 상당한 참고자료로서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며 여론조사가 사회, 인문과학의 한 측정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타당한 주장이다. 언론법 개정이 사안에 따라서 복잡한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대체로 재벌 대기업과 거대 신문의 방송진입 허용 여부가 주요 쟁점이라는 것은 국민들이 판단 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의사는 법령의 개정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서 의미있고 정책과 법령 개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작년 국방부가 여론조사에 따라 대체복부를 위한 관련법 개정의사를 철회한 예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활동 시한의 촉박함으로 여론조사 부적절성을 말하는 것은 위원회 품질을 건드리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전제 조건은 찬반의 주장이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된 후라야 한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합당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문방위에 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면 된다. 우리사회가 언론법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국가적 중대 위기를 맞이한다든지, 국제경쟁력이 추락하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이유는 없다. 기간 만료를 이유로 상반된 의견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허송세월에 참여한 위원들과 위원회의 품위를 손상시킬 뿐이며 향후 갈등과 쟁점을 조정하기 위한 각종 위원회의 의미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론으로 위원회의 향후 운영방안을 한나라당이 발의한 법안을 중심으로 조문별로 수용여부와 근거, 대안 제시 등을 문서로 제출한 후 문건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불가능한 일이다. 쟁점을 판단할 충분한 자료와 객관적인 국민여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서로 주장은 가능하지만 대안은 찾아지지 않는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마지막 업무는 언론과 미디어환경을 판단할 정확한 기초자료를 정리한 다음 이를 근거로 전문가의 도움과 객관적인 국민여론을 바탕으로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어야 문 위원의 바람처럼 위원회가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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