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는 매년 우수기업을 표창하고 수많은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는다. 예를 들어 노동부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장애인을 많이 고용했다’ ‘사회공헌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명분을 만들어 기업과 관계를 맺는다. 아무튼 이런 행사가 있을 때, 대다수 기자들은 노동부가 보낸 보도자료와 사진을 활용해 짧은 기사를 쓴다. 그런데 ‘뉴스민’은 다르다. 표창장 수여식에 꼭 참석한다. 그리고 그 중 ‘문제적 기업’을 끄집어낸다.

1일 대구 성당동에서 만난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은 “기업과 행정기관을 감시하고 건드려야 ‘노동’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가의 본산이고, 박정희 정권 시절 대규모 산업단지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현대공화국의 하청업체가 즐비한 대구경북(TK) 지역은 그래서 뉴스의 ‘보고’(寶庫)다. 천용길 편집장은 “대구경북에서 노동, 정치-자본-정부-언론의 관계를 보도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다”라고 말했다.

뉴스민은 TK에서 가장 젊은 대안언론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 셋이 “대구경북의 기울어진 언론판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매체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시작했다. 이들은 2011년 창간을 위해 시장조사를 했다. 그리고 ‘TK에 노동과 사회운동을 전면에 다루는 매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서울과 울산의 대안언론, 진보언론에서 반년 동안 ‘기사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2012년 5월 1일 뉴스민을 창간했다.

단순하게 노동조합과 투쟁현장을 따라가는 언론은 (비록 적지만) 있다. 뉴스민은 ‘문제의 고리’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노조와 현장 기사로 호응을 받았다. 지역에서 보면 노동문제는 대부분 지역의 유지와 행정기관과 얽혀 있다. 이 고리를 밝혀내고 취재해내지 않으면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 그래서 2년차부터 현장만 쫓아가는 것 외에 기획을 해보기 시작했다. 숨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났고, 행정기관에 출입했다.”

뉴스민은 보수적 정치세력, 지역 유지, 지방자치단체를 ‘돈줄’로 삼는 언론과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밝힌다. 또 뉴스민은 노동자, 성소수자, 생태 문제에 집중한다. 스타케미칼 같은 투쟁사업장, 금복주 같은 문제적 기업도 끈질기게 보도한다. 뉴스민에는 지역의 문제를 전국의 관점에서 보는 기사가 많고, 정부가 제공하지 않은 공공데이터를 모아 비교‧분석한 기사도 많다. 뉴스민은 자타공인 ‘TK민중언론’이다.

정치는 어떻게 다룰까. ‘보수의 텃밭’을 일군 언론의 관심은 새누리당의 권력다툼에 쏠린다. 천용길 편집장은 ‘TK의 언론판’을 묻는 질문에 대뜸 신문을 펼쳤다. “이 신문은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내려왔을 때 그 소식으로만 1면부터 4면까지 가득 채웠다. 이게 TK 1등신문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새누리당 이야기만 한다. ‘유승민은 불쌍하다’는 정도다. 적어도 대구경북 언론은 ‘의제설정능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언론이 이러니, “대구경북 시민들이 새누리당에만 관심을 갖는다.” 대구경북지역 일간지들은 조선일보보다 더 오른쪽에 서 있다고 한다. 이 정도로 기운 언론판에서 야당이 살아남아 표를 얻는 것은 다른 지역보다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뉴스민은 ‘새누리 브레이커s’라는 연속기사를 내보내며 야당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천용길 편집장은 “뉴스민의 총선 보도 모토를 ‘편파적으로 보도하자’로 정했다”고 전했다.

보수의 텃밭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 대안언론이 오는 11월이면 언론사 간판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이유는 하나다. 5명 미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신문법 시행령을 개정해 인터넷신문의 등록요건을 ‘취재편집 5인 이상’으로 강화한 탓이다. 기자는 넷뿐이지만 2주마다 한명씩 장기취재를 해 ‘진짜 TK’을 보여주려는 소중한 언론이 말이다. 천용길 편집장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TK의 언론판을 흔들겠다”고 말했다.

