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코믹스와 더불어 슈퍼 히어로물의 양대 산맥을 형성한 DC코믹스는 종이책 시장에서는 마블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지만, 헐리웃 박스오피스에서는 마블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78년 영화 '슈퍼맨' (리처드 도너 감독)을 통해 박스오피스를 석권했고, 1981년 '슈퍼맨2'로 연달아 히트를 쳤지만, 후속으로 선보인 3편과 4편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졸작으로 오히려 슈퍼맨 시리즈의 명성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으로 박스오피스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지만 팀 버튼이 2편까지 제작하고 물러난 이후 선보인 '배트맨 포에버'(1995년), '배트맨과 로빈' (1997년)은 평단과 관객들의 혹평을 받으면서 팀 버튼이 쌓아 놓은 배트맨 시리즈의 명성이 퇴색되었다.

DC의 대표적인 캐릭터 '슈퍼맨'과 '배트맨'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많은 성원을 받았지만 후속편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완성도로 인해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정착하는 데 실패했다. 잠잠하던 라이벌 마블은 2002년 '스파이더맨'으로 슈퍼 히어로 무비 중 역대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2008년 '아이언맨'을 기점으로 캡틴아메리카, 토르 그리고 2012년 '어벤져스'를 통해 마블 유니버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박스오피스를 석권하게 된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스틸컷 이미지

반면에 DC코믹스는 2006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통해 슈퍼맨 시리즈의 새로운 부활을 노렸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고 한동안 방황모드에 접어들게 된다. 7년의 방황 끝에 스타일 넘치는 연출가 잭 스나이더에 의해 슈퍼맨은 새롭게 부활했고 (2013년 '맨 오브 스틸') 배트맨 시리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새롭게 재창출되어 2005년 '배트맨 비긴즈', 2008년 '다크 나이트',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통해 평단의 호평과 박스오피스 석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하지만 견고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캐릭터의 외형을 넓히고 박스오피스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마블에 비하면 DC의 라인업은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DC도 마블을 따라잡기 위해 '저스티스 리그'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고 2016년 자사의 대표적인 캐릭터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꺼번에 내세운 최초의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탄생시켰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포스터

원래 이 작품은 2013년 '맨 오브 스틸'의 후속편으로 기획되었다가 방향을 틀어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의 전초전 성격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영화는 '맨 오브 스틸'에서 이어지게 된다. 조드 장군 일당과 대혈전을 치르면서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하이라이트 장면부터 영화는 이어지는데 그 아수라장 속에서 사람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배트맨' 브루스 웨인 (벤 에플렉)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슈퍼맨을 제거해야 한다는 결심을 다지게 된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둘이 왜 처절한 혈투를 벌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인데, 결국 서로 평화를 지키는 방식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화는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 그런 두 사람(슈퍼맨을 사람이라고 칭하기는 좀 애매하지만...)의 갈등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 슈퍼 히어로의 갈등을 촉발시킨 동기나 혹은 중간에서 배트맨과 슈퍼맨을 이간질하는 악당 렉스 루터의 음모, 그리고 두 캐릭터의 가치관의 차이 등이 그려지기에는 영화는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영화 개봉 후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이 가장 비난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갈등이 해결되는 동기이다.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한 (오히려 허를 찌르기 위한 감독의 포석이라고 생각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유로 인해, 그런데 그이유조차도 (엄마의 이름이 같다는 것이) 그 긴박한 순간에서 갈등을 눈 녹듯이 내리게 할 만큼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가장 큰 중심은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이었고, 이것이 영화의 소구 포인트였는데 갈등을 푸는 과정이 우연에 기댄다는 스토리 구조가 영화를 본 관객들을 실망시킨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배트맨과 슈퍼맨만으로 영화를 이끌려고 했다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 증폭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중년의 배트맨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너무 둔탁하여 답답함까지 느끼게 한다. 영화 보는 내내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이 그리워진다. 원작에 가장 충실하게 배트맨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굳이 코믹스와의 싱크로율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스틸컷 이미지

하지만 원더우먼의 등장은 그나마 이 영화가 거둔 최고의 수확이다. 짧지만 임팩트 넘치는 원더우먼의 등장은 그나마 상당히 무겁게 흘러가던 영화 흐름 속에서 약간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데, 원더우먼을 맡은 갤 가돗의 섹시한 매력이 앞으로의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안겨주었다.

영화 말미에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할 캐릭터들을 짧은 영상들을 통해 선보이는데 과연 이 영화를 발판삼아 DC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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