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지금까지 선거의 주요 화두는 누가 뭐래도 ‘후보단일화’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각 언론이 전망하는 선거 초반 판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수도권의 경우 야권 분열 때문에 새누리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고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이 기세를 얻고 있다. 정의당은 창원 성산의 노회찬 후보 정도가 강세인 걸로 분류된다.

이러니 후보단일화 압력을 체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단일화를 하네 마네를 두고 연일 서로를 향한 독설을 퍼부었다. 새누리당은 논란 끝에 선거연대 국면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단일화 논의에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면서 국민의당을 슬쩍 추켜세웠다. 보수언론이 ‘진보언론’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야당지’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릴 한겨레는 야권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국민의당 후보들의 멱살이라도 잡으라는 식의 글을 실었다 욕을 먹었다.

이런 혼란상은 결국 보수언론의 비웃음을 자초했다. 조선일보는 4일 정우상 정치부 차장의 칼럼을 통해 야권의 문제를 지적했다. 애초 야당심판론에 맞서 경제심판론을 내세우기로 한 더불어민주당이 이걸 내팽개치고 후보단일화에만 목을 매 결국 일을 그르치게 생겼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그간 논조가 더불어민주당의 선전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이 논설은 일종의 ‘조롱’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4일자 지면에 실린 글들

조선일보의 이날 지면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 대한 또 다른 ‘조롱’이 실렸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글이 그것인데, 더불어민주당을 ‘민족경제론’을 계승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과거 고도성장을 이끈 ‘서강학파’의 김종인 대표가 거기에 몸을 담고 있는 건 대단히 부조리하다는 게 핵심 논지다. 이 글이 고약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을 사실상 ‘종북’으로 규정하고 김종인 대표가 결국 용도폐기될 거라는 고전적 논리를 반복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이 ‘경제심판론’을 제기하는 데에 손을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각에서 ‘할배 경제 배틀’이라고는 이름을 붙인 강봉균-김종인 언쟁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강봉균 전 부총리는 새누리당의 편에 서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선도적으로 제기해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와 경제심판론을 낡은 문제제기로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역시 나름의 반론을 제기했는데, 이 반론은 김종인 대표를 필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종인 대표는 강봉균 전 부총리의 주장에 ‘낙수효과는 효과가 없다는 게 증명됐다’는 논리로 맞섰다. ‘한국형 양적완화’를 재벌 도와주자는 정책으로 규정한 것이다.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부위원장은 좀 더 자세한 논리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대기업 부실계열사 연명에 동원하는 건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간 실패로 드러난 재벌 중심 경제 정책이니, 부실기업은 차라리 금융의 냉정한 논리에 따라 정리해야 한다는 거다.

김진표 부위원장의 견해는 한 나라의 경제부총리를 지낸 고위 관료가 할 법한 범주에 들어간다. 즉,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실제로 김진표 부위원장의 논리는 과거 이른바 ‘안정화론자’로 불렸던 유학파 경제관료들이 재벌 문제를 박정희 시대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중복투자로 보고 금융자유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모색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다.

세상 만물이 민주화되었으니 경제도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경제민주화’ 개념은 지금껏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을 조금씩 달리해왔다. 과거 재벌들이 말한 경제민주화는 이제는 정권의 눈치와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기업 활동을 하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재벌개혁론자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앞서 김진표 부위원장이 주장한 것과 유사한 논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주주자본주의적 원칙을 강하게 적용해 재벌 독주로 인한 비효율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하자는 주장도 포함된다. 분배를 강화해 성장의 과실을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도 향유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춘 경제민주화 담론도 있다. 결국 이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는 과거의 박정희식 발전국가모델에 대한 안티테제일 뿐, 신자유주의부터 복지국가모델까지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좌측부터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김종인 대표가 새누리당에 몸을 담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의 경제민주화는 기존의 재벌개혁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계는 곧 정체성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애초에 ‘유능한 경제정당’을 표방하고 김종인 대표를 굳이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게 한 것은 2012년 대선 이후 모색됐던 ‘중도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어찌됐건 일관성 있는 행보이고 목표를 정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긍정성이 있다.

‘최소한의 긍정성’이라는 건 뒤집어 말하면 아쉬움 역시 많다는 거다. 조선일보가 비웃는 후보단일화 논란에서 경제민주화를 통한 정책연대를 강하게 제시할 필요도 있었다. 국민의당 역시 나름대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과 비교하면 전체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어떤 ‘정석’으로 보자면 양당이 이런 정책적 비전을 놓고 선거연대를 모색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김종인 대표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를 ‘뭘 모르는 사람’으로 폄하하고 안철수 공동대표는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수사로 피해가는 걸로 귀결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기는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정의당은 위의 두 당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분배강화와 소득증대에 초점을 맞춘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 정의당 역시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를 고리로 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정권교체까지 가능하도록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담론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의 ‘진정성’을 문제 삼으며 후보단일화 문제는 정치적 도의나 어떤 배려의 차원으로 문제를 격하시키고 있다.

언론이 각 당의 전략 전술에 훈수를 놓을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치세력들의 이런 태도가 유권자들의 냉소주의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분명히 경제민주화로 총선을 치르겠다고 했고 국민의당은 국민의 편을 자처했으며 정의당은 국민월급 300만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선거 초반부의 지배적 담론은 이런 문제들로부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새누리당의 승리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자기 몫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다. 그러니 ‘결국 그들만의 싸움’이라며 눈살을 찌푸리며 종국에 가서야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투표에 나서는 불행한 유권자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다. 이게 결국 한국 정치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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