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강화, 결국 그것이란다. 신경민 앵커는 잘렸고, 김미화는 살아남았다. 앵커 교체는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라디오 진행자 유임 역시 ‘경쟁력 강화’(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제작진의 의견)때문에 받아들였단다. 이번 결정은, 엄기영 사장의 담화문은 오로지 ‘경쟁력’으로만 점철되어 있다.

▲ MBC 엄기영 사장 ⓒMBC
김미화 교체 논란은 차치하자. 일단, 유임되었으니 ‘듣고’ 볼 일이다. 앵커 교체에 관해서만 따져보자. ‘방송 구조 개편 논의와 유례없는 경영 위기로 생존을 위해 시시각각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선 MBC는 왜 난데없이 앵커를 교체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로 든 것이, ‘뉴스의 경쟁력 강화’였다. 두 번째는 ‘보다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을 위해서였다. 듣기에도 송구한, 무색무취한, 그러니까 원론에 가까운 당연한 말씀이다. 그리고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나름 MBC 뉴스 애호가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빼먹지 않고 본다. 시청자 입장에서, 내부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느끼건, 이번 결정을 통해 MBC 뉴스가 좋아진다면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다. 방송가에 사람 드나드는 일이야 나무랄 것 없는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이유만 합리적이라면, 꼭 신경민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앵커 교체,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교체의 근거로 제시된 이유의 문맥들이다. 그래야 앞으로도 MBC 뉴스를 계속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할 수 있다. 다행히, 엄기영 사장의 담화문에는 향후 MBC 뉴스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진실에 가까운 고백이 들어있다. 그 문맥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신경민 앵커로 대표되는 mbc뉴스가 경쟁력이 없으며, 적은 국민의 사랑밖에 받지 못했으며, 덜 공정하고 불균형한 방송이었지만, 외부의 정치적 압력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앞으론 안 볼 테다. 신경민 앵커는 2008년 3월 24일부터 뉴스데스크 평일 진행을 시작했다. 1년이 조금 넘었다. 격변의 시기였다. 촛불이 있었고, 언론 장악 시도가 있었다. KBS 사장이 잘려 나갔고, 신문에게 방송을 주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권과 정권 아닌 것의 대립이 격화됐다. 비상식과 상식의 대결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MBC는 그 격변을, 2번의 파업으로 맞섰다. 시민적 지지를 받는 유례없던 파업이었다.

우선, 신경민으로 대표되는 MBC 뉴스는 경쟁력이 없었는가? 아니다. 그 1년여 동안 신경민은 하나의 지배적 브랜드였다. ‘클로징멘트 폐인’이란 신조어를 만들만큼 폭발적이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까? KBS 뉴스9 앵커가 누군인지 기억나나? SBS 8시뉴스 앵커는? 얼굴을 알겠는데, 딱히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알만 하되 인지는 안 되는 다른 앵커들 사이에서 신경민은 오로지, 그 이름만으로도 앵커의 사회적 존재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
그렇다.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특화된 상품성을 갖고 있는 앵커는 현재 신경민이 유일하다. 그 상품성을 엄기영 사장은 ‘덜 공정하고, 불균형한’으로 독해했다. 틀렸다. 진실을 알면서 일부러 틀렸는지, 아니면 정말 아둔해서 거기까지 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으나, 이유가 무엇이건 그 정도 경영 감각이라면, 시시각각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 시기의 경영자로선 부적격이다. ‘위기’라는 사실 분석이야 남들이 찔러준 이야기이고 결국 경영의 능력은 스스로 적확한 ‘해법’을 찾는 것 일 텐데, 실력이 영 3류이다. 신경민이 독보적 1류 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는 3류들이 판치는 앵커 시장에서 3류는 훌쩍 뛰어넘는 상품이었다.

두 번째로, 적은 국민의 사랑밖에 받지 못했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신경민 때문인가? 다소 복잡한 질문이다. 우선, 적은 국민의 사랑밖에 받지 못했냐는 질문은 어떻게 성립되었느냐가 중요하다.

