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보슬 PD를 잡아둘 수 있는 마지노선은 오늘(17일) 밤 8시이다. 꽉 채우겠지만, 넘기진 않을 테다. 마포대교 추격전을 통해 검거한 이춘근 PD도 48시간을 넘기진 않았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예정된 시간표대로라면, 예정대로 그녀가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겨우’ 가능은 할 듯은 싶다.

비상한 시기이다.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이춘근 PD 체포가 지난달 25일이었다. 그로부터 채 20일도 지나지 않은 이달 13일 신경민 앵커가 잘렸다. 그리고 이틀 후인 15일에 김보슬 PD가 체포됐다. 그리고 김보슬 PD가 체포된 날, 방문진 이사 3명은 엄기영 사장의 해임안을 제출했다. 20일에서 이틀로 그리고 당일로 스펙터클의 주기가 짧고 더 격렬해지고 있다. 상황은 급박하고, 수읽기는 복잡하다.

▲ 지난달 PD수첩 동료인 이춘근 PD 연행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김보슬 PD ⓒ민중의소리
확실히 변모했다. 정권과 MBC의 진지전 양상은 이제 없다. 정권과 MBC 일부 구성원 혹은 MBC 경영진과 내부 구성원의 산발적 게릴라전이다. 그리고 여기에 방문진 이사들까지 끼어들면서, 아예 육박전 양상이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전선은 넓어지고, 분화는 뚜렷해지는 난전 중의 복마전이다. 전혀, 예측 밖의 상황처럼 보이나? 아니다. 존재하던, 그러나 잠재하던 문제들이, 2월 총파업이라는 극점을 분기점으로 차례대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과 MBC의 대치는 작년 여름 이후 계속된 국면이었다. 시사교양국 PD들이 맨몸으로 그 상황을 견뎠고, 노조 역시 2번의 총파업으로 버텼다. 그리고 일단락됐다. 한국사회 주기표에서 100일 뒤인, 6월은 너무 먼 미래이다. 정권은 총력전이다. 검찰을 전방에 세우는 공안적 돌파력으로 치받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2월까지는 나름 ‘비옥한 투쟁’이었다. 대중적 지지와 열기는 뜨거웠고, 전선에 선 시사교양국 PD들은 출중했다. 상황 역시 모든 힘이 노조로 집결되는, 아주 영민한 분위기였다. 얼핏얼핏 위기감이 가시화 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누구도 쉬이 말하진 못했다. 시대적 당위와 함께하고 있었고, 게다가 열정적이기까지 했다. 전반적으로 2월까지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하지만 영원히 지속가능한 열정은 없다. 공수는 반드시 교대되기 마련이다. 3월 초 보도국장 교체를 포함한 조직개편이 단행되면서 탁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MBC가 둔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부발 위기의 등장이었다. MBC 경영진이 본격적인 ‘굴종’을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MBC 위기론’이 전면에 등장했다. 딱히 새삼스러울 게 없던, 부진한 광고매출과 시청률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됐다. PD 긴급체포와 MBC 압수수색이 예고됐다. 막아내긴 했지만 결사항전의 분위기는 확실히 예전만 못했다. 결정적으로 8월 방문진 이사 교체와 맞물려, 경영진이 모종의 ‘음모’를 꾀할 거라는 막막한 위기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후의 상황과 국면은 두 번째 단락에서 읊었던 대로이다. 앵커 교체에 반발하여 중단했던 뉴스 제작도 다시 재개됐다. 오늘, 저녁엔 김보슬 PD가 나올 것이다. 다음 주엔 새로운 앵커가 임명될 것이다. 스펙터클한 상황이 전개됐지만, 아직 손익계산은 불분명하다. 검찰은 조선일보를 통해 MBC의 의도성을 흘렸지만, 양쪽 모두 어차피 치러야 하는 값을 지불한 상황이다. 다만, 뭣도 잃지 않던 MBC가 야금야금 뭔가를 뺏기고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김보슬 PD의 체포는 확실히 검찰의 자충수로 보인다. 충성심이 너무 앞서 상황에 대한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한 검찰이다. 일각에선, 이쯤 되면 서울지검 형사 6부는 ‘안티 이명박’ 아니냐는 농담까지 던질 정도이다. 분초를 다투는 흉악범도 아니고, 단지 조사만 하고 풀어 줄 것을, 결혼은 며칠 앞둔 신부를, 그것도 약혼자의 집 앞에서, 보란듯이 잡아갔다. 누가 봐도 공권력의 과다 남용이다. 그 남용이 대중의 심금을 자극했다. 공권력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다시 한 번 환기됐고, 그렇잖아도 권력의 ‘주구(走狗)’라고 놀림받고 있는 검찰의 흉악스러움만 각인됐다. 검찰의 누가 판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기했다.

