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예상대로’ 참패한 재보궐 선거와, 그 선거 결과를 ‘국민의 심판’으로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역사적으로 모든 집권세력들이 그랬던 것처럼) 6월 미디어관련법 강행 처리 방침과 촛불 집회에 대한 ‘폭력적 법치’ 등을 포함한 자가당착적 헛발질 처방을 내놓은 것과, 14년 만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가는 스펙터클을 헬기 부감 숏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지난 한 주는 한국사회의 지배적 풍속이 역시 ‘진부한 다이내미즘’이라는 걸 일깨운 시간이었다. 또한 지난 한 주는 생활계의 귀한 이슈나 나름 사유(思惟)가 필요한 이슈들에게는 이들 진부하거나 다이내믹한 대형 이슈들의 그림자에 가린 짙은 망각의 시간이었다.

지난주, KBS에 대한 대법원 기자단의 ‘1년 출입정지’ 조치가 있었다. 기자들이 아니면 대부분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기자사회 내부의 일이니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징계의 강도로 보면 ‘1년 출입정지’는 전례가 매우 드문 중징계다. 내 기억에는 지난 2001년 기자단의 비보도 합의를 깨고 이른바 ‘8·15 방북단 북한 찬양’ 사건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가 1년 동안 통일부 출입정지를 당했던 정도가 겨우 떠오른다. 하지만 대법원 기자단의 이번 조치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징계 수준의 희소성’이 아니다. 이 일은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와 관련한 복잡한 사유거리를 제공하는 드문 사례다.

징계 사유, 정말로 '국민 알권리'와 '사법부 신뢰도'에 근거하나

▲ KBS <뉴스9> 4월 28일자 뉴스 화면 캡처.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KBS가 지난 28일 <뉴스9> 톱뉴스로 ‘삼성 경영권 승계 “무죄”’를 내보냈다. KBS는 “대법원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릴 것으로 확인됐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사건 재판 합의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허태학, 박노빈 전 현직 사장에 대해 무죄 취지로 결론내리고 사건을 파기환송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법조 1진(선임)들로 구성된 대법원 기자단이 KBS 법조팀에게 모든 법조 기자실(대법, 대검,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 출입과 법원·검찰 브리핑 참석을 1년 동안 정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KBS의 보도 행위가 얼마나 큰 잘못이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그 바쁜 와중에 회의까지 열어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미디어오늘>을 보면, 기자단은 KBS의 보도가 △판결 선고 전엔 보도하지 않는 기자단의 원칙을 위배했고 △민감한 현안에 앞서 보도함으로써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신문윤리강령 및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대법원도 같은 날 “선고되지 않은 사건의 구체적 합의 내용에 관한 보도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며 “KBS가 중대한 사법권 침해를 한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전원 합의를 거쳐 결정된 내용은 이미 확정된 판결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대법관의 입으로 낭독하기 전에 보도하는 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 문란에 대한 세간의 믿음보다 사법부의 신뢰에 더 큰 위협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추측보도가 남발되는 것을 우려한 대법원의 자기본위적 판단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신문윤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과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미리 고려해 기자단이 해당 언론사에 단 하루라도 출입정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를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일부 기자들이 공보관으로부터 집단 성접대를 받은 일에 무슨 입장 표명이라도 한 적이 있었다면 이번 결정이 그렇게 의아하지는 않았을 것도 같다.

나는 이번 사태의 뒷얘기를 들으면서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자단 회의에서 제법 많은 기자들이 “나도 판결이 나오기 전에 취재를 해서 전원합의 내용을 알았다면 보도를 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이들 기자는 ‘안다는 것’과 ‘알린다는 것’ 사이에 구조적 함정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물론 KBS를 국민 알권리를 지키려던 순교자로 보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특종보도라는 직업적 욕망이 앞섰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자에게 국민 알권리를 지키려는 의지와 특종을 하고 싶은 욕망은 동기 단계에서 또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결과로서는 아예 동일하다.

기자단이 KBS에 대해 ‘출입정지 1년’의 징계 수위를 결정한 과정을 보면 이런 모순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검 고정 출입 기자 21명이 ‘양형’을 놓고 처음 거수투표를 했을 때는 ‘1개월 이하 출입정지’가 3명에 그쳤다. 그래서 선택항을 ‘1개월 이상’으로 하고 비밀투표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 △1개월 4표 △3개월 4표 △6개월 8표 △9개월 1표 △1년 8표 △영구 제명 0표로 나왔다. ‘6개월’과 ‘1년’이 동수였고, 전체 분포로 보면 ‘6개월 이하’가 ‘6개월 이상’보다 2배 더 많았다. 하지만 ‘6개월’과 ‘1년’을 놓고 최종 투표를 하자 △6개월 11표 △12개월 13표로, 결과가 뒤집어졌다. 이쯤 되면 자기분열 수준이다. 통속적으로 비유하면 ‘사랑하지만 이별’을 넘어 ‘사랑하기에 이별’이다.

