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뷰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이른바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2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보고서를 펴낸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의 인터뷰다. 이 인터뷰는 2월 4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되었다. 그러나, 못 보신 분들도 많겠기에 재차 인용한다.

기자: 예를 들면 MBC에서 일자리가 더 생기는 게 아니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 그렇죠. 경제 전체니까 MBC 앞에 있는 식당이랑요. MBC 앞에 있는 버스 기사랑, MBC를 자주 들락날락하는 택시분이랑 그런 고용까지 다 포함한 거죠.

기자: 일반인들은 방송 일자리가 2만 개 넘게 생긴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 뭐, 방송 일자리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오해하시면 안 되겠죠.

▲ 2월4일 MBC <뉴스데스크> "근거 희박하다" 화면 캡처.
이 보고서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결론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규제완화를 통해 방송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과연 어떻게 방송시장이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는 결론 말이다. 이어진 지적 또한 정확하다. “방송시장 성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가 부실했기 때문에 정책이 부실하게 나온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정책 자체가 섣부르고 설익은 것이다 보니,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둘러 내놓은 자료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다시 파업을 시작한 날, 서울대 수의과대학 우희종 교수를 모처럼 만났다.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는 ‘미국 쇠고기 파동’…. 국내 최고의 면역학 전문가이자 프리온 전문 연구자인 우 교수가 당시 파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문적인 사실이 근거로 되어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작년의 상황은 일단 ‘수입 타결’이라는 정책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랬다. 학문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면, 인간광우병은 결코 사라져가는 질병이 아니었으며 30개월이 안 된 소에게서도 광우병이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또한 치아감별법으로 소의 연령을 구별하는 건 불완전한 방법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에 바탕한다면 30개월 미만인 소의 뇌와 척수, 척주 등을 수입하게 한 것이나 30개월 이상인 소의 뼈와 내장을 들여오기로 한 결정은 매우 내려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그렇게 했다. OIE(국제수역사무국)의 무역 규정을 근거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OIE의 규정을 국제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자, 그제서야 정부는 다른 근거를 찾기 시작했던 거였다. 그렇게 서둘러서 정책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 “광우병 걸린 소라도 SRM(특정위험물질)만 떼어내고 먹으면 안전하다”느니, “미국에선 1997년 이후 광우병 걸린 소가 없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정부 관계자들이 할 수 있었겠는가.

방송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점만 따져봐도 그렇다. ‘일자리 2만개론’은 미디어법 찬성자들의 금과옥조였다. 그런데 이 이론이 만들어진 것은 올해 1월이다. 그때 보고서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정작 법안이 제출된 것은 지난해 말이다. 어떻게 있지도 않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법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법안을 만들어서 제출해 놓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 리포트를 서둘러 작성했음이 추론 가능한 순서다. 문제는 그 작성이 얼마나 ‘급박하고 서둘러 진행된 것이었기에’, 방송법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을 논하면서 어떻게 방송국 주변의 식당과 버스, 택시 기사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디 이뿐만인가. 많은 국민들의 우려 속에 진행되고 있는 ‘제2롯데월드’ 사업도 먼저 정책을 결정해 놓고 그 다음 학문과 전문지식을 동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경인운하 사업의 명분을 뒷받침하는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도 경제성과 편익이 부풀려 계산됐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은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반대하다 사퇴하면서 “정부가 국책 연구원을 ‘싱크탱크(think tank)'가 아니라 ‘마우스탱크(mouth tank)'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다. 다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의 인터뷰를 떠올려 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노동조합에 제안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국책 연구원과 정부에서 MBC 주변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 조합원들이 솔선수범해 회사 주변의 식당을 더 많이 이용하자고 말이다. 각자 차를 집에 두고, 대신 더 많이 버스와 택시를 타고 다니자고 말이다. 다른 방송사의 노동조합에도 이렇게 하자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미디어법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적 논란의 해법이 이렇게 쉬울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허무할 지경이다.

MBC 보도국 사회정책팀 소속으로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입이 없는 사람들의 입이 되겠다는 첫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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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성적으로 게으른 몸과 마음을 취재현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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