▲뉴스민은 대안언론 중 가장 젊다. 온라인지면도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깔끔하게 꾸몄다. 카드뉴스와 동영상뉴스도 일품이다. 구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일단 온라인(http://www.newsmin.co.kr/news/)을 권한다. 텔레그램(telegram.me/newsmin)과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newsmin/), 트위터(@dgnewsmin)로도 뉴스민 기사를 만날 수 있다. 뉴스민을 후원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온라인(http://www.newsmin.co.kr/news/donation/)에서 몇 가지 정보만 입력하면 된다. 현재 후원회원은 3백여명이라고 한다. 뉴스민이 언론사 간판을 내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려면 후원회원이 최소 천여명은 돼야 한다. (사진=미디어스. 사진을 누르면 뉴스민으로 이동합니다.)

다음은 천용길 편집장과 나눈 대화 전문.

-일단 뉴스민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개해 달라.

2011년에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 후배들과 얘기했다. 그러다 ‘매체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낙동강 윗지역, 대구경북지역은 정치적으로도 기울어져 있지만 매체도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기울어진 언론판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2011년 1월에 그런 이야기를 했고, 몇 개월 동안 시장조사를 다녔다. 대구경북지역에 어떤 매체들이 있고 어떤 기사를 쓰는지 말이다. 또 이 지역에 대안매체들은 어떤지 살펴봤다. 1년 가까이 시장조사를 하고 지역언론을 들여다보면서 ‘노동’의 문제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래 교지편집위원회에 있었지만 아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그해 7월께 셋이서 무턱대고 참세상과 울산노동뉴스에 전화해서 기사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얼마든지 오라’는 얘기를 듣고 셋이 모두 찢어졌다. 저는 울산노동뉴스와 참세상에서 6개월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미디어충청, 한겨레21 인턴을 다녀왔다.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과 자본금을 천만원 모았고, 2012년 5월 1일에 창간했다.

-만 4년이 됐다. 뉴스민은 ‘고군분투’ 중이다. 기자들이 모두 젊고, 다른 언론이 다루지 않는 문제를 보도한다. 아무래도 취재하는 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우리가 전부 20대고, 다른 매체에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신문은 또 많다. 처음에는 어디에서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쟤네는 뭐야?’ 이런 반응이었다. 아는 기자들도 없고 인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작정 부딪혔다. (현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지금까지 다루지 않던 의제들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사안들 중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들을 취재하고 기사로 쓰다보니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여하튼 저는 이념을 떠나서 자본의 논리로만 생각해도 ‘왜 이 블루오션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가’ 했다.

-그 동안 집중했던 문제들은 무엇인가. 뉴스민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 때 대구경북지역 학교현장을 취재해서 쉴 새 없이 기사를 쏟아내던 게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노동 문제를 중심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갖고 있던 관계가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노조 주장을 따라가는 것을 6개월 했는데 그 다음부터 ‘노동의 문제 어떻게 다룰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역에서 보면 노동문제는 모두 지역의 유지, 행정기관과 엮여 있다. 이 고리를 밝혀내고 취재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더라. 상황은 변하지 않더라. 2년차 들어가면서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야구르트 아주머니’ ‘시청 비정규직 안내원’ 같이 숨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났다. 거대담론보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동을 다뤘다. 그러면서 시청과 노동청 같은 관청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행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노동청은 뉴스민 기자들을 제일 싫어하면서 제일 가까이 한다. 노동청에서 우수기업을 표창하거나 기업과 업무협약을 하면, 우리는 꼭 참석한다. 그리고 문제를 끄집어낸다. 과거 그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노동청은 뉴스민을 반기면서도 싫어한다. 노동을 넘어서서, 노동과 엮여있는 행정의 부조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사실 기자 셋 중 둘의 전공이 역사라서 그랬다. 대학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공인데 이번에 공부도 할 겸 열심히 부딪혔다.

