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웬만해선 대놓고 하지 않는, 그렇다고 웬만해선 딱 부러지게 답을 알고 있지도 않은 질문이다.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자면, 앵커는 ‘업무’이고 아나운서는 ‘직종’이다. 앵커는 기자가 하기도 하고 아나운서가 하기도 한다. 개국 초 SBS는 영화배우가 하기도 했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채용직종, 즉 기자, 피디, 기술, 행정 같은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교사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앵커는 뉴스 진행자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진행’이다. 정해진 뉴스 꼭지를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건 ‘진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앵커에게는 뉴스 읽기 이상의 역할(또는 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조차도 나라마다 적잖이 다르다. 미국 방송에서 앵커는 뉴스 진행뿐 아니라 뉴스 아이템을 선택하고 편집할 권한 등이 주어진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앵커는 그보다 역할이 적다. 아이템 선택과 편집의 권한은 보도국장에게 있고, 앵커는 편집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앵커 코멘트를 직접 작성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뉴스 앵커의 존재감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좀 부정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방송3사 메인뉴스 앵커들은 웬만하면 국회의원 후보 공천 제안을 받고, 실제로도 많은 앵커들이 금배지를 달았거나 달고 있다. 그만큼 대중 인지도가 높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더라도 뉴스 자체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어떤 앵커들의 오프닝 코멘트(여는 말)나 클로징 코멘트(닫는 말)는 자주 화제가 되기도 한다. 지금 MBC 사장을 하는 이는 현역 앵커 시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라는 오프닝 코멘트로 유명했다.

그러나 앵커 코멘트가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근 1년 새 일이다. 어느 방송 뉴스 두 앵커의 클로징 코멘트는 연일 네티즌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국 방송뉴스가 ‘땡전뉴스’라는 오욕의 협곡을 지나 드넓은 여론의 광장에서 존재감을 입증하는 데는 무엇보다 이런 앵커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넘어선 ‘실체적 진실’을 내비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앵커가 어느날 갑자기 석연찮은 이유로 교체됐다면 그 자체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의 심각한 위기를 방증한다.

앵커 클로징 코멘트가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뿐이라면 그건 더는 뉴스가 아니다. ‘앵커와 아나운서는 어떻게 다른가’를 넘어 ‘앵커와 예능프로그램 진행자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물음에도 답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방송뉴스들은 무척 답하기 곤란한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37호 ‘미디어 바로보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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