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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개최된 제네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연차총회는 한국사회 인권의 위기적 상황에 대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한 매우 상징적인 회의였다. 일부 세계 언론은 아시아의 모범적인 인권 국가로 이행하던 한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고까지 해석하였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신흥경제국의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과정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정부 차원의 인권 진전은 중요한 모범사례로 ICC 논의의 중심이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국가 인권기구의 독립성과 효과성을 노골적으로 훼손하려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국가의 신뢰가 저해됨은 물론, 전대미문의 ICC의장기구 수임 취소라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게 됐다.
한국은 어쩌다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일까. 그 첫 번째 문제는 국제적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정부의 인권 의식에 있다. MB정부는 1930년대 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세계 경기 침체와 경제 악화로 보편적 인권이 더욱 후퇴할 위기에 처한 이때, 국제적 망신살이 뻗치는 반인권적 퇴행에만 신속하고 총체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 그나마 글로벌 스탠더드를 근접해가던 사회적 기준들은 무너지고, 신공안사회가 형성됐고, 우리를 ICC 의장으로 뽑으려 하던 각국의 걱정을 사게 된 것이다.
며칠 전 행안부는 국가인권위와 국민권익위원회의 업무가 겹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인권위 인력의 21.2%를 감축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이 내용을 국무회의에 상정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이처럼 MB정부는 인권의 확실한 퇴행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부 차원에서 지시함으로써 독립기구로서 인권위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함과 동시에 국가 인권 정책의 퇴행을 자행하였다.
학계, 시민단체, 국제기구가 인권위 축소에 대해 반대와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는 26일 목요일에 차관회의를 거쳐 31일 국무회의에서 직제령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행안부의 입장은 당최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는 10년 만에 최초로 기자가 구속되는 상황을 맞이했고, 향후에도 정권에 밉보인 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추가로 구속될 전망이다. 민주주의는 급격히 수축되고 있으며, 인권은 모든 분야에서 퇴행하는 추세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인권위가 정부의 독선적 질주를 방어할 최소한의 보루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권위만이 지도자의 강압 통치와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국민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식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국내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강화하여 사회적 약자의 삶에 기여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ICC 의장국 수행 등의 활동을 통하여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국가를 구축하는 밀도 있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할 때이다.
얼마 전, MB는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선진일류국가는 단순히 1인당 소득이 얼마냐 하는 것보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일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여 공감대와 빈축을 동시에 샀다. 선진일류국가를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정부 부문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이행한 역사의 경험을 발전시켜야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로서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운영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고, ICC 차원의 국제적 인권 정책 공조에 참여하는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차기 ICC 의장국이자 세계 13대 경제 대국이라는 나라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무력화시킨다면 국제적 비웃음의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