일일 시청률 기준으로 mbc 뉴스의 시청률이 낮은 건 분명하다. 최근에는 KBS는 물론 SBS에 비해서도 열세이다. KBS보다는 원래 낮았다. 현상을 존재케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60세 이상 시청 인구가 하나의 열쇠를 제공한다. TNS 시청률 조사를 기준으로 최근 60세 이상 시청률을 보면 KBS 일일연속극이 1위(29.7%), SBS 일일드라마가 2위(24.4%)이다. 그리고 KBS 뉴스가 3위(22.4%)이다. 주말 역시 KBS와 SBS 주말 드라마 순위들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9시 뉴스의 지배적 시청자가 누구냐하는 성분 분석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뉴스의 주요 시청층이라 할 수 있는, 성인 남녀로 경우를 넓혀보면, 더욱 확연해지는 것이 있다. 시청률 상위는 각각, 뉴스 앞뒤 시간에 배치되는 KBS(개그콘서트, 일일드라마)와 SBS(일일드라마, 주말특별기획) 프로그램들의 차지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KBS 뉴스의 전통적 강세는 연령 구조적인 근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TV 시청 패턴의 연령적 이유와 근거는 시청률은 케이블에 가면 확연해진다. 방송사 순위가 뒤바뀐다. 케이블에선 단연 MBC가 강세이다. 케이블 시청률을 보면, 오히려 MBC 드라마넷이 부동의 1위인 것을 비롯하여 MBC ESPN과 에브리원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MBC 시청자가 상대적으로 젊다는 결론의 유추가 가능하다.) 결과론적으로, 최근 KBS와의 격차는 전통적 차이에 일일드라마의 오랜 약세가 겹쳐진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

내가 듣기론, MBC 내부의 위기감을 극대화시킨 것은 최근 SBS와 비교라고 들었다. 일차적인 요인은 SBS 뉴스가 전에 비할 바 없이 좋아졌다. MBC의 반성과 분발이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아내의 유혹> 효과를 무시하긴 어려워 보인다.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이다. 더군다나 SBS는 9시 시간대에 예능을 집중 배치했다. 집에서 리모컨 전쟁이 벌어지려는 찰나에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냥 둬, ○○보게”이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SBS 뉴스가 그 어부지리 효과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판단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연령 구조적 선호에서 KBS에 밀리고 개별 프로그램의 인기와 편성 전략에서 SBS에 말린 것인지, 아니면 뉴스의 콘텐츠 자체의 문제인지 말이다. 관련하여 MBC가 어떤 분석을 했고, 구체적 판단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듣진 못했다. 이번 담화문에도 고뇌에 찬 결정이라는 상투적 뉘앙스만이 강조됐을 뿐이다. 적은 국민의 사랑밖에 받지 못한다는 전제가 흔들리면 그 이유를 신경민에게서 찾는 행위 자체가 겸연쩍어 진다.

마지막으로 덜 공정하고 불균형한 방송이었다는 얘기에서는 주어가 빠져있다. 누구에게 덜 공정하고 불균형했다는 말인가? 우선, 네티즌은 아닌 듯싶다. 사회적 상식과 나름의 객관성을 갖춘 시민들도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누규~? 뉴라이트는 그렇게 생각했지 싶다. 한나라당은 MBC에 대한 오랜 피해의식이 있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뉴라이트+한나라당+조중동에게 더 공정하고 균형 있게 하겠다는 말이다. 어이가 없어진다. 이쯤 되면 언어도단이다. 나까지 경영진의 그 선택 자체를 원천, 원색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 평가는 지금 사방팔방에서 이뤄지고 있고,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들이 도저히 납득을 못하고 있다. 지금 경영진의 판단은 외부의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려고 방송사의 간판을 바꿔다는 행위이다.

이래도, 어찌되었건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니라면, 향후 MBC 뉴스의 방향은 분명하다. '연성화' 될 것이다. 민감한 문제는 둘러가고, 정치적 전선에서 후퇴할 것이다. 앵커는 단순한 전달자가 되고, 기자는 아이템의 코멘트 톤을 낮추라는 유무형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표현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기검열과 내부검열이다.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항의할 수도 없지만 표현 자체를 좀먹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일보 전진을 위한 잠깐의 후퇴라고. 그렇다면, 그 진의를 표할 방법이 있긴 하다. 신경민이 너무 강성 이미지라, 부담스러웠다면 차라리 앵커로 '김미화'를 기용하라. 고만고만한 앵커들 사이에서 김미화 만큼 경쟁력있는 '카드'가 있는가? 결국, 신경민을 버린 경쟁력이란 뉴스의 '연성화'일 텐데, 뉴스의 형식 파괴 측면에서나 뭐든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김미화 만한 선택이 있겠는가? 그건, 어렵나? 왜 외부의 정치적 압력은 없다면서,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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