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박쥐> 메인 포스터 ⓒ <박쥐> 홈페이지
<박쥐>는 사랑 이야기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수없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처음 <박쥐>를 보았을 때는 아니 남의 돈으로 이렇게까지 실컷 해도 되나, 하고 깜짝 놀랐지만 보다 보니, 이것은 사랑 이야기였던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손가락 사이로 움켜쥐어질 것 같은 펄펄 끓는 선지 피를 한번 마셔 보고 싶었던 사람은 피를, 무엇에든지 채울 수 없었던 끝없는 갈증이 있는 사람은 갈증을, 분출하지 못한 욕망이 있는 사람은 그 욕망을, 사랑하는 사람 옆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러므로 그와 아무리 친했건 어쨌건 그 사람을 지워서라도 사랑하는 그 사람 내 것 만들고 싶었던 욕심 품어 본 적 있던 사람은 그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는 욕심의 기억을, 이 세상 것 아닌 것 같은 힘을 손에 넣어 스파이더맨도 어마 놀래라 할 정도로 건물을 이리저리 넘어서 뛰어다니고 싶었던 사람은 아 저런 거 나도 갖고 싶다 하는 부러움으로, 목마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던 사람은 순식간에 그 혹은 그녀가 일 보는 화장실로 침입할 수 있는 그 힘에 감탄하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 참 미안한 일이었다고. 참 잔인한 일이었다고. 순진한 오빠들에게 했던 잘못의 기억들을.

물론 거짓말해서 누구 죽여 달라고까지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거짓말은 숱하게 했었다. 태주(김옥빈)는 있지 않은 일을 지어내고 상현(송강호)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끝내 제 남편까지 저수지에 묻어 없애게 하는데, 그건 다 그녀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 기분만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지루한 데는 장사 없다.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고 평소와 다름없이 마작을 즐기던 이웃에 얼결에 끌려온 의사에 그냥 차 몰고 지나가던 별 상관없는 온갖 사람들까지 피 빨리고 욕조 위에 빨래처럼 거꾸로 매달리고 죽어 엎어지는 그 복잡한 난리통의 이유는 다 태주가 심심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지루한 데는 장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그의 엄마가 소리쳐 부르는 2층 바로 아래서 상현의 바지를 내리고, 불쌍한 사람 돕는다고 굳게 믿고 코마 상태의 환자 앞에서 뜨겁게 신음하며 그의 품에 안긴다.

▲ 영화 <박쥐> 스틸컷 ⓒ <박쥐> 홈페이지
지루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무슨 일이라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았다. 태주는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아름답지도 못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거 하나 믿고 저질렀던 온갖 일들이 가시처럼 찌른다. 사람 크기의 인형처럼 상현의 폭 안기는 그 체구처럼 가냘프면서 아름답지도 않고, 텅 빈 것 같으면서 뜨겁고 촉촉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처럼 고혹적이지도 않았으면서 지루하다는 이유로, 사랑받고 있다는 이유로 철딱서니 없는 계집애 시절에 뜨겁게 상처 입혔던 기억들, 그리고 저한테는 복수가 올 줄 모르고 넋 놓고 있다가 하나도 어김없이 도로 입었던 그 상처들을 기억하면 사랑이 너무 지겹다, 지겹다, 지겹다. 그런데 이러다 보면 또 지겨운 게 죄다.

그 철모르던 시절에 뜨겁게 상처 입히고 뜨겁게 상처입으면서, 서로 피를 빨고 또 빨리면서 목을 조르다가 또 조이고 하면서 그렇게 질긴 세월 살아내지 말고 차라리 그때 그 모든 것들이 재로 끝났더면 참 좋았을 것을. 속죄인 것도 같고 징벌인 것도 같은 희고도 용서 없는 태양빛 아래 다 끝나 버려서 식었는데도 이렇게 재만 남은 청춘의 기억에 시달리지 않으면 좋을 것을. 또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박쥐>는 사랑 이야기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랑 이야기. 백치처럼 순수했고 아이처럼 지루했기 때문에 저질렀던 그 모든 일들을 되새기게 하는.


여아낙태 1위의 도시 대구에서 출생,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2 달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운 좋게 입학했으나 7 년만에 졸업, 간신히 영화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나 전국 18만 8천으로 종결 후 좌절,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 등 애써 봤으나 여전히 도시빈민 겸 철거민 상태,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통합과정 전문사에 진학했으나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달마다 신불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휴학 중이며 일단 살아 있으려고 부단한 노력 중. <한겨레신문> <시사IN>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쓴 책으로 <네 멋대로 해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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