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장 시절 이명박의 행정을 한마디로 요약하긴 버겁다. 이른바, ‘신개발주의’라 명명된 그의 불도저 행정은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학적 연구의 대상이 됐었다. 지금 그 행정은 포스트 이명박을 꿈꾸는 모든 지자체장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부득불 그 4년을 축약하자면 그건 행정의 ‘시각 기념일화’ 정도가 될 것이다. 그이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업그레이드해버린 조형물이자, 행정의 시각 기념일화를 설명하는 상징적 자료라고 할 청계천은 그의 시장 취임 1주년이 되던 날에 딱 맞추어 공사를 시작했다. 청계천과 같은 대박까지는 아니었어도 행정을 시각의 노예로 만들고 기념으로 박제해버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예컨대, 서울시의 버스운영체제는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1주년 날에 딱 맞추어 개편되었다.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환승제 등 사소한 미덕도 제법 있어 다행히 지금은 많이 자리를 잡았지만, 초반 몇 년간 버스운영체제 개편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시행착오는 철저히 버스운영체제개편이라는 행정적 행위를 시각 기념일화 하기 위해서 치른 사회적 비용이다.

날짜를 맞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버스회사의 반발을 조속히 무마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렇게 공공성의 본질적 개념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성급히 준공영제를 당근으로 던지며 맺어준 적정이윤보장제는 시행 반년 동안에만 1천300여억의 적자를 서울시에 안기고 지금도 서울시의 재정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찬찬히 먹었으면 좋았을 걸 급하게 먹다 체한 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버스운영체제 개편이 한 편의 코미디가 된 건, 시각 기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2가지 장치 때문이었다. 지랄염병의 약자가 확실하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G-R-Y-B의 알파벳 기호와 이제는 거의 뜯어내진 중앙차로의 붉은색 포장이 바로 그것이다.

▲ 서울시가 개편한 버스 디자인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지금 생각해도, 4가지 색으로 정돈된 버스와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알파벳 기호 그리고 유난히 붉던 중앙의 도로는 참 ‘간지’나는 한 장면이었다. 그 보다 더 사진 찍기 좋은 배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 첫날, 강남역 버스정류장은 실로 장관이었다. 급하게 색을 갈아입은 버스들이 한 줄로 멍청하게 도열해있던 폼은 정말이지 기록해두고 싶은 가관이었다.

여하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찌질이들은 뒤로 하고, 이명박 시장은 집무실을 시청에서 청와대로 옮겼다. 비판하면 배제하고, 비판자를 비난해서 돌파해 온 그의 임기가 또 딱 1년 지났다. 어떤가? 그의 스타일은 여전한가, 또 스케일은 어디까지 진화했는가?

엊그제, 그의 취임 1주년에 벌어진 여의도의 날치기 참극은 여전히 변치않은 그의 스타일과 한층 방자해진 그의 스케일을 잘 보여준다. 속도, 얼핏 가치중립적인 그 기계적 단어를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방해가 많았다. 외적 변수들, 예를 들면 불가항력의 촛불, 전 지구적인 불황, 명백한 타의에 의한 철거민의 자살까지 자꾸 과속방지턱이 출몰했다. 그는 피곤한 기색을 비쳤고, 짜증이 역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그의 ‘좌고우면’은 늙은 형의 근심을 샀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그이다. 취임 1주년을 맞아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질풍노도 하겠다는 그의 객기가 결국 형의 마음을 움직였고, 바야흐로 만사형통, 만사형결의 정치가 여의도를 물들이고 있다.

시각 기념일화 행정의 특징은 문맥 그대로 특정일에 볼거리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하는 것이다. 관료 조직이 수장의 특정한 날을 기념해 주기 위해 복무하는 형태의 통치, 맞다. 익숙한 낡은 것의 부활, 바로 민주화 전에 질리게 봤던 풍경이다. 서울시장 시절의 이명박은 그 진부함을 토목의 스펙터클로 만회해왔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러기가 어렵다. 몇몇 토목 공사로 나라 전체를 끌고 갈 순 없으며, 지역정부엔 전무하다시피한 견제세력도 숱하게 많다. 그래서 어쩌면 고흥길 문방위원장의 묻지마 상정은 개인의 과잉된 충성이라기 보단 미디어법을 처리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의지라기 보단 모든 것을 초월하여 존재감을 갖고 싶어하는 대통령을 둔 구조적 불행일지도 모른다.

미디어법의 운명은 어찌될까? 만사형결은 유난히 붉던 중앙차로와 다른 운명일까? 분명한 것은 버스운영체제 개편은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미덕도 제법 있었다는 점이다. 미디어법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방향도 틀리고, 악덕이 너무 많다. 게다가 버스운영체제의 경우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심화되지 않는 경우에 개개인들이 대체할 적극적 방법이 있었다. 버스는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디어법의 경우 문제가 다르다. 재벌에 의해 독점되거나 조중동에 의해 왜곡되면 개개인들이 대처할 방법은 전무하다. 미디어는 삶의 환경 그 자체이다.

오늘, 본회의다. 김형오 의장은 언뜻 미디어법은 직권상정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상득 의원과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을까? 방심은 금물, 고흥길 위원장도 그랬었다. 형을 만나기 전까지는. 1년 차에 버스운영체제를 개편하고, 2년 차에 시청 앞에 잔디를 깔고, 3년 차에 청계천을 완공해버린 그 괴물을 생각하니, 누군가의 표현처럼 ‘미래사년 고난’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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