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반공이 국시였거나, 국시에 준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하던 시절에는 북한이 소리만 질러도 한국 사회는 독한 몸살을 앓았다. 모든 것이 까닭 없이 뒤로 회귀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그 징그러운 촌스러움이 재현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 4월5일 SBS <8뉴스> 캡쳐
겸연쩍은 격려이지만, 무엇보다 방송의 공이 컸다. 물론, 일요일이었음이 감안되어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역할을 했다. 물론, ‘로켓’ 발사의 스펙터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다소간의 오버가 있긴 했지만, 나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예정대로 미확인 비행 물체는 궤도 밖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평가와 분석이 지상의 몫으로 남았다. 남북문제의 특성상 극명한 이분법으로 나뉠 것이다. 아시다시피 정치적 이해관계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큰 틀에서는 한미일 공조와 중국, 러시아의 느슨한 연대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역할 게임일 뿐이다. 당장에 한국, 미국, 일본의 속내도 제각각이다.

관련 문제를 의제화하는 국내 미디어의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충돌한다. 조중동이 이 문제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이슈화하냐에 따라 국내 정치 상황도 만만치 않은 파급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로켓은 이미 신호 없이 어딘가에 떨어졌다지만, 비행 물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이제부터이다. 논리를 가장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식의 충돌, 세계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전통적 격돌이다. 향후 구도에서 쟁점이 될 몇 가지를 살펴봤다.

하나, 미사일 vs 로켓 vs 인공위성

▲ 4월5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우선, 이번 미확인 비행물체의 성격이 무엇이냐에 관한 논쟁이다. 앞서 ‘로켓’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위성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일 텐데, 기술적인 차이를 강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대개의 언론이 대체적으로 로켓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된 바는 없다. 이 문제가 이토록 뜨거운 쟁점이 된 것 자체가 이번 미확인 비행 물체를 뭐라 부를 것이냐의 문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장거리 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는 로켓’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애매하고, 정치적이지만 외교적으로 탁월한 작문이 아니랄 수 없는 감각이다. 어차피 실제 그것이 무엇이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투쟁이다. 북한조선중앙통신은 ‘시험통신위성 광명성 2호’라고 부른다. 미사일이냐, 로켓이냐, 인공위성이냐? 과학자는 논쟁에 개입하지 않을, 그러나 과학 논쟁인 정치적 공방으로 뜨거울 것이다.

둘, PSI라는 의지의 딜레마

5일자 중앙선데이는 청와대 핵심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는 즉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로켓 발사가 유력해진 오전 11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NSC, 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이번 로켓 발사를 ‘도발적 행위’라고 규정했지만, PSI 전면 가입은 아직 시기가 아니라며 유보했다. 관련하여, MBC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가입방침은 독자적으로 이미 절차가 진행 중이고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현 상황에서의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가입이 유보됐지만, 현 정부는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가입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PSI 가입은 지난 참여 정부 때 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미국 주도로 2003년부터 시작된 PSI는 북한, 이란, 시리아 등을 주로 고강도로 압박하는 국제공조체계이다. PSI 가입이 어떤 문제가 될는지는 분명하지만, 가입의 실효적 효과로 우리가 무얼 얻게 될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하게 된다면 한국은 북한과의 사실상 단절을 국제사회에 선언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가시적으로 개성공단이 사라질 것이고,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대리하여 북한과 교섭하는 후진적 질서로 퇴행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로켓을 쐈으니, 우리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창하는 호전 성향의 언론들이 부추길 것은 자명하다.

▲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4일 열린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 ⓒ청와대
셋, 일본의 요격 여부에 집착하는 호전성

애당초 일본은 로켓이던 미사일이던 요격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했다. 일본의 경계는 북한이 쏘아 올릴 무엇이 자국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일본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다각적 제스처를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취해왔다. 일본은 요격하지 않았다. 상황을 두고 일부 언론이 일본을 조롱하는 위험천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내심 일본도 국내 정치 상황의 불안을 해소해보고자 요격 제스처를 취했던 것이지, 요격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의 로켓 발사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종기 같은 문제라면, 일본의 요격은 한반도 평화 자체를 잠식하는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일본이 평화헌법의 틀, 그러니까 ‘영토나 영해 밖에서의 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의 틀을 부숴버리면 그야말로 중대 위협이 발생한다. 그것은 전쟁이다. 평화를 해하는 언론도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는 호전성이다.

넷, 미사일 비용과 대북 퍼주기를 연결 짓는 원초적 야만

마지막으로 설마 그렇게 직접적으로 단순화시킬까도 싶지만, 이번 로켓 발사 비용과 대북 지원 문제를 엮을 가능성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부터 비용에 대한 예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략적인 규모는 1500억에서 7000억 정도 사이에서 움직인다. 대중적 이해의 측면에서 이 비용과 북한의 ‘식량난’을 인과관계로 환원하여 북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에서 벗어나는 적절하지 못한 정치적 연결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흡사, 그것은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 비용과 비정규직 임금을 연결하는 문법이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적대적 진영 논리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는 언론이 얼마나 될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세기말>을 찍었던 송능한 감독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영화적 상상력을 압도한다’며 영화 작업을 미루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디 영화적 상상력뿐이겠는가. 한 차례의 오보 소동과 로켓 발사의 진짜 스펙터클을 목격하는 시간, 동시에 야구장의 매진 사례를 시청해야 했다. 밭을 갈러 간 주말 농장엔 사람이 북적였고, 주말 뉴스는 죄다 ‘특집’이어서, ‘박연차’ ‘장자연’ ‘강희락’이 사라졌다. 새로운 일주일을 맞는 일이 이렇게 복잡다단해서야 어디, 제명에 살겠나 싶은 요즘이다. 이번주의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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