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후보 조사에서 전체적으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의 두드러진 지지율이 갈수록 굳어지는 추세다. 선거구도가 유동적이라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두 후보측에서는 대세론을 거론할 법하다. 역대 대선을 보면 조기에 형성된 대세론이 당내 경선과 본선에서 그대로 굳어진 경우가 있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당내 소수파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으로 당내 경선을 돌파하고, 본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당내 경쟁을 거의 거치지 않았고, 본선에서도 시종일관 우위를 유지한 후 승리했다.

조기 대세론에 안주하다가 뒤집힌 대표적 사례는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다.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에 일 년이 넘도록 이회창 후보는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이인제 후보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선두를 달렸다. 지금 반기문과 문재인 두 사람의 위치와 비슷했다. 그러나 언더독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절대적 열세라는 관측을 깨고 당내 경쟁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을, 본선에서는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승리했다.

일반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과 당내 경선에서 당원 및 지지자들이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르다. 전자는 이미지, 비전, 업적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가 중심이다. 후자는 상대후보를 이길 능력, 즉 경쟁력이 우선이다. 2001년부터 노무현 후보는 당내에서 '사람은 참 좋은데 이길 수 있을까'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결국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함으로써 이인제 대세론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한 일간지는 경쟁력의 관점에서 이인제 대세론의 허와 실을 이렇게 적었다.

“이인제 대세론'은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담보될 때 속도를 받는다.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히면 탄력을 잃기 십상이다. 여권 내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위협하는 안티테제는 '영남후보론'이다. 사실 "영남에서 일정한 표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이회창 총재에게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영남후보론은 상당한 공감대를 낳고 있다. 영남후보론자들은 영남지역에서 이 최고위원에 대한 거부감이 여느 후보보다 강하다는 점을 내세워 '이인제 대세론'을 반격한다.”(경향 「탐조등」 2001.5.21)

당시 이인제 대세론의 근거는 DJP의 연장인 '호남충청연합론'이라 할 수 있다. 직전 대선에서 그 위력을 확인한 당원과 지지자들은 충청출신 이인제를 통해 그 재현을 기대했다. 여기에 노무현, 김중권 후보의 '영남후보론'이 안티체제로 등장했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호응하면서 이인제 대세론은 무너졌다. 실제로 노무현 후보는 스스로 '영남후보론'이라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역대 부산 선거의 득표율을 들어 자신이 영남에서 상당한 득표력이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지난 8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환한 표정으로 박수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8월 부산을 찾은 문재인 전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내년 대선에서 PK(부산ㆍ경남) 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호남에서는 예전처럼 90% 전후의 압도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안정적인 득표가 가능하다.”(중앙, 2016.8.23.)

달리 말해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가 없더라도 PK의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이면에는 PK에서 상당한 득표력을 가진 자신이 누구보다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 숨어있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전제로 하는 원조 '영남후보론'과 차이가 있지만 영남의 일부인 PK지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제2의 영남후보론'이라 이름 붙일만 하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PK지역 득표율은 각각 60.9%(300만 표)와 38.2%(188만 표)이다. 표 차이는 111만 표이다. 전국적으로는 108만표 차이므로 문재인 후보가 PK에서 50%를 득표했다면 간발의 차로 이겼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제2 영남후보론'의 배경이다. 지난 대선에서 38.2%를 득표했고, 총선에서도 선전했으니 다음 대선에서 50% 득표를 겨냥하는 것이 허황된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같은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얻은 호남 득표를 살펴보면 계산이 간단하지 않다. 당시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는 89% 득표율로 박근혜 후보보다 250만 표를 더 얻었다. 문재인 후보가 말하는 '안정적 득표'가 어느 수준을 가리키는지 모른다. 80%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만으로 호남에서만 30만 표가 날라간다. PK에서 얻는 50%의 득표는 무용지물이 된다. 70%나 그 이하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호남 유권자들과 교감하는 수도권의 호남 출향인들까지 감안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1년 "영남후보론자들은 영남지역에서 이 최고위원에 대한 거부감이 여느 후보보다 강하다는 점을 내세워 '이인제 대세론'을 반격"했다. 이제 문 전 대표는 호남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후보보다 강하다는 점을 내세운 타 후보의 공격으로부터 '문재인 대세론'을 지켜야 하는 처지다. 2002년 이인제 후보가 '제2의 호남충청연합론'을 방어하는데 실패했듯이 지금 문 전 대표가 '제2의 영남후보론'을 방어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문 전 대표의 '제2의 영남후보론'에 대적할 안티테제를 제시한 후보는 아직 없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다시 '호남충청연합론'을 들고 나올지 모르겠다. 이미 흘러간 물이다. '수도권승부론'이 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의 거부감이 없고, 영남 특히 PK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수도권에서 득표력을 갖춘 후보가 이긴다'는 정도의 주장이 되겠다. 누가 그 주역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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