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책적 판단은 하지 못합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광주지역 공청회 한나라당 측 공술인으로 나온 이종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분쟁조정팀장의 말이다. 정책적 판단을 하지 못하면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의견을 공청(公聽)하는 자리에 왜 나왔을까?

▲ 지난 20일 광주광역시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미디어위 지역 공청회 모습
공청회(公聽會)에 대해 브리태니커 사전은 “국회나 지방의회의 분과위원회·행정기관·공공단체 등에서 중요한 정책의 결정이나 법령 등의 제정 또는 개정안을 심의하기 이전에 이해관계자나 해당분야의 전문가로부터 공식석상에서 의견을 듣기 위한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공청회에 참석한 공술인이라 함은 “공청회 따위에서 이해관계가 있거나 학식, 경험 따위가 많아서 의견을 말하는 사람”(국립국어교육원 국어사전)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청회에 공술인 자격으로 나와서, 법안에 관한 ‘의견’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최근 한나라당 추천 일부 공술인들이 이처럼 법안에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 있다.

지난 15일 주제별 공청회에서도 이종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에 관한 전문가적 의견을 묻는 질문에, 앞서 이종민 팀장과 동일한 말을 한 바 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게시물의 삭제에 대해 의견을 묻는 야당측 박민 미디어위원의 질문에 이종육 위원은 “저는 명예훼손 부분에 있어서 담당한 적이 없다. (담당) 심의위원들이 적절히 판단했을 것이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자기 업무가 아니라서 답하기 곤란하다는 이종육 위원의 발언은 이날 공청회에서 계속됐다. 야당측 강혜란 위원이 ‘쓰레기시멘트와 관련해 게시글 삭제를 명령한 방통심의위의 조치’에 관해 질문하자, 이 위원은 “방통심의위는 심의와 조정이 분리되어 있다”며, 자신은 분쟁조정부에 있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아 답변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이종민 방통심의위의 분쟁조정팀, 이종육 방통심의위 명예훼손 분쟁조정부 전문위원은 모두 방통심의위 소속으로 분쟁조정과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여야 추천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위원회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가 위원회라는 이름을 빌려 정치적 통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기관의 인사가 여당 측이 추천하는 공술인 자격으로 나왔다는 것은 여당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고유 업무인 심의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가중시킬 수 있다.

100일 간의 한정된 기간 동안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에 대한 전문가와 국민 일반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이처럼 ‘정책적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인사들을 공술인으로 추천한 것은 공청회에 대한 한나라당측의 인식의 정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적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고작 나와서 하는 얘기라고는 “(분쟁조정부) 업무 소개나 하고 가겠습니다” 정도인데, 국회가 지난해와 올해 초 심한 홍역을 앓으면서까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출범에 합의한 이유가 고작 방통심의위 업무 소개나 들으려고 한 것인지 한나라당은 자문자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관의 인사를 공술인으로 추천해 업무소개를 시키는 수준의 공술을 하도록 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 미디어발전위원회 공청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사회적 질문에도 한나라당은 답해야 한다. 남은 한 달 동안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 법 개정을 위해 다양한 국민의견을 듣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진정성 있고 성실한 자세로 활동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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