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포스터부터가 음산하다. 무언가 불길할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게다가 나홍진이 만든 영화라니 또 한 번 관객들을 오싹하게 만들 무언가가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들게 만든다. 영화 '곡성'은 포스터 문구처럼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무언가에 현혹되어가는 인물들이 맞게 되는 파국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니 오싹한 기운이 이미 내 판단력을 흐려지게 만들고 있었다. 실제 존재하는 마을 곡성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것들에 하나둘 씩 희생되어 가는 마을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의심 가는 외지인 (쿠니무라 준)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요상한 기행을 일삼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연쇄적인 희생사건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딸 효진(김환희)마저 희생된 사람들과 같은 요상한 증세를 겪기 시작하면서 경찰 종구(곽도원)는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또한 외지인의 존재에 대해 목격담을 전달한 무명의 여인(천우희)을 통해 종구는 외지인을 처단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가서 그의 거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딸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떻게 해서든 온갖 수단을 찾아 나서게 되고, 수소문 끝에 신통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모셔와 딸의 회복을 위한 굿판도 집안에서 벌이게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인가 불안한 일들이 엄습할 것만 같은 공포감을 전달하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은 의외로 잔인한 장면의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숨통을 죄여온다.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결국 영화의 결말은 비극이다. 무명씨의 말을 듣지 않은 종구는 이미 자신을 엄습한 공포감에 휩싸인 나머지 가족들의 희생을 막지 못한다. 일광의 반전도 꽤나 쇼킹하다. 일광의 반전을 통해 정체가 의심스러웠던 무명씨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이었음이 드러난다. 일광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외지인과 동일한 형태의 속옷을 입은 모습이 나올 때 일종의 암시장치였지 않나 싶다.

영화는 개봉 이후 다양한 형태의 스토리 분석 글들이 생산되게 하면서 자연스레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분석 글은 영화에서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되었던 뉴스 장면들이었다. 마을에 돼지들이 이상 물질이 포함된 사료를 먹고 집단 도살되고 그 도살된 돼지들이 마을 정육점으로 흘러가 그것을 먹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 씩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며 미쳐가고, 또한 영화 말미에 등장한 뉴스에선 불량 재료가 삽입된 한약이 유통된다는 뉴스가 등장하는데 그걸 먹은 효진이 회복되었다가 또 다시 미쳐가게 된다는 설정이라는 내용이다.

영화 <곡성> 메인 포스터

결국 인간의 비윤리적인 행위가 마을 전체의 비극을 낳게 되었다는 설정의 분석 글인데, 독특하고 참신한 관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으로 단정 짓기엔 외지인이나 무명씨 등의 존재가 극 중에서 일으키는 스토리와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외지인은 영화 막판에 자신의 그 흉측한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하튼 영화 '곡성'은 상당히 독특한 형태의 공포물이었다. 비극의 원인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는 결론 하나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머지 전개과정과 결론은 여러 가지 다양한 추측을 낳게 만들었다.

최근 한국영화의 정형화된 표현법과 스토리 전개공식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국내 4대 메이저 영화사 (CJ, 쇼박스, 롯데, NEW)가 아닌 외국 직배사(20세기 폭스)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점점 소멸되어 간다는 비판이 커져가는 가운데 외국 직배사의 이런 과감한 시도는 한국영화 발전에 새로운 답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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