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적대로 현 지상파 방송이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유 규제 완화로 인한 대자본 투입이 만병통치약일까? 지상파 방송사 경영 위기는 외부적으로는 광고시장 침체로 인한 지속적인 광고매출액 감소, 내부적으로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제작비의 증가 등으로 인해 비롯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함께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 유료매체와의 경쟁구도 등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은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산업적인 시각보다 공익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방송사 경영 안정화도 좋다지만 단순히 소유·진입 규제 완화로 대자본이 투입되면 핑크빛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기대만으로는 개방하기엔 위험하단 얘기다. 보다 정확하고 분명한 근거와 수치를 가져오면 그땐 또 몰라도….

전반적으로 대기업, 신문사, 통신의 자본이 방송에 진입하면 경영 안정화를 기인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 또한 소유규제 완화로 새로 진입하는 대기업과 신문사들이 방송 사업에 진출하면 콘텐츠 사업 확장 등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새로 진입하는 대기업과 신문사들이 콘텐츠 산업에 투자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해외사례로 유추해 보면, 외국 콘텐츠, 특히 미국의 콘텐츠의 유입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 지난 3월 1일 한나라당의원 100여명이 '미디어법 개혁' 등이 적힌 손팻말을 붙여놓고 국회의사당 본 회의장 앞 점거농성에 돌입했다ⓒ미디어스
소유·진입 규제 완화가 아닌 ‘제한’이 세계적 추세

또한 방송사 소유·진입 규제완화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은 잘못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히려 매체 교차 소유권 규정을 운용하는 등 여론독과점 방지를 위한 다양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을 세계적인 추세로 보아야 한다. 영국의 ‘머독’조항으로 불리는 시장점유율 20%이상인 전국지의 방송사 겸영 금지 조항, 일본의 매스미디어집중배제원칙 등은 ‘허용’이 아니라 여론독과점 방지를 위해 ‘제한’의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 소유규제가 완화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나 호주의 머독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여론 독과점화 현상 등은 한나라당의 여론다양성을 위해 소유·진입 규제 완화해야한다는 논리와 전면 배치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글로벌미디어 그룹 탄생의 비밀

한나라당은 소유 진입규제가 완화되면 미디어 산업의 발전으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육성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한마디로 ‘택’도 없는 주장이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 혹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말해 ‘택’도 없는 소리다. 참고로 시장과 자본력에서 우리보다 규모가 크고, 소유 진입 규제가 완화되어 있으며 신문·방송 겸영이 가능한 일본에서도 글로벌 미디어 그룹은 없다. 이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소유·진입규제 완화로 미디어 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기업이 육성될 수 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그렇다. 대부분의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은 인수와 합병,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성공 등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콘텐츠 해외시장 개척에는 언어의 장벽 같은 구조적 제한이 있어 비영어권 국가로는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의 SONY가 그 많은 욕을 들으면서까지 콜롬비아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을까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1인 소유지분완화를 통해 지역방송에 새로운 자본이 투자되어 지역미디어의 재정이 건실해져 지역미디어의 활성화 및 지역여론형성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 미국의 사례 등을 보면, 거대 미디어그룹이 지역의 소규모 방송사나 신문사를 인수한 후 기존 지역언론사 인력을 대폭 감원하고 중앙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방송과 지역신문사를 운영하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 결과 지역언론이 중앙집권적 언론에 종속되어 결국 지역언론을 말살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또한 소유와 경영의 개념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미디어 환경에서 1인 소유 지분 완화는 대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주주에게 방송사를 넘겨주는 셈이다. 1인 소유지분으로 인한 대주주의 등장?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본다. 일단 자본을 투자한 주주는 반드시 투자한 만큼의 대가나 이익을 바라기 마련이다.

결국 뉴스는 주주의 잘못을 가리는 장치로, 드라마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목매어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나 찾아 돈 버는 장치로 사용될 것은 뻔한 일이다. 1인 주주에게 방송사를 넘기면 단순히 방송사에 영향을 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의 여론과 문화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신문 방송 겸영 영향 조사도 없이 왜 서두르나?

신문의 종합편성채널 소유와 겸영이 신문시장의 여론지배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신문·방송 겸영을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의문을 넘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를테면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한 신문의 경우, ‘신문-종합편성채널’을 결합 판매할 위험성이 높은데 결합상품 도입은 신문시장의 여론 상태에 심각한 불균형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신문과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패키지 광고판매의 가능성도 있는데, 이 역시 결합판매와 마찬가지 문제점을 노출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위험성에 대한 조사도 없이 무조건 열어놓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07년 11월 상위 20개 시장에서 제한적으로 신문·방송 교차소유 정책을 확정했지만, 연방 상원은 지난해 5월 이를 부결시켰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여론독과점이 우려된다”며 초당적으로 반대한 결과이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정부 여당은 무작정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여론 다양성과 산업 진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