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신문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듣고, 주변 사람들도 이구동성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지난 2월에는 직원 월급을 50퍼센트만 지급했다고 하니, 사정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잘 모르지만, <한겨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두 신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진보·보수, 서울·지역의 차원을 떠나 신문산업 일반의 위기상황이고, 이는 외국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경향신문, 한겨레만이 걱정이라고 접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지역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처한 현실도 두 신문만큼이나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내부 식민지 구조에 상응하는 구조화된 무관심에 질려 있는 상태에서,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에만 쏠리는 관심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지 모른다. 죄송스럽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이해할 내공은 없고, 평상시 좀더 관심을 가져왔고 또 친분 가진 사람도 좀 있는 경향신문으로부터 시작해보자.

▲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 ⓒ미디어스
뭐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향신문 위기(탈출)의 논의를 좀더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무엇보다도 책임있게 해보자는 생각이다. 공론화하자는 말이다. 외부에 대해 쉬쉬하면서 사내에서만 끙끙 앓거나, 외부자의 입장에서도 사석에서 듣고 그냥 흘리는 식이 아닌, ‘그들’의 고통이 아닌 ‘우리’의 고민으로 문제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정말로 위험하다. 경향신문이 위험하면, 한국의 언론=정치=민주주의도 따라서 위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경향신문의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정치의 복원을 기원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게 봐야 한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미래가 달린 경향신문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세, 위험한 경향신문을 보호·구제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에 생각 있는 사람들이 바로 뛰어드는 게 맞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지혜를 다 짜내고 그래서 창의적 해법을 창조해 보자.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경향신문 안정화 프로젝트를 당장 가동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소리, 당연한 이야기라고 실망했다면, 다시 한번 죄송스럽다. 최문순 같은 의원은 당장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신문의 공공성에 주목하고, 신문 구독료를 연간 최대 50만원 선에서 특별 공제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5월 중에 발의할 예정이란다. 지난 월요일 아침 창동역에서 4호선을 함께 탄 공공미디어연구소 조준상 소장의 말을 들어봐도, 역시 그답게 이미 오래전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오고 있었다. 그뿐인가? 행동하는 네티즌들도 빠트릴 수 없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부수를 늘이는 노력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상관없이 그 의의를 짚어줘야 한다. 이런 등등의 움직임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괜히 뒷북치듯이 끼어들어 경향신문의 위기를 공론화하고 위기탈출의 해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 얼마나 같잖아 보이겠는가? 그런 욕을 받아도 싸다고 인정하고, 아마추어다운 호기로 공개 제안을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그리고 한겨레가 지닌 특이한 가치 보존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테스크 포스를 긴급하게 구성하자!

‘진보적 신문의 공공성 보호를 위한 테스크 포스’라고 이름붙일 수 있겠다. 이 사회적 테스프 포스에는 당연하게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경영진과 기자, 노조 대표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내부에서는 쉽게 조절·조정 가능하지 않은 쟁점들을 공개적인 테이블에서, 외부의 평가·판단을 통해 해소해 나가야 한다. 테스크 포스에는 시민사회, 진보적 미디어·언론운동단체들도 말 그대로 그림을 갖고 들어와야 한다.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이라는 좋은 연대의 틀이 중대 역할을 맡으면 될 것이다. 여기에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생산적 연구역량이 결합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언론정보학회 등 비판적·진보적 의식을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이다. 이 테스크 포스는 지금까지의 조중동 반대·적대·안티의 운동과 지상파 중심의 공영방송 보호·사수·지킴이 운동에 덧붙여, 혹은 이 둘에 앞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민주/정치적 가치를 보존할 구체적 비전, 다각적 프로그램을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 ⓒ한겨레
혹 상황을 싹 파악하고 해법을 잘 마련해 놓은 게 있나싶어 인터넷을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경향신문의 위기극복, 한겨레의 위기탈출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마음이 급하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의 해결책 마련이 어찌 그리 간단한 일이겠는가. 그렇다고 지금처럼 푸념하고 걱정한다고 사태가 풀리겠는가? 힘들지만 버텨보면 어찌 되지 않을까 싶지만, 과연 그럴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아닌가! ‘지금까지도 그래왔는데’ 라고 하기에, 전혀 다른 상황으로 들어선 것 아닐까? 방심과 타성, 게으름이 치명적일 수 있다. 현 상황은 한 치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당장 모여 문제를 정하고 함께 답안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정리하고 방안을 토론하는 테이블을 잽싸게 구성하자. 자기 구제의 전략과 계획 없이 ‘신문기금 조성’ 가능성만 쳐다보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 옳지 않다. 국가정책이나 광고자본이 아닌, 사회책임에의 호소가 살길, 갈길이다.

두 진보적 일간지가 처한 경영의 문제는 언론노동 조건의 문제로 직결되고, 후자는 다시 지면의 톤이나 색깔, 질의 문제로 비화된다. 대중적 교통, 사회적 여론, 민주적 정치의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여론 다양성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듯 신문 생태계는 미디어 생태계, 그리고 나아가 사회 전반적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경향신문을 살리고 한겨레를 구하는 프로젝트는 언론 운동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선한 선택, 필요한 조치다. 사회적 기업을 살려야, 건강한 의식의 언론노동자들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저널리즘 질서가 설 수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저널리즘의 위기를 경영의 문제와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무엇이 답인지, 답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역부족이라 모여서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분투 중인 저널리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많은 이들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응대를 기대한다.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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