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가 긴급 체포되었다. 검찰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제부터 기나긴 소모적 법리 다툼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가 공익을 심대하게 해쳤는지, 의견과 비판에 대해 허위 통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가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한 가지는 배웠다. 내가 쓴 글과 말로 난 누군가의 고소 없이도 검찰에 긴급 체포될 수 있다. 특히나 미네르바처럼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할 경우 그렇다. 학력이 짧거나 직업이 없으면 더 쉽게 발가벗겨질 수 있다. 겁이 나고 무섭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글 쓰고 싶지 않아진다.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기가 싫어진다.

▲ 2007년 11월12일자 매일경제 2면.
그런데 만일 기나긴 법리 다툼 후에 긴급체포의 스펙터클에 걸맞은 엄중한 처벌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지켜보자. 과연 어떠한 처벌이 내려질지 말이다. 만약 미네르바의 무죄가 밝혀지거나 혹은 기껏해야 몇백만원의 벌금이 판결된다면, 지금의 긴급 체포의 스펙터클은 과잉이고 불순이며 기만이다. 미네르바를 희생양 삼아 당장에는 네티즌을 겁주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비판과 참여를 막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지나친 검찰권의 남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누가 이를 기억하겠냐고. 그러나 지금의 공포와 무기력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단적으로 <PD 수첩> 사태가 그랬다. 언론 보도의 사실적 오류에 대한 사상 초유의 검찰 수사가 무엇을 노렸던가. 언론을 옥죄며 입과 눈을 닫게 하고 비판을 차단코자 함은 아니었던가. 초기의 엄포와 달리 담당검사가 사표를 내고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의도의 불순성에 대한 반증이겠다.

갑작스런 미네르바의 긴급체포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MB 악법’의 속도전과 전면전이 국민적 외면과 상식의 저항으로 한풀 꺾인 시점이다. 서서히 그들에게 균열의 지점이 보이는 시점이었다. 자칫 내분으로 휩싸일 시점이었다. 이 때 다시 미네르바 긴급체포를 통한 공포 정치가 가동하였다. 워룸 지하 벙커의 첫 수확은 미네르바의 날개를 꺾는 것이었다. 희생양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지우고 그를 통해 내부를 통합하며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강기갑 의원에 대해 폭력의 낙인을 찍어 자신의 폭력을 은폐하고, 미네르바에게 거짓의 낙인을 찍어 자신들의 거짓을 은폐하는 것은 희생양을 사기 위한 동전의 양면이다. 이 와중에 우리의 정당한 목소리를 폭력과 거짓이란 이름으로 낙인찍고 매질한다. 99%를 버리고 1% 부자의 생존을 위해 저들은 똘똘 뭉쳐 공안의 칼날을 휘두르는데 거칠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저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 말이다. 촛불은 10대 청소년으로부터 시작되어 저들의 턱밑까지 타올랐다. 서른 살의 젊은 미네르바는 독학으로 일류대 출신 엘리트의 코를 납작하게 짓밟아 주었다. 농민 강기갑은 프로 정치의 협잡과 모략에 맞서 그들의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저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은 실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못나고 못 배우고 못 버는 평범한 우리들의 상식 소통에 저들은 떨고 있다. 저들이 우리를 겁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저들이 겁에 질려 우리에게 무리수를 두고 있다. 무서운 얼굴로 미네르바를 채간 날카로운 손톱은 실은 깨지기 쉬운 유리 손톱에 불과하다. 이번 입법 전쟁은 국민의 상식을 획득하지 못한 저들의 무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당장 오늘부터 미네르바에 대한 인신공격이 가해질 것이다. 인터넷이 문제라고 하며 우리의 상식 소통을 가로막을 것이다. 이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MB 악법’은 다른 이름으로 되돌아와 우리의 상식을 시험에 부칠 것이다. 미네르바의 긴급체포는 그 출발신호 같다. 공안 정치의 절정 같다. 허나, 이는 동시에 우리의 가슴에 저들의 초라함과 무능력을 확인시켜주는 계기이다. 불과 미네르바 하나로 통째로 흔들릴 만큼 저들은 무능하고 무력하지 않은가. 그가 뛰어나고 영민해서가 아니라 그 또한 우리의 건전한 상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식의 소통과 연대, 상식의 참여와 개입이 필요하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우리의 상식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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