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정당 추천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국민위원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인해 자칫하면 남은 50일 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위원회가 출범 50일을 넘기면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주제별·지역별 공청회를 시작했고, 내부적으로 주제별 분과회의를 통해 위원들 간의 숙의의 시간을 갖는 등 큰 흐름 속에서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의 경우 애초에 한나라당이 내놓은 개정안보다 강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국민위원으로서 법안의 긍정적, 부정적 폐해를 함께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론사와 특정 정권에 대한 고집스런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론수렴을 통한 합의의 장으로 기능해야 할 국민위원회에 대한 역할인식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 추천위원들은 자신이 마치 한나라당의 매파인 듯 인상마저 강하게 풍긴다.

지난 5월1일 있었던 국민위원회 제1분과회의(신문방송 겸영 주제)에서 한국언론재단 폐지 등을 주장한 윤석홍 위원의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윤 위원은 한나라당이 내놓은 신문법 개정안 가운데 한국언론재단,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의 폐지를 주장했다. 애초에 한나라당이 내놓은 개정안에 따르면 한국언론재단은 신문발전위원회와 통합돼 한국언론진흥재단이라는 법정기구가 되며, 신문유통원을 재단의 산하 기구로 두게 된다. 또한 신문발전기금을 폐지하고 대신에 언론진흥기금을 설치하도록 했다.

▲ 5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미디어위원회의 ‘신문방송 겸영과 여론 다양성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윤 위원은 언론재단 폐지의 이유로 “전두환 시절에 언론을 길들이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정부가 기자를 교육시키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을 것”, “재단에서 나온 출판물도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다” 등을 주장했다. 만약 윤 위원이 전두환 시절까지 언급하며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걱정했다면, 정부에 의해 남용되는 측면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야당 측에서는 통합안이 정치권력에 대한 신문지원정책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독소조항이 있기 때문에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 위원회 조직으로의 개정안을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의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는 지 경청하고, 자신의 주장의 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함께 논의하는 것이 기본이다.

또한, 기관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고 할 때, 적어도 폐지하려면 순기능적인 측면에서 한국언론재단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방송>을 비롯해 각종 미디어 관련 조사연구와 현황보고서 작업이 어떤 주체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인지의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설령, 미국과 같이 민간연구소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러한 조사를 수행하고 상품으로서 거래하는 방식이 윤 위원의 자유주의 철학에서 이상적이라면 그러한 주장을 명확히하는 것이 위원으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태도이다.

그는 또 신발위와 신문유통원을 두고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언론개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일갈했다. 신발위와 유통원이 그간 정부의 언론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지원정책을 펼쳤는 지 그리고 그 수혜를 입은 신문사가 보조금 지급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도태도가 달라졌는지 여부를 면밀히 내용분석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이날 발표해야 한다. 그는 학자이면서 전문가로 국민위원의 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아무런 연구결과와 증거제시 없이 상대에 대한 공격과 마타도어를 쏟아냄으로써 마치 유사 정치인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윤 위원의 세 기관 폐지 주장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는 이날 발제에서도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정부의 지나친 언론개입”을 우려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역사적으로 언론의 자유 개념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어떠한 내·외부 권력으로부터 언론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주의 철학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이 도입되고 언론 역시 기업으로서 언론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기업으로서 언론의 자유가 언론인 일반의 자유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된 것이고, 결국 시장메커니즘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소수매체에 대한 정부의 공적보조금 제도가 시행되어 온 것이다.

윤 위원이 자신의 자유주의 철학 소신에 따라 입장을 내놓는 것은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정치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격심한 미디어경쟁 시대에 언론기업과 언론인들을 옥죄는 핵심적 요인은 다름 아닌 시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편벽된 시선은 국민위원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언론개입’이 문제라면, 지금보다 더 시장원리를 도입하였을 때 나타날 문제와 정부가 언론을 공적보조 형태로 지원하였을 때의 문제를 적어도 유사한 비교형량을 두고 논하는 것이 또한 학자로서 국민위원으로서 기본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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