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5월 한 달간 부산, 춘천, 광주, 대전, 인천 순으로 총 5회에 걸쳐 지역 공청회를 개최, 지역민을 위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이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과 기대는 대단해 부산에 이어 지난 13일 개최된 춘천 공청회에서도 많은 지역민들이 ‘생업에 종사해야 할 평일 낮’이라는 엄청난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공청회를 찾아 250석에 달하는 방청석을 가득 채웠다.

공청회 이후 논의과정조차 없어…‘하나마나’ 공청회, 국민들 ‘말하나 마나’

차이는 있지만 여·야 공술인은 물론이고 이날 어렵게 자리를 찾은 일반시민들은 미디어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공술인의 공술 시간도 다소 길어졌지만 방청석의 질의와 의견 제시가 쇄도해 공청회 시작 4시간30여분이 지난 오후 6시30분이 지나서야 마무리 될 수 있었다.

▲ 지난 13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개발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디어위 지역 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질의를 하고 있다. ⓒ미디어위 화면 캡처
그러나 이토록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된 지역 공청회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다. 이날 공청회를 찾아 열심히 의견을 진술한 공술인의 의견도, 시간이 부족하도록 쏟아졌던 일반 시민의 의견도 미디어위원회의 논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애초에 공청회를 기획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지역민의 의견을 반영할지 정하지 않았다. 그냥 공청회는 입법 절차의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미디어위원들에게 잘못을 묻고 싶지 않다. 다만 국민들이 너무 순진한 것을. 그렇다면 지역 공청회에 대한 미디어위원의 관심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현재까지 2회에 걸쳐 지역 공청회가 진행되는 동안 미디어위원의 출석률은 절반 이하다. 괜찮다. 속기록이 있으니 후에라도 열심히 읽어보면 지역민의 민심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부산 공청회 이후 방청석의 질의 내용은 고사하고 공술인의 공술 내용조차 미디어위에서 제대로 거론된 적이 없다. 공청회 자체의 목적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역시 그냥 공청회일 뿐이던가.

지역공청회가 진정으로 민의를 수렴하는 장으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미디어 위에서 어떻게 수렴하고 반영할 것인지 논의되어야 한다. 공술인들의 공술내용뿐만 아니라 방청객들의 질문과 공술인의 대답을 기록하고, 미디어위는 또 방청객의 질문과 의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등을 발표하는 백서 형태의 보고서가 결과물로서 지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없이 단순히 듣고 끝나는 대답없는 공청회라면 더 이상 개최의 이유가 없다.

‘지역’은 고려하지 않는 지역 공청회

공청회 횟수도 문제다. 인천을 포함해 총 5회에 불과한 지역 공청회는 대구, 울산, 경주를 비롯한 영남권 대표로 부산에서 1회, 원주, 강릉, 속초를 비롯한 강원권 대표로 춘천에서 1회, 전라도 대표 광주 1회, 충청도 대표 대전 1회 뿐이다. 같은 영남이라 해도 대구와 부산은 지역색이 다르다. 그럼에도 영남권을 대표해 부산에서만 공청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지역민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처사이다. 다양한 지역 여론을 수렴한다면서 각 도(道)의 대표도시만 찍고 다니기 급급한 일정이다. 그럼에도 공청회 횟수를 늘리는 것에는 묵묵부답이다.

공청회에 나오는 공술인도 지역을 배려하고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부산 공청회에서 여당 측은 주정민 교수(전북대 교수)가 모두발제를 맡고 강경근(숭실대 교수), 유의선(이화여대 교수), 이윤길(동아대 교수)로 구성되어 4인 중 3인이 부산과는 관련없는 인물이었다. 춘천 공청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모두 발제를 맡은 정윤식(강원대 교수), 노기영(한림대 교수), 안민호(숙명여대 교수), 이수일(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구성돼 4인 중 2인은 타 지역 인사였다. 평균 절반 이상이 타 지역 인사이고 중앙 출신 공술인도 절반이상인지라 당연히 발제문은 물론 발언에서도 지역성과 관련한 언급이 없다.

지역공청회의 목적은 지역민에게도 미디어법안을 널리 알리고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인데 지역 공청회에 대한 홍보가 너무 미흡하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미디어위 홈페이지조차 공청회 개최 이틀 전에야 비로소 춘천 공청회 상세 일정이 올라와 미디어위가 과연 국민적 관심을 유도하고 지역민에게 공청회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했다.

부산공청회에서 보여준 준비 소홀과 형식에만 치중한 미디어위의 소통의식 부족은 결국 ‘공청회 파행’의 결과로 치닫게 했다. 춘천 공청회에서 조금 나아진 부분이 있다면 그나마 의견은 다 듣고 떠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듣는 데만 그치는 공청회는 어렵게 공청회를 찾아 의견을 진술한 공술인과 지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이다.

공청회에서 어떠한 의견이 나왔고 미디어법 개정안에는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국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형식만 공청회인 그냥 공청회에 나온 무수한 국민들의 의견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질 뿐이다. 이제 이틀 후면 광주지역에서 또 다시 세 번째 미디어위 지역공청회가 개최된다. 오늘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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