물론, 평범한 실존을 위해 존재 전부를 걸어야 하는 언론인이 있다는 현실은 서글프다. 김보슬 PD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을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느덧 어제 오늘 일이 아니잖은가. 특별히 비감해하지 말자. 과잉된 감정은 상황에 대한 지나친 몰입을 부를 뿐이다. 씩씩하게 생각하자. 언제가 되어도 될 체포였다고. 검찰을 왜소하게 만들고, 의연하기까지 했으니 괜찮다고.

▲ 경향신문 4월17일치 2면 기사
예정되어 있던, 김보슬 PD건보다 예민하게 봐야 하는 것은 같은 날 제출된 엄기영 사장의 해임안이다. 전영배 보도 국장이 사퇴하기로 한 상황에서, 엄기영 사장 해임안이 제출됐다. 매우 ‘돌출’적인 상황이다.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정란 이사(상지대 교수), 조영호 이사(전 한겨레신문사 전무), 옥시찬 이사(전 춘천 MBC보도국장)의 ‘돌발’ 행위이다. 그동안, 숱한 고비와 비탈길이 있었지만, MBC 구성원들은 한 번도 엄기영 사장을 정조준하지 않았다. 이는 2월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만 해도 앵커를 자른 최종 결정을 한 사장은 그냥 두고, 주요한 겨냥점과 전선은 전영배 보도국장 그리고 공정보도로 삼았었다. 기이한, 그만큼 복잡한 심사가 섞여있는 구도가 방문진 이사 3명의 행위로 완전히 틀어진 셈이다. 현재 방문진의 이사장은 이옥경 전 내일신문 편집국장이다. 해임안을 제출한 3명과 함께,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인사이다. 해임안이 상정될지 불투명하다지만 너무 낭만적인 예측이다. 상정만 되면, 통과될 가능성이 더 높다. 6월도 지나, 8월 이후로나 예상되던 폭풍이 난데없이 4월에 당도하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은 노조가 한사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다. 엄기영 사장이 최선의 사장이 아니라는 점에는 내부에도 별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그는 분명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아니었다. 차악과 차선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했지만, 자칫 상황이 요동치면 최악의 경우가 초래될 수 있다는 깊은 불안이 MBC를 지배해 왔다. 외부의 고민도 정확히 그 맥락이었다. 엄기영 사장과의 대치는 답보되어 왔고, 현실의 원칙은 유연하게 유예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카르텔이 깨졌다. 일부 방문진 이사들이 해임을 요구하며, 원칙을 치고 나왔다. 덩달아 한나라당 추천 몫의 이사들은 사장과 이사진 동반사퇴를 요구하겠다고 한다.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 모두가 애써 피하던 논란이 이미 벌어진 이상 누구든 모종의 선택을 피해갈 순 없게 됐다. 해임안을 제출한 이사 3인이라고 상황의 ‘예민함’과 해임안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치기로 일을 도모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려 할 것이다. 긴급하게 제출된 해임안에 대한 결정은 아무리 늦어도 다음 정기 이사회인 5월 8일 이전이다.

공영방송의 우울한 ‘오늘’을 상징하는 김보슬 PD는 잠시 후면 나온다. 그 ‘오늘’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우울한 ‘내일’이 겹쳐졌다. 방문진 이사회가 엄기영 사장 해임을 결정한다면 노조를 비롯해 MBC 내부에게 제3의 선택지는 없다.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 뿐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불을 보듯 하다. 곧장 ‘엄기영 해임=원칙’의 프레임이 작동될 것이다. 민주당의 표현을 빌자면, MBC에 병적인 집착을 갖고 있는 정권이고, 앞말은 짧고 뒷말은 하지 않는 게 조중동의 스타일이다. 엄기영 옹호, 그 자체에 원색적 저주가 퍼부어질 것이다. 누구도 엄기영 이후 닥칠 진짜 디스토피아에 대해선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을 것인데, 그 과정의 오욕은 MBC 내부 구성원이 옴팡 써야 할 것이다.

고민스럽다. MBC 내부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대비가 되고 있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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