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다. 추모와 애도의 시간은 절정에 오르고 있고, 무수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다. 슬픔과 동정, 미안함과 분노, 냉소와 비난이 노무현이란, 이제는 없어진 이름에 맺히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 시각, 동행했다던 경호관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진술이 충격적이다. 경호관은 경찰 조사에서 세 차례나 진술을 번복하였다. 결국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 시각, 경호관은 그 자리에 없었다고 27일 오전 최종적으로 기자들에게 밝혔다.

결국 네티즌수사대가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인터넷을 떠돌던 ‘타살 의혹’ 등의 네티즌 발 음모론이 노골화되어,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 점점 그럴싸한 개연성을 갖춰나가고 있다. 허당스런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의혹’인지 ‘음모’인지 모를 ‘사실’인지 ‘진실’인지 ‘거짓’일지 모르는 이야기들에 탄력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서른 개가 넘는 의혹들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져 포털 토론 게시판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담긴 기사 댓글에도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 네티즌들이 제기하고 있는 '타살의혹' ⓒ 다음 캡처
의혹들은 구체적이고, 심증을 동하게 만든다. 사고 현장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하는가 하면 당시 언론매체의 보도 시각까지 체크하고 나섰다. 그 중에서 사건 경과에 대한 경찰의 1차 발표를 토대로 시간을 재구성한 의혹은 섬뜩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매체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보도가 송고된 시간이 사망 시간을 앞선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이 해당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네티즌수사대의 의혹제기는 꽤나 구체적이다.

음모론은 경찰의 무능함에서 꽃피는 대중심리이다. 경호관의 진술 번복으로 상황은 더욱 꼬여가고 있다. 조갑제 같은 이는 아예 <조갑제닷컴>을 통해 “경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한 것은 그 경호관이 투신 당시 옆에서 그 과정을 목격하였다는 진술을 하였기 때문인데 그 경호관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사건의 진실이 흐려진다”며 “유일한 목격자란 이가 거짓말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자살 단정을 보류하고 일단 ‘추락사’로 중립화시켜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살에 의한 추락사일 가능성은 현재도 높지만 失足(실족)에 의한 추락사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한치의 의문도 없이 死因(사인)이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으면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유언비어가 난무할지 모른다”며 “‘경호관의 최후 목격 증언은 거짓말’ 그렇다면 自殺(자살) 단정을 일단 보류하고 보강증거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 언론들도 중구난방이다. 경찰 발표와 경호관의 진술, 그리고 몇 안 되는 목격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재 상황 속에서 경호관의 진술이 뒤바뀌자 부잡스럽기 그지없는 딱한 처지가 됐다.

▲ 경호관의 진술 번복에 따른 언론들의 서거 경위 ⓒ 네이버 캡처
이제 이틀뿐이다. 이틀 후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다. 영결식을 이틀 앞두고 갑작스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그 자체를 둘러싼 ‘의혹’들이 증폭되고 있다. ‘음독’ ‘투신’ ‘자살’ ‘실족’ 거기에 ‘타살’까지.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저 ‘의혹’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을 시간과 결국, 그렇게 밖에 남지 않을 시간들이 아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화합’과 ‘화해’일 뿐이라며 떠들어대고, 경찰을 동원하여 ‘추모’까지 막아나서는 무리들의 괘씸한 일주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어지럽다.

그렇다. 경호관의 진술을 믿고 있던 경찰은 계속해서 진술이 번복되자 제대로된 수사 결과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의혹’으로 시작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가 마지막 가는 길에 이르러서도 ‘의혹으로 치닫고 있는 꼴이다. 경찰은 ‘음모론’을 낳고 기른 토양이자 주인이다. 지금 일련의 상황 속에서 누가 경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덕수궁 시민분향소에 늘어선 경찰 버스가 ‘아늑하다’고 하는 경찰청장을 모시고 있는 불행한 현 시점에서 사실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소시민들은 ‘의혹’만 쌓고 있을 뿐이다.

경찰 수사는 믿을 수 없이 허술하고, 검찰 수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이다. 그래서다. ‘혐의’와 ‘의혹’을 구성할 뿐 뚜렷한 ‘증거’와 ‘원칙’, 이에 바탕한 ‘진실’은 요원할 때가 많다. 지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타살 의혹’ 역시 제 역할과 책임, 원칙을 방기한 공권력에 대한 배신감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허나 지금이라도 경찰과 검찰이 놓았던 정신줄을 챙길 수 있을까는 미지수다. 불신과 배신의 역사 속에 과연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네티즌들이 제기하는 무수한 ‘의혹’이 더욱 어지럽다.

돌아가련다. 다시 앞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더라도 돌아가야 하는 ‘진실’ 속으로 말이다. ‘알았을 것이다’는 혐의로만 해석될 뿐, 구체적인 상황과 적절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금품 수수 수사도 어떤 ‘의혹’에서 시작된 무엇이다. 세상은 그 자체로 ‘음모’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죽음은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도 ‘화합’과 ‘화해’를 강조하고, ‘정치적인 색깔’을 뺄 것을 강요하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진실’을 되찾는 과정이 어쩌면 ‘음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검찰이 확인되지 않는 피의 사실을 줄줄이 흘려대고, 언론매체가 덥석 그 미끼를 잡아 물었던 상황에 대한 회의, 추모를 방해하는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배신과 분노, 이 모든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결별점 앞에서 ‘의혹’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 ‘의혹’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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