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시간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의미를 알아내기 어려운 선거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각 정치세력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싸움이다.

언론은 판세의 변화를 읽느라 야단이다. 언론이 쏟아낸 판세를 종합해보면 숫자는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이 160석 안팎, 더불어민주당이 95석 안팎, 국민의당이 30석 안팎이다. 나머지 15석 안팎을 무소속과 정의당 등 나머지 세력이 나눠 가져간다. 물론 이 숫자가 투표 결과로 실제 확인될 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직도 선거운동 시간이 남아있는 데다가 작은 변수에도 표심이 쉽게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돼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선거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선거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새누리당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당 내외의 주요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력이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차기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흐름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무소속이 이탈한 와중에 적어도 ‘과반’은 넘어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고지를 누가 선점할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선거에서 드러난 여론의 풍향에 따라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보수언론 일부가 ‘오세훈 띄우기’에 나선 것은 이들보다 경쟁력이 나은 주자를 찾기 위한 행보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친박계 일부가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후문이지만 그가 본격 대권행보에 나설 경우 박근혜 대통령 입 안의 혀가 될지 ‘칼’(예를 들면 이회창의 예를 상기해보라)이 될지 역시도 이 선거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선거인 거고 법 위반 논란에도 전국을 순회하는 등 연이은 무리수는 이런 절박감에서 나온 행보로 평가할 수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영남권에 공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수도권에서 성적이 좋아도 영남 민심이 흔들려버리면 그 선거는 결코 이겼다고 자평하기 어렵다. 대구경북에서 무소속 후보가 탄생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거기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까지 당선되고 부산경남 지역에서 조차 야당 또는 무소속 후보가 선전하는 결과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이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광주에서 천정배 의원이 탄생했던 걸 상기해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최소한 이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천정배 당선 이후 문재인 전 대표가 어떻게 됐는지를 떠올리는 걸로 충분하다.

대권에 대해 말하자면 국민의당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제3당론’을 충실히 밀어 붙이고 있다. 더 이상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체제로는 정치에서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으므로 자신들을 선택해 새로운 유의미한 정치세력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이다. 정치의 정석을 말하자면 노선과 가치를 내세우고 이에 동의해달라는 걸로 시작하는 것이 옳겠으나 국민의당은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개문발차를 해야 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전망은 안철수 공동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역에서 고연호 후보(은평구을)에 대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언론이 전하는 이른바 ‘호남 정서’ 또는 ‘반-문재인 정서’란 이른바 ‘친노’로 일컬어지는 상징적 존재에 대한 악감정에 현실적 판단이 겹쳐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걸 문장으로 재구성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 경이적 표차에 의한 대선 패배와 잇단 혼란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에서 호남 여론은 문재인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했으나, 패배했다. 당시의 선거 구도는 진보정당조차 힘을 쓰지 못한 유례없는 1대 1구도로 치러졌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카드가 최선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어떤 ‘친노’들은 이런 상황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따라서 그게 누구든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인물을 지금이라도 키우지 않으면 패배는 반복된다.

이 논리에는 물론 일말의 진실도 있을 수 있지만 호남을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의 악선동이 영향력을 발휘한 측면도 있다. 여하간 말하자면 이건 적극적인 형태의 정치적 냉소주의로 볼 수 있다. 정치인이 무엇을 내세우고 무엇을 대변하는지와 관계없이 어떤 특정한 목적만을 이루기 위한 정치를 작동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런 정서는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한 선거 구도를 만들어 낸 1등 공신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수도권에서 1석만 가져가도 호남에서의 선전에 비례대표까지 합쳐 30석을 넘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여기까지 몰린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이 선거의 결과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으로 가느냐의 문제가 돼버릴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를 어렵게 만든 화살을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김종인 대표를 데려온 게 문재인 전 대표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문재인 전 대표는 사실상 대권주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국민의당을 놓고 보았듯 이 상황을 주요 원인은 호남에서의 지지층 이반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2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 어머니 집에 방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행을 택하고 대권 포기와 정계 은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어차피 호남 여론을 수습하지 못하면 대권을 노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대권을 노릴 수 없게 되면 문재인 전 대표의 정치 입문 과정 등을 돌아 볼 때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표가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더불어민주당 내의 대권 레이스는 손학규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은 이들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에서 생환한다면 차기 당권 1순위로 뛰어 오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95석 안팎’이라는 기준을 놓고 보면 문재인 전 대표가 위기를 넘어설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다. 결국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행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지가 관건이다.

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선거 구도 상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다. 대중에게 가장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제3당론’은 국민의당에 빼앗겨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대선까지 포괄하는 구상을 기본으로 한 제1야당과의 전면적 야권연대로 영향력을 확대했어야 했으나 이것 역시 불리한 선거 구도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이 쌓여있는 판도 아니다. 그럼에도 5석에서 7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 수 확보가 기대되는 것은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양대 스타정치인의 선전과 ‘원내 유일 진보정당’이라는 명분 있는 타이틀 덕분이다. 이번 총선 이후에는 보수3당(?)과의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는 정책적 조직적 기반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의당은 2017년 대선까지 기성정치의 변수 정도로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세월호 2주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울 은평구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후보의 경우 수도권에서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진기한 케이스 중 하나다. 그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에 대한 법률지원에 주력했다는 이력이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같은 민변 출신이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을 택한 박주민 후보와는 달리 시민혁명당 창당을 주도하다 무소속으로 경주에 출마한 권영국 후보의 선전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이다. 권영국 후보는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활약이 기성정치에 대한 작은 균열로 작용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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