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으로 한때 증권사에 다녔으며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지난번 미네르바에 대하여 기고하였던 내 글(당신이 곧 ‘미네르바’다)의 일부는 사실과 달랐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그러나 그의 ‘출신 성분’이 무엇인지는 이미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의 출신 성분은 중요치 않다

검찰은 인터넷 논객일 뿐인 그를 ‘긴급체포’하고 그의 신원을 즉각적으로 발표하는 한편, 수사과정에서 논술시험을 보게 하면서까지 여론으로 하여금 그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믿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누리꾼과 필자들이 지적을 했다시피 피의자의 신상정보에 대한 수사당국의 유포는 매우 저질스런 짓이었다. 우리 사회 고질적인 학력주의에 편승하여 미네르바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짙었기 때문이다. 그 의도에 정확히 호응하여 여당과 보수언론은 미네르바 본인과 더불어 그에 주목하였던 인터넷의 신뢰도를 함께 희화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의 ‘출신 성분’에 눈길을 쏠리게 하려는 수사당국과 여당 및 보수언론의 의도가 너무나 뻔하다. 여기에 우리가 호응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의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고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여러 언론보도를 살펴 보면, 독학 경제학자가 정확히 경제 예측을 하였다는 사실이 의도와 다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엘리트 경제 관료들의 무능이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간파하고 말았다.

허위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 또한 중요치 않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올린 글이 허위사실에 해당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정말로 중요한 점은 세부적인 법리 논쟁 그 이상의 지점에 있다. 이번에 적용된다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를 비롯하여 그간 사문화되어 있다시피 했던 법률 조항들이 이 정부 들어 ‘특정한 목적 하에’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그 현상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허위사실 유포’는 거의 사문화되어 판례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5월의 ‘광우병 괴담’ 수사 때부터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정부는 곧바로 ‘광우병 괴담 수사’에 착수하면서 “화장품으로도 광우병이 감염된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라거나, “5월17일에 동맹휴업하자”는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허위사실이며 이에 대한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특히 법무부는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을 손수 작성하여 발표하면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광우병에 대한 글을 올릴 경우 처벌될 각오를 하게끔 만들었다.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은 어떠한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제1항 제9호 “그 밖에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敎唆)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법률 조항은 최근까지 잠재적인 위헌 규정이었다. 그러나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애용되면서 역시 전가의 보도로 등극하였다.

어떤 법률 조항이 사용되어 왔던 간에 상관없이 광우병 괴담,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 그리고 미네르바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와 수사당국이 인터넷 게시물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일관됨이 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하여서는, 그 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정부와 수사당국이 체포, 구속에 이르는 강도높은 수사를 벌이고 이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감행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국민의 여론에 반응하는 정부의 제대로 된 태도인 것일까? 국민이 정부 정책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허위사실 유포이고 공익을 해하는 행위인가? 국민은 정부의 엘리트 관료들과 상대할 만한 과학적 지식과 경제적 논리로 무장해야만 입이라도 뗄 수 있는 것인가?

체포나 구속, 형사처벌을 각오해야만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다. 이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세계적인 탄식거리이다. 수사력을 동원하여 국민을 입막음하고 비판적인 의견 발표를 위축시키려고 하는 작금의 사태는 인터넷 시대 신종 검열이라 명명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결국 미네르바 사건의 핵심은 그의 신원도 아니요, 그의 글 한 부분이 법률을 위반했다는 점에 있지도 않다.

지금 국회에는 ‘사이버 모욕죄’, ‘임시조치 의무화’, ‘불법정보 모니터링 의무화’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고, ‘인터넷 감청설비 의무화’,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화’를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이 법안들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인터넷은 제2, 제3의 미네르바로 넘칠 것이다. 또다른 독학 경제학자로서의 미네르바가 아니다. 정부 비판적인 의견 때문에 조사받고 형사처벌 받는 미네르바들이다. 뚜렷한 범죄혐의가 없어도 신상정보와 IP주소가 속속 수사기관에게 제공되는 미네르바들, 수많은 불행한 미네르바들 말이다.

지금 언론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그간 수행해온 일련의 인터넷 탄압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며 장차 그 탄압의 제도화가 목전에 닥쳐 있다.

언론에 부탁한다. 부디 이 사건을 가십거리처럼 다루지 말기 바란다. 언론의 진정한 통찰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이 사건의 부당성에 대하여 당신들의 양심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난도질하는 전가의 보도는 무명씨의 누리꾼들뿐 아니라 당신들에게로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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