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2억 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선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OOO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이는 지난달 22일 KBS 1TV 9시 뉴스 앵커의 첫 멘트였다. 검찰 외에는 알 수 조차없는 KBS의 이같은 단독 보도가 나가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앞 다퉈 이 기사를 인터넷과 방송, 신문에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노 전 대통령이 받은 1억짜리 시계는 어떤 제품?>이라는 기사를 통해 해당 시계의 실물 사진까지 실어가며 문제를 삼았다.

이 보도를 접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망신 줄 목적으로 이런 내용을 흘렸다면 나쁜 검찰”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도 “노 전 대통령 측이 기분 나빴을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며 “서면진술서를 보내고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를 닫는 상황에서 검찰 관계자가 그런 사실을 흘렸다면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빨대(취재원을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라며 “색출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 기획관의 이같은 반응은 검찰이 보더라도 이 보도에 대한 정보제공이 순수한 의미보다는 노 전 대통령을 모욕 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이뤄졌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 지난달 22일 KBS 1TV 9시 뉴스 방송화면
그동안 노 전 대통령 측은 여러 차례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근거는 검찰에서 의도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을 향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지난 26일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검찰-빨대-언론은 혐의를 사실로 확정했다”며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판결은 법정 밖에서 내려졌다. 증거는 언론이 아니라 법정을 위한 것인데, 왜 언론 플레이로 전직 대통령을 망신 주는 정치적 기동을 해야 했는가?”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안타깝게도 “빨대를 색출하겠다”던 홍 기획관의 발언이 나온 지 정확히 한 달만인 지난 23일 인터넷을 즐겨했던 노 전대통령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로그아웃했다. 이를 계기로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 대해 언론을 이용해 ‘도덕적 흠집내기’식 수사로 일관, 결국 죽음으로 내몬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한 검찰의 혐의 내용 흘리기에 편승해 검증 없이 중계방송하듯 해온 언론들에 대해서도 쓴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들은 또 다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때만 되면 나오는 언론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시큰둥해 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는 일부 언론들의 속보이는 보도 행태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자 그동안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비아냥 대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보수 언론마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앞다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반면 이른바 명품 시계를 단독으로 보도했던 공영방송 KBS는 이와는 상반되는 보도 태도를 보여 시민단체 등의 눈총을 받고 있다. 서거 당일부터 방송 분량이나 보도 방향, 기획 등에서 MBC 등 타 방송사와 비교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가령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부의 덕수궁 분향소 통제 관련 방송 3사 보도’ 논평에서 “KBS는 지난 23일 ‘경찰이 분향소 천막을 압수하고 차벽으로 통행을 가로막으면서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보도, 사태를 실랑이 정도로 다뤘고 현장의 상황을 단순 나열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비단 KBS만이 받을 일은 아니다. 검찰의 입만 바라보고 혐의 내용을 검증하려는 노력은 뒷전으로 미룬 언론 모두가 해당된다. 앞으로도 호외를 발행하거나 신문 1면을 장식할 대형 사건은 계속 일어나게 돼있다. 아무리 공기관의 발표내용이라 하더라도 항상 의문을 갖고 이를 확인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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