-총선 들어서 새누리 브레이커스를 연재하고 있다. 새누리당 텃밭에 균열을 내려는 야당 정치인들을 주로 다룬다. 이런 기획을 한 이유는 뭔가.

뉴스민의 총선 보도 모토는 ‘총선에서는 편파적인 보도를 하자’는 것이다. TV를 틀어도 신문을 봐도 다 여당기관지들이 나온다. 5만부, 10만부짜리 신문들은 모두 새누리당의 공천, 선거운동을 보도하고 있고 나머지 매체들도 그걸 쫓아간다. 평소 ‘개혁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매체들도 ‘유승민은 불쌍하다’는 정도다. 그런데 이건 모두 새누리당 이야기다. 나머지 목소리는 어느 매체에서 담아낼 것인가 고민했다. 바다 위에 돌맹이 하나 던지는 것이지만 우리라도 편파적으로 보도해야 균형추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취지로 시작했다. (김석기와 권영국이 맞붙는) 경주에는 총선 끝날 때까지 기자 한 명을 파견했다.

▲대구의 한 편의점에 있는 신문가판대 (사진=미디어스)

-그들은 왜 다른 목소리를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지역에서 어떤 일간지 기자가 우리에게 그러더라. ‘너네는 왜 유승민 사무소 오지를 않나, 지금 이게 최대 관심사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하는데 우리가 숟가락 하나 더 얹을 필요가 있나.’ 친박이니 진박이니, 대통령이 누구와 악수를 하고 누구와 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 건 언론 때문이다. 방송과 신문에 자꾸 나오니까 의제가 된 것이다. 다른 매체들은 ‘서울’ 특히 여의도 중심의 의제를 그대로 받는다. 지역성이 없다. 다들 ‘TK가 새누리당 텃밭’이라고 하는데 TK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들 중에 고등학교만 대구에서 나왔지 대구 사람이 아닌 분들도 많다. 언론은 의제를 ‘설정’해야 하는데 지금 언론은 그런 기능을 상실했다. 뉴스민은 작지만 그걸 하겠다는 것이다. ‘의제설정 기능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매체와 같은 의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야당 후보들이 약진하고 있지만, 결국 한계도 있을 것 같다. 취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여의도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잘 안 하더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인터뷰했는데 ‘질문을 3개 이하로 해 달라’고 했다. 새누리 브레이커스라는 기획취지나 뉴스민 같은 매체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다. 김부겸의 경우, 선거운동할 때 당 이름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모두 지역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총선과 지방선거를 고려하면) 2년이나 4년마다 선거가 돌아오는데 이 분들이 그 동안 이 지역에서 어떤 사회운동과 지역운동을 해왔는지다. 더민주당 후보들은 그게 부족하다. 힘과 세는 약하지만 진보정당 후보들 같은 경우, 사회운동과 지역운동 해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 분들을 만나는 이유는 이들의 십년 뒤 때문이다. 이들을 처음부터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누리 텃밭’이다. 진박 마케팅도 하고, 대통령도 직접 방문하고 그런 곳이다.

언론이 그런 구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구에 한 달 정도 살아보면 알 수 있다. 식당에 가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둔 곳이 많다. 그런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대부분의 식당에 있는 TV는 TV조선, 채널A에 채널이 맞춰져 있다. 조선일보가 대구에서는 1등을 못한다. 매일신문과 조선일보의 부수가 비슷한데, 매일신문은 조선일보보다 더 오른쪽이다. 부수가 많이 줄었지만 식당에는 여전히 그 신문들이 깔려 있다. 여기서 진박이라는 말을 등장시킨 것은 언론이다. 지역주민들이 그런 말을 쓴 게 아니다. 그게 미디어의 힘이다.

