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에게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닉네임은 '미라클 두산'이다. 결정적인 순간 믿기지 않는 집중력과 파워를 발휘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전 승부를 일구어내면서 붙여진 닉네임이다. 달리 말하면 팀의 전력이 그다지 압도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승부를 연출한다는 의미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도 정규시즌을 힘겹게 3위로 마감하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체력을 소진했지만, 정규시즌 1위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차전 패배 뒤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기적 같은 우승을 일군 바 있다. (물론 상대팀 라이온즈의 주력 투수들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전력에서 이탈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지난해 우승뿐만 아니라 박철순이라는 괴물 같은 에이스가 군림했던 프로 원년 (1982년)을 제외하곤, 베어스는 1995년 기적 같은 정규시즌 우승의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에서도 벼랑 끝에서 극적인 부활을 통해 우승을 거머쥐었고, 2001년에는 승률 5할을 간신히 넘기고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친 끝에 당시 정규시즌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던 라이온즈를 4승 2패로 제압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6 KBO리그 케이티와 경기 승리를 거두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두산 선수들이 화려한 불꽃놀이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우승할 때마다 기적 같은 승부를 자주 연출했던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4회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1989년 단일 시즌이 시작된 이래, 정규시즌에서는 단 한 차례(1995년)만 정규시즌 패권을 거머쥐었다. 심지어 팀 창단 역사상 정규시즌에서 단 한 번도 80승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베어스는 정규시즌에서만큼은 압도적인 강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는 우승 이후 바로 다음 시즌에서는 포스트 시즌 진출과는 거리가 먼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1982년 우승 직후 1983시즌에서는 44승 55패 1무 (승률 0.444, 최종 순위 5위), 1995년 우승 직후 1996시즌에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전년도 디펜딩 챔피언이 다음 시즌에서 꼴찌를 기록하는 흑역사를 기록했다(47승 73패 6무, 승률 0.397). 2001시즌 우승 직후 2002시즌은 그나마 이전보다는 양호했는데 그래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하였다(66승 65패 2무, 승률 0.504, 최종순위 5위).

기적 같은 우승은 차지해도 왕조와는 거리가 멀었던 두산 베어스의 올 시즌은 새로운 시험대였다. 지난 시즌 초보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던 김태형 감독의 지도력이 과연 어떻게 팀을 이끌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팀 공격력의 핵심이었던 김현수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였다. 스토브리그 동안 별다른 전력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승으로 인한 팀 전체의 심리적 해이가 우려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두산 김재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현수가 2015시즌 일궈낸 WAR (Wins Above Replacement :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은 6.023이었다. 팀에 6승 이상의 가치를 제공했던 김현수는 팀 내에서 가장 높은 승리기여도를 기록했었다. 6승 이상의 가치를 지닌 김현수의 공백은 무척이나 커 보였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김현수가 일궈낸 승리기여도는 같은 포지션 (좌익수)에 기용된 김재환이 메웠다. (WAR 5.521) 여기에 박건우 (WAR 4.33)와 오재일 (WAR 4.16)이 지난해 기록했던 승리기여도 대비 거의 3승 이상 더 많은 공헌을 했다. 둘이 합쳐 6승 가까이 더 늘어난 기여도 덕분에 베어스의 공격 옵션은 한결 풍성해지고 두터워졌다.

김현수의 빈자리가 김재환, 박건우, 오재일 등에 의해 메워진 것도 모자라 상대 배터리에 주는 위압감의 스트레스가 3배 이상 늘어났다. 투수진에서는 KBO 리그 역사상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지난해 부상으로 정규시즌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포스트시즌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던 에이스 니퍼트는 올 시즌은 정규시즌부터 강한 면모를 보였고, 9월 25일 현재 역대 외국인 투수 최다승 타이인 22승을 기록했다. WAR은 5.856으로서 팀 내 투수, 타자 통틀어 최다 승리 기여도이다.

베어스가 가장 화끈하게 투자하며 영입한 FA 장원준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특유의 내구성과 꾸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2011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15승 고지에 올라섰고, WAR은 5.68로서 니퍼트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승리기여도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올 시즌 새롭게 합류한 외국인 투수 보우덴 (17승, WAR 4.4)과 베어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유희관 (15승, WAR 4.1) 등이 선발 마운드를 굳건히 지켰다.

두산 베어스가 KBO리그 최초로 한 시즌 15승 이상 투수 4명을 배출하게 됐다. 왼쪽부터 더스틴 니퍼트, 유희관, 마이클 보우덴, 장원준. [연합뉴스 자료사진]

원투펀치로 뛸 수 있는 투수들이 무려 4명이나 포진하고 있는 두산 선발 마운드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 선발진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이 나란히 18승 기록)을 능가하는 위력을 떨쳤다. 선발진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2011년 니퍼트가 팀에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외국인 투수 파트너를 만난 부분이다. 2012년 마무리로 활약했던 프록터를 제외하고, 2011년 페르난도, 2013년 핸킨스, 2014년 볼스테드, 마야, 2015년 마야, 스와잭 등은 전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사실상 존재감이 전무하였다.

그러나 올 시즌 부상에서 회복한 니퍼트는 국내 리그 합류한 이래 커리어 하이시즌을 기록했고, 여기에 보우덴이란 확실한 선발투수가 합류하면서 베어스의 마운드는 엄청난 도약을 이루었다. 여기에 좌완 듀오 유희관과 장원준은 리그 최고의 좌완 선발투수 자리를 다툴 정도의 활약을 펼치면서 베어스 마운드의 오랜 고민이었던 좌완투수 기근현상을 말끔히 해결하였다.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6 KBO리그 케이티와 경기 승리를 거두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두산 김태형 감독이 관중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는 본래 팀 컬러가 빠른 기동력과 견고한 수비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기존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한 채 막강한 선발진과 타선이 전력에 힘을 보태면서 두산 베어스의 전력은 10개 구단 중 가장 독보적인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고민이었던 외국인 타자 부분도 올 시즌 새로 합류한 에반스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 주면서 고민을 말끔히 덜어주었다. (WAR 3.094)

두산 베어스의 견고한 인재 양성 시스템은 올 시즌에도 위력을 발휘 중이다. 팀의 주축타자인 김현수의 이적과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였던 정수빈의 컨디션 난조로 인한 공백은 어느 새 김재환과 박건우가 자연스레 메웠다. 여기에 후반기부터 틈틈이 주전으로 출전 중인 국해성도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외국인 농사 성공, 견고한 인재 양성 시스템 등이 어우러진 베어스는 올 시즌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한국시리즈에서 베어스가 여전히 압도적인 전력으로 임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어느 팀이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선택되어도 힘겨운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산 베어스의 올 시즌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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