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제가 간 거요? 그거 개입하러 간 거 아니라 ‘정보수집’ 차원입니다. 저희들이 개입할 위치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아보러 간 거에요. 정보 수집하는 것이 저희들 업무 아닙니까. 지방에서 보는 시각하고 서울에서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국정원 직원의 말입니다. 지난 주, 저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한 지방을 취재 갔습니다. 소위 수변구역 정비 사업이 벌어지는 곳이지요. 말이 ‘수변’이지, 그곳의 수변은 아주 넓었습니다. 강으로부터 제방까지 거리는 짧으면 700m에서 길면 1km.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4대강 살리기’ 홍보동영상을 보면 지저분하고 울퉁불퉁한 강유역이 ‘푸른 잔디로 뒤덮인 깨끗하고 반듯한’ 형태로 정비된 ‘before/after’ 장면이 나오죠? 넓게 퍼진 수변구역은 그저 허허벌판이 아니었습니다. 수천만년 동안 누적된 기름진 토양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제방을 쌓고 안/밖의 경계를 나누고, 제방 안쪽에 땅을 소유한 사람들을 헐값에 쫒아낸 것은 수십년 안되었습니다.

▲ 4대강 살리기 홍보 동영상 화면 캡처. ⓒ국토해양부
농민들은 지자체에 ‘점용허가증’을 받아 이곳-제방 안쪽의 옥토에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동안은 별일 없었습니다. 5년마다 한번씩 갱신을 받아 약간의 사용료를 내고 농사를 지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농민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한 농민은 말합니다. “나는 TV에서 4대강 살리네 뭡네 할 때, 그게 우리가 사는 지역이 포함되는지 그런 것도 몰랐다니까.” 그리고 올해 3월에서 4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떨어집니다. 5년이 다 되어 갱신을 받으러 갔던 한 농민이 “더 이상 갱신을 연장해 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문한 지역농가가 받은 대부분의 ‘점용허가’는 올해 말, 12월31일까지입니다. 농민들은 아우성입니다. “아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작년에 수천만원 들여 하우스 시설을 왜 했겠는가.”

답답한 것은 군청 담당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토해양부 산하에 만들어졌던 ‘4대강 기획단’은 벌써 군 단위까지 내려와 만들어졌습니다. 만들어진 방식도 여기저기 관련부처에서 인력을 차출해 만든 중앙의 방식과 똑같습니다. 그냥 전에 하천이나 수도 관련 담당 공무원들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지역 △△군 4대강 기획단’을 만드는 것이지요. “소문으로는 여기다가 자전거 도로하고 생태습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설계 같은 것은 서울 쪽에서 하고 우리는 농민들 보상만 맡은 건데….”

기한만 있고 마스터플랜은 엉성하니 민심은 흉흉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국정원이 수습에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받은 명함을 보니, 국정원 특유의 ‘아무런 표시 없고 이름과 연락처만 있는’ 그 명함이 맞더군요. (그런데 이 명함은 어디서 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그냥 알아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국정원 직원 2명이 이 마을에 왔는데, 같이 방문한 두 사람의 명함 서체가 서로 다르더군요.) 이 국정원 직원들은 마을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도 청취하고, 사진도 찍어갔습니다. “잘 해결될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국정원 직원들은 돌아갔습니다만 웬걸 함흥차사인지라 결국 마을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 집단 민원시위를 가겠다고 결정한 것이죠.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 뒤입니다. ‘며칠 뒤면 청와대 사람들이랑 다시 내려갈 텐데 왜 경비까지 들여가며 올라오시냐, 그렇게 하면 밉보일 수도 있다.’ 달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듣는 쪽에선 이건 “올라와서 집회하면 재미없다”는 협박입니다.

그나저나 앞의 국정원 직원이 한 말은 맞는 말일까요? 현재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내 보안정보는 위에 언급된 5가지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생존권을 걱정해 대책위를 결성한 농민들의 활동이 공산주의나 대정부 전복을 노리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주옥같은 말들을 쏟아내는 정부이니 얼마나 기상천외한 논리가 나올지. 어쨌든, 이번 취재와 관련해 제가 접촉한 국정원 직원들은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니 만큼 큰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 너무 비판적으로 쓰지 말아달라”고 읍소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정파를 떠나 국가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적 재앙이 될지는 머지않아 판명나겠지요. 당장 보상금 몇 푼 받고 쫓겨날 처지에 놓인 주변 농민과 같은 피해자나 더 이상 없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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