-야당이 약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대구에는 공직선거에만 14번째 출마한 사람이 있다. 이분이 1989년 한겨레민주당으로 출발했고, 민국당, 열린우리당에도 있었다. 새누리당 공천도 신청했다. 지금은 무소속이다. 8번째 선거에 시의원에 당선됐고, 9번째 구청장 보궐선거에 당선됐다. 10번째에는 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중간에 사퇴하고 2012년 총선에 나와 낙선했다. 이분의 고정 지지표가 20%다. 무슨 말이냐면, 이 지역 사람들은 한두 번 출마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구 시민의 대다수는 ‘새누리당빠’가 아니다. 그 동안 야당 정치인이 없었다. 김부겸은 세 번째 출마를 했다. 진득하게 붙어 있으니까 ‘야당도 사람 어떤지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도 지역면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사회기사는 잘 안 나온다. 대구경북은 산업단지가 많고, 현대차 협력업체들도 많다. 민주노조와 어용노조가 경쟁적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곳이기도한데 말이다.

전국지의 지역주재기자가 기껏해야 한둘이다. 지면에 매일 기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현안과 노동문제를 발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TK 지역언론들은 무슨 기사를 쓰나.

신문을 보여드릴까? 매체의 돈줄은 지자체다. 오히려 기업으로부터는 영향을 덜 받는다. 삼성 광고보다 관에서 뿌리는 돈이 엄청나다. 대통령이 왔을 때 1면에서 4면까지 모두 그 소식이었다. 뉴스민은 그래서, 주류매체와는 반대편에 있는 것을 다루려고 한다. 정치적 소수자, 노동자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퀴어축제가 열렸다. 5년 동안 무난하게 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취재를 가고 사진과 이미지 위주로 기사를 썼다. 당사자들 기고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난리가 났다.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기독교단체들이 들고 일어났고, 두 달 동안 공간 대여 문제도 있었다. 똥을 뿌린 장로도 있었다.

-뉴스민은 대구경북지역의 문제를 전국 단위에서 바라보는 기사를 쓰더라. 정부에서 정리해야 할 ‘공공데이터’를 대신 만들어주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건가.

일단은 기자가 하고 싶어 한다. 제가 편집장이지만 기자들의 스타일을 똑같이 맞추지 않는다. 작은 매체의 장점은 유연하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다. 사소한 일가지도 감시한다. 다른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부터 집중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교육청에서 보도자료를 끊었다. 당시 우리는 누리과정 예산 세부내역을 모두 공개했는데 교육청은 ‘왜 우리가 협의하지 않고 자료를 공개했나’라고 따졌다. 감시의 대상과 협력하라는 이야기인가? 그런 중요한 자료를 공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나중에 교육청에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보도자료 안 보내셔도 된다. 하지만 왜 안 보내는지 입장을 달라. 우리는 그 이유를 기사로 쓰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 보도자료가 오더라.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 (사진=미디어스)

-대구경북의 노동문제는 심각하다. 장기투쟁사업장도 많고, 노조도 쉽게 사라지고. 그래도 대구경북처럼 민주노조운동이 활발한 곳도 없다. 뉴스민은 노동기사를 많이 써왔다.

워낙 다루는 매체가 없으니까 일단은 현안을 쫓아가는 것만이라도 하자는 마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노동조합의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몇 가지 경험이 있었다. 발레오만도노조가 2년 전 승리하는 분위기까지 갔다. 우리는 기자를 파견해 그 과정과 스토리를 다뤘다. 노동자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해서 노조에 오게 되고, 싸우게 되는지 그 과정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현안 문제를 쫓더라도 기사 한 꼭지와 인터뷰 한 꼭지를 같이 배치한다.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발레오, 아사이글라스, 스타케미칼도 그렇게 접근했다.

-그래도 지치지 않나. 아무도 안 쓰기도 하지만 성과가 안 보이기도 한다.

