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사진 속 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 미소 짓고 있었다. 지난 23일 오전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행렬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곳곳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표정은 무거웠고, 침울했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보였다. 분향소에서 오직 영정 사진 속 노 전 대통령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장면1. 서울역 분향소

25일 오전, 옛 서울역사 앞에 설치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민중가요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상록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의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특히 가수 안치환씨의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노랫말은 오늘 분향소의 흐느낌을 더욱 구슬프게 했다.

▲ 25일 오전 시민들이 옛 서울역사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송선영
“서럽다 뉘 말 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 꿈이라 뉘 말 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안치환 글·곡>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가슴 한 쪽에 근조 리본을 달고, 손에 가지고 있는 하얀색 국화를 영정 앞에 놓고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할 말조차 잃은 듯 했다.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보며 오열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이 경호원에게 남긴 마지막 말, ‘담배 있나’ 때문인지, 담배를 준비한 시민들의 모습이 잦았다. 시민들은 담배 한 갑 혹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영정 앞에 두기도 했다.

조문을 한 뒤에도 복받치는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시민들은 상주단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유 전 장관은 울고 있는 시민들의 손을 꼭 잡으며 애써 위로했다. 한 시민은 상주단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미리 준비해 온 검은색 봉지 안에서 소주 한 병을 이들에게 전했다. 조문을 하면서 유독스럽게 울던 한 20대 여성은 헌화를 한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한동안 분향소를 떠나지 못했다.

▲ 한 시민이 조문을 마친 뒤 유시민 전 장관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송선영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이날 서울역 분향소를 찾았다.

한 전 총리는 기자들과 짧은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다하셨고, 자발적으로 일고 있는 추모 열기와 국민 뜻을 받들어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검찰 책임론이 일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지금은 애도기간이고 제가 장례위원장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입장을 말할 수 없다”며 “이는 국민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장면2. 덕수궁 분향소

덕수궁 주변,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이 나무에 붙은 대자보를 보고 있었다. 대자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가 적혀 있었는데,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23일 일부 언론이 이같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서 조작설’이 일자, 경찰을 비롯한 일각에서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대자보 가장 밑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앞으로는 애석하네 비통하네 하면서 뒤로는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시민들이 전임 대통령을 위해 마련한 분향소를 부수고 빼앗아간… 인간으로서의 도리조차 저버린 지 오래인 금수만도 못한 패륜 정권과 유서마저 편집해 왜곡하려는 파렴치한 언론에 분개한 시민 드림”

▲ 25일 오후 덕수궁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송선영
오늘도 경찰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덕수궁 앞 분향소 주변을 경찰 버스로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 23일, 24일처럼 시민들의 조문 행렬을 위협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으나, 덕수궁 입구 근처만을 허용한 채 그 주변을 여전히 차단했다. 시청광장 주변을 경찰 버스로 막은 것도 여전했다. 이런 가운데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 가며 분향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덕수궁 분향소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문하러 온 광화문 주변 직장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장을 입고,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이들의 행렬은 덕수궁 앞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까지 이어졌다. 광화문을 지나가는 많은 직장인들의 가슴 한 쪽에 검은색 근조 리본이 달려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하는 덕수궁 돌담길 근처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아예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아, 혹은 그 주변에 서서 영상을 보던 100여명의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고, 몇몇은 눈이 빨갛게 된 채 훌쩍이기도 했다.

▲ 25일 오후 덕수궁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절을 하고 있다. ⓒ송선영
장면3.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 앞에는 유독 언론사 취재 차량과 취재 부스가 많았다. 다른 분향소에도 취재 기자와 카메라 기자 등을 비롯한 취재 인력과 장비가 있었으나, 서울역사박물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다. SBS, YTN 등은 생방송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작은 생중계 부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유독 이곳 분향소에 언론사 취재진들이 많았던 데는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많이 있었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안에 설치된 분향소는 숙연하고 엄숙했다. 다른 분향소에서는 상주단이 국화꽃을 시민들에게 전달한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의장대가 격식을 갖춰가며 시민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줬다.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많았으나, 유독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이들의 행렬에 눈에 띄었다.

▲ 25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안에 마련된 분향소에 양복을 차려 입은 이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송선영
이날 현 정부 고위관리 가운데 한승수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비롯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강재섭 전 대표, 이상득 의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이 분향소를 찾았다.

아이를 안은 채 서럽게 울면서 분향소에 들어오던 한 아이엄마는 하얀색 국화꽃을 영정 앞에 놓고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이렇게 늦게 찾아뵈서 정말 죄송합니다. 생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셨을 그 외로움이 얼마나 견디기 힘드셨을까요. 이제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네요. 정말 우리에겐 든든한 지도자셨는데. 그 말을 너무 늦게 전해드리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해요. 너무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 시민들이 남긴 방명록. ⓒ송선영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