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경민은 교체될 것인가? 아시다시피 필요한 작업은 다 이뤄졌다.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인 '결정'만 남았다. 앵커 선배인 엄기영 사장이 앵커 후배 신경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고심하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누가 뭐래도 외압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지수이다. 경영진은 양방향으로 이뤄지는 외부의 압력이 등가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기계적으로 나누면, 자르라는 압력도 있고, 그건 치욕이라는 압력도 있다. 내용적 차원을 달리하는 쌍방향이지만, 상황은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단순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압력 자체가 불편하다면, 무엇보다 우선 압력의 싹을 그냥 자르는 것은 가장 편리한 선택이다. 고위직의 누군가가 불편하단 이유로 윤도현의 출현이 막히는, 길 건너 KBS의 치졸함이 동시대의 풍경이다.

MBC 경영진이 핑계로 삼을 만한 일들은 널렸단 말이다. 신경민을 내친다고 정권과 뭔가를 도모할 관계로 개선되지 않으리란 건 엄기영 사장도 잘 알고 있을 테다. 멘토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하고, 언론에 낙하산을 뿌리고, 기자와 PD를 잡아가는 정권을 그렇게 허투루 보면 안 된다. 결정이 몇 시간 앞이다. 이제, 외부의 무엇도 신경민을 막아줄 수 없다. 지금 신경민을 둘러싼 긴장은 철저히 내부의 문제이다. 엄기영과 신경민 사이에 놓여있는, 차장급 이하 평기자 133명과 카메라 기자 40명이 신경민과 MBC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투쟁하고 있다.

▲ 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MBC 본사 D스튜디오에서 열린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상대책위원회(MBC 기자회)의 비상총회. MBC 기자들이 "정권의 눈치보는 앵커교체 반대한다"를 외치고 있다. ⓒ송선영
그래서 아직은 미지수이다. 어떤 사장도 앵커 한 명 갈자고 뉴스를 멈추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다. 또 MBC가 그렇게 만만한 조직도 아니다. 게다가 적어도 위기라고 불리우는 국면에서 MBC 구성원들의 조직력과 실행력은 언론계에 정평이 나있다. 제작거부가 제스처는 아닐 테다. 그 진심을 의심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왜 신경민 뿐일까? 시대와 타협하려는, 정권에 굴종하려는 경영진을 불편하게 만드는 보도본부 구성원이 어째서 신경민 한 명 뿐이냔 말이다. 사회부의 김모 기자가, 법원에 출입하는 이모 기자가 아니 평기자 전원이 신경민일 수는 없냐는 의문이다. 카메라 앵글 자체가 근본적으로 모든 기득권을 서늘하게 할 순 없었느냔 말이다. 그래서 신경민의 클로징 코멘트만 빼면 그럭저럭 무색무취하게 갈 수 있겠다는 알량한 판단이 원천적으로 불가하게 할 순 없었냐는 말이다.

앵커 교체는 명명백백한 언론 탄압 아니, 상식에 대한 테러다. 일부 MBC 경영진의 심지가 5공 부역 언론인만 못하다는 말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날선 진영 논리, 상황을 읽는 언어만으로 여전히 2% 부족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신경민이 잘려 나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신경민 이후 누가 되건,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앵커가 앉더라도 MBC 뉴스는 원천 불변하리란 믿음을 줘야 한다.

▲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
얼핏 MBC에 대한 지지로 보이는 신경민에 대한 ‘팬덤’적 열광은 실은 앙상한 실체의 무엇이다. 그의 클로징 코멘트가 사라지면 MBC 뉴스에 무엇이 남느냐는 질문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이 대목에 대한 내부의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엄기영과 신경민을 갈라 놓고 있는 평기자 133명과 카메라 기자 40명이 설령 오늘 이긴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히 봉합된다.

오늘, 공영방송 MBC의 뉴스는 관제방송이 되어가고 있는 KBS 아니 원래부터 민영방송인 SBS의 그것과 얼마나 다르냐 말이다. 더욱 정파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권에 맞서 뭔가를 강하게 주창하라는 것도 아니다. 상식이 테두리 쳐놓은 틀 안에서도, 저널리즘의 기본적 원칙이 충실하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있단 말이다. 그 노력을 MBC 보도본부가 얼마나 충실히 해왔는가를 되짚어야 한단 말이다.

클로징 코멘트는 뉴스의 조그만 부분, 그러니까 코멘트를 읊는 기본적 능력 말고 주관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신경민의 클로징 코멘트가 남달랐던 건 저널리스트로서 시대를 예민하게 보려는 그의 역량과 노력이 거기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위태로울 수도 있지만, 대개 시원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존재론적 실천이 환대받는 배경은 씁쓸하다 그것은 결국 그 이전의 앵커들이 그렇게 예민하게 시대를 마주하지 않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MBC 뉴스 전체에서 그것밖에 볼게 없다는 반응이기도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클로징 코멘트는 뉴스의 정말 일각이다. 기자협회도 말했듯, 신경민 개인을 지키는 싸움은 상화에 맞서는 것 외엔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클로징 코멘트 앞에 놓이는 서른 꼭지 남짓의 공간이다. 지금 엄기영과 신경민 사이에 서있는 기자들의 몫이 그것이다. 기자의 본분은 조직적 투쟁이 아니다. 보도 투쟁이다.

오늘, MBC 뉴스의 변별력, 솔직히 모르겠다. 클로징 코멘트를 제외한, 내용과 구성의 흐름에서 어떻게 공공성이 반영되고 있는지 갑갑하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80여일이 지났다. 재개발의 추악한 단면과 공권력의 만행이라는 본질은 하나도 해결난 것이 없다. 화마의 스펙터클 이후에 MBC는 무얼 했나? 기자가 성접대를 받은 의혹이 고백된 강희락 발언에도, MBC가 뉴스를 2시간 특집 편성한 북한 로켓 발사 날에 골프를 친 박희태에 대해서도 MBC는 침묵했다.

클로징 코멘트는 일종의 테크닉일 뿐이다. 잠깐의 빛나게 하는 영광이다. 변치 않는 지속성, 더 나은 공영방송은 절대 테크닉으론 담보되진 않는다. 기본으로, 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초 체력, 원천 기술, 굳센 의지 따위의 잘 보이지 않는 요소들 말이다. 남들 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하면서 누리기엔, 오늘 MBC의 위상은 너무 값비싸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신경민은 MBC의 오늘이다. 이번만은 제발 오늘 하루만 대충 수습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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