스타케미칼은 노조가 깨지는 것부터 쓰기 시작했다. 차광호를 비롯한 해복투가 징계를 받을 때 제 이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뉴스민 천용길과 짜고 노조를 어용으로 몰았다’는 취지의 얘기가 있다. 나는 당시 지회장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연락도 받지 않았다. 유승민 집 앞에서도 안 하는 뻗치기를 지회장 집 앞에서 했다. 결국 스타케미칼 투쟁이 절반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지치지만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광호가 내려오기 이틀 전 전화가 왔다. “전날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고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민과 한겨레 정도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치지만 시간이 쌓여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문제를 계속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도 송전탑 문제를 취재하면서 버텼던 기억이 난다. 사건이 터졌을 때 첫 보도를 우리가 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제보를 받았다. 일이 터질 때마다 쫓아갔다. 인터랙티브 뉴스 붐이 불 때 한 달 동안 인터뷰하고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들이 의식이 변하는 것을 봤다. 그 분들은 아마 녹색당을 찍을 것이다. 뉴스민은 그 모습,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달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 기억과 경험으로 2년을 버텼다.

-이런 뉴스민이 사라질 수 있다. 5인 미만이지 않나. 신문법 시행령 개정 소식을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편으로는 ‘뭐 이런 법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전투의욕을 불태우더라.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나 싶었던 찰나에 그런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정치의 사각지대와 매체의 사각지대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다 이딴 식이구나’였다. 왜냐면 그들이 다루는 매체들은 대부분 덩치가 크다. 수도권에도 구 단위로 매체들이 형성돼 있다. 실제로 헌법소원 소송단을 구성할 때도 서울과 수도권 매체들은 거의 안 들어갔다. 지역에서는 대안매체가 아니더라도 소규모로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이런 인식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꼼수는 많다. 그러나 원칙의 문제다. 저널리즘 행위 자체를 막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기사를 만들어내려고 뛰었는데 잘 안 되더라. 한겨레 정도만 크게 다루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다.

이 지역 기자들은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좋아하더라. ‘뉴스민이나 평화뉴스 같은 곳이야 좋지만 사이비들은 정리해야 안 되나’ 이런 분위기다. 관공서에 붙어 먹는 매체들이 있으니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다. 그러나 사이비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독자들이 보지 않을 것이고, 사이비 짓을 하면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와 공무원들이 편하자고 한 번에 모두를 정리했다. 신문법 시행령이 개정된 날로 기억한다. 경북도청 대변인실은 회식을 했다. ‘드디어 해방’이라고.

-뉴스민 기자들은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저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문 닫으면 어떡하지, 다른 매체를 알아봐야 하나’ 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우리가 다른 매체에 가려고 뉴스민을 시작한 게 아니다. 결론은 ‘되는 데까지 해보자’는 것이다. 두 달 정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법적 대응과 원칙적 문제제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별도로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애를 쓰고 있다. 지금 한명이 더 들어와 4명이 됐다. 일단 5명까지 맞춰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소원 결과가 11월 전에 나올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신생매체들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대구에 뉴스민 있다고 다른 대안언론이 생겨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가 살아남아서 신문법 시행령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뉴스민이 집중할 문제는 뭔가.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공감이 많이 됐다. 결국 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이란 것은 주류매체의 저널리즘과 블로기즘을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기존 매체들이 다뤄온 의제들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그들이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이것을 두 축으로 놓고, 실력을 키우려고 한다.

우선, 올해 금속노조 미조직 노동자들 조직 과정에 함께 하려고 한다. 우리는 취재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구경북지역의 노동운동사 자료를 2년 전부터 수집하고 있고 이것을 정리해서 연재하려고 한다. 일단은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사를 정리하고, 그 다음에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의 지역노동운동사를 정리하려고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올해는 특히 오프라인도 고민하고 있다. 이제 4명이 됐는데 한명이 2주씩 기획취재를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문제, 집창촌 ‘자갈마당’ 이야기, 노동운동사가 실어 후원회원들에게 보내려고 한다. 기자 개개인의 콘텐츠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운동이 성장해야만 대안언론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 없는데 담론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공정성 담론을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이 이미 공정하지 않는데, 같은 숫자로 싸울 수 있나. 취재윤리를 지키면서, 편파적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2012년 뉴스민이 창간 발기인을 모집할 당시 홍보물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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