이런 행태를 ‘국민 알권리/특종 욕심’ 대 ‘사법부의 신뢰 보호’라는 이항대립적 가치구조의 산물로 보는 건 너무 과분하다. 일부 기자들의 온정주의나 동정론에 맞선 중징계 의견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중징계 의견의 논리는 “법조 엠바고를 떠나 기본이 안 된 보도 태도다. 다른 엠바고 파기 같으면 그나마 타사가 따라가기라도 하는데, 이번 보도는 완전히 다른 회사는 물먹고 마는 형국이 됐다”였다고 한다. 이 언설에서는 KBS에 대한 중징계의 이유가 ‘물을 먹이는 것도 모자라 아예 쫓아서 보도할 수조차 없게 한 악질적 행위’로 수렴된다. 그것은 ‘국민 알권리’나 ‘사법부 신뢰도’는커녕 ‘특종 욕심’과도 거리가 먼, ‘수동적 저널리즘’과 ‘적극적 앙갚음’의 열성 결합일 뿐이다. 처음 온정주의와 동정론도 그 마찰열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15일 동안 포괄적 자동엠바고?

엠바고(보도 유예)는 기자 사회 바깥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얼마나 자주, 넓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문이나 방송만 보면 우리나라 법원은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판결을 한다. 물론 신문과 방송이 재구성한 가상현실이다. 실제로는 주중에 내려진 판결을 비축해뒀다가, 관공서가 쉬는 바람에 기사거리도 덩달아 줄어드는 휴일에 기사로 풀어먹는 것이다. 기자단과 출입처 기관이 합의해서 엠바고 대상을 결정한다. 24시간 ‘실시간’ 뉴스도 실제로는 이 ‘짬짜미 표준시’에 맞춰 시곗바늘을 되돌려놓은 것일 때가 많다. 쉬지 않는 건 ‘국민 알권리’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불철주야 뛰고 있는 언론일 뿐, 법원도 일요일에는 쉰다.

이번 KBS의 대법원 관련 보도 역시 엠바고 파기다.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아직 엠바고 단계로 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대법원의 ‘포괄적 엠바고’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대법원 판결은 자동으로 15일 동안 엠바고가 걸린다. 물론 판결 당일 보도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예외’는 엠바고가 아니라 당일 보도다. 무역규제의 포지티브 시스템과 같다. 대법원은 일주일에 하루만 판결을 하는데, 이때마다 수백건씩 판결이 쏟아지다 보니 기자와 언론 처지에서는 ‘쓰나미’를 겪게 된다. 그래서 판결이 나오면 기자단 간사와 대법원 공보관이 협의를 해서 보름에 걸쳐 순차적으로 쓸 수 있는 판결들을 정한다. 이때 출입기자들도 우선 쓰고 싶은 기사들을 골라 엠바고 해제를 요구한다. 그들 나름의 재해 방지책인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언론이 같은날 똑같은 판결 기사를 쓰는, 독자와 시청자 처지에서는 그런 기사를 볼 수밖에 없는 카르텔의 시장구조다.

엠바고가 확정판결 이전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사진까지 서슴없이 공개하는 언론의 국민 알권리에 대한 ‘격정적’ 신념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건 다소 거칠어 보인다. 국가안보나 개인의 명예 등과 관련한 어떤 엠바고는 꼭 필요할 때가 있다. (범죄 피의자 신상정보 미공개 규범도 일종의 포괄적 엠바고다.) 나도 과거에 적극적으로 엠바고를 유도한 적이 있다.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시가 처음으로 뉴타운 개발계획을 수립할 당시, 많은 언론들이 예상 후보지들을 제가끔 앞다퉈 추측 보도하면서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자단 회의를 요구해 서울시의 발표 전까지 예상 후보지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의를 이끌어냈다. (그런데도 한 석간신문이 서울시 발표 전날 엠바고를 깼고, 결국 중징계를 받았다.)

이렇듯 엠바고가 국민의 알권리와 매번 직접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엠바고는 국민의 알권리를 강화하는 뫼비우스의 띠 안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뉴타운 예상 후보지 추측기사를 취재하고 쓸 시간에 뉴타운 정책의 허점과 폐해를 추적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에 부합하는 이치다. 무한 보도경쟁 탓에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주요 이슈가 고만고만한 이슈와 동격으로 묻힌다면 그것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의 일방적 소통구조가 지양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보면 이마저도 ‘계몽주의적 한계’가 뚜렷하긴 하다.) 문제는 엠바고의 ‘남발’이며, 이는 기자들과 출입처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때 나타난다. 엠바고의 남발은 추측보도 남발과 동전의 양면 관계다. 이 둘이 서로를 부추기며 만연할 때 국민의 알권리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삼성그룹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직접 수혜자인 이건희 전 회장과 이재용 전무 부자뿐 아니라 그의 가신들에게까지 무죄를 안긴 대법원 전원 합의부의 결정에 대해 기자들이 들이대야 할 가장 ‘명석판명’한 판단 기준은 뭘까? 복잡하면 질러갈 줄도 알아야 한다. 우선 자기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리는 궤변이 없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이 진부한 다이내믹 사회에서 기자단이 해체되고 기자실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대들은 끝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려는 기자들이 아닌가. 달이 차오를 때까지 유보되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란 무엇보다 기자들 자신에게 통속적 비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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