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사랑 이야기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수없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처음 <박쥐>를 보았을 때는 아니 남의 돈으로 이렇게까지 실컷 해도 되나, 하고 깜짝 놀랐지만 보다 보니, 이것은 사랑 이야기였던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손가락 사이로 움켜쥐어질 것 같은 펄펄 끓는 선지 피를 한번 마셔 보고 싶었던 사람은 피를, 무엇에든지 채울 수 없었던 끝없는 갈증이 있는 사람은 갈증을, 분출하지 못한 욕망이 있는 사람은 그 욕망을, 사랑하는 사람 옆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러므로 그와 아무리 친했건 어쨌건 그 사람을 지워서라도 사랑하는 그 사람 내 것 만들고 싶었던 욕심 품어 본 적 있던 사람은 그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는 욕심의 기억을, 이 세상 것 아닌 것 같은 힘을 손에 넣어 스파이더맨도 어마 놀래라 할 정도로 건물을 이리저리 넘어서 뛰어다니고 싶었던 사람은 아 저런 거 나도 갖고 싶다 하는 부러움으로, 목마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던 사람은 순식간에 그 혹은 그녀가 일 보는 화장실로 침입할 수 있는 그 힘에 감탄하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 참 미안한 일이었다고. 참 잔인한 일이었다고. 순진한 오빠들에게 했던 잘못의 기억들을.
물론 거짓말해서 누구 죽여 달라고까지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거짓말은 숱하게 했었다. 태주(김옥빈)는 있지 않은 일을 지어내고 상현(송강호)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끝내 제 남편까지 저수지에 묻어 없애게 하는데, 그건 다 그녀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 기분만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지루한 데는 장사 없다.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고 평소와 다름없이 마작을 즐기던 이웃에 얼결에 끌려온 의사에 그냥 차 몰고 지나가던 별 상관없는 온갖 사람들까지 피 빨리고 욕조 위에 빨래처럼 거꾸로 매달리고 죽어 엎어지는 그 복잡한 난리통의 이유는 다 태주가 심심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지루한 데는 장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그의 엄마가 소리쳐 부르는 2층 바로 아래서 상현의 바지를 내리고, 불쌍한 사람 돕는다고 굳게 믿고 코마 상태의 환자 앞에서 뜨겁게 신음하며 그의 품에 안긴다.
그 철모르던 시절에 뜨겁게 상처 입히고 뜨겁게 상처입으면서, 서로 피를 빨고 또 빨리면서 목을 조르다가 또 조이고 하면서 그렇게 질긴 세월 살아내지 말고 차라리 그때 그 모든 것들이 재로 끝났더면 참 좋았을 것을. 속죄인 것도 같고 징벌인 것도 같은 희고도 용서 없는 태양빛 아래 다 끝나 버려서 식었는데도 이렇게 재만 남은 청춘의 기억에 시달리지 않으면 좋을 것을. 또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랑 이야기. 백치처럼 순수했고 아이처럼 지루했기 때문에 저질렀던 그 모든 일들을 되새기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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