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거나 단지 보수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아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일당들에게 핍박을 당해 고난받는 피해자의 입장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쨌든 아버지대로부터 ‘정치적 금수저’라고 부를만한 인생을 살아왔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승민 의원을 당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침을 뱉고 떠난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에는 절반의 진실이 있다.

게다가 유승민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국책연구기관으로 지금까지 정권의 경제정책을 좌우할만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유승민 의원이 연구원이던 시절에도 나름 소신을 내세웠다는 후일담이 있긴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그가 여의도연구소장이던 시절인 2000년도에 내놓은 책 제목은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이다. 나름 합리적인 분석과 대안으로 채워져 있겠지만 결국은 재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내용이다. 유승민 의원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따뜻함과 정의로움 속에 누구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힐 것인지 지금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유승민 의원의 무소속 출마와 그가 내놓은 메시지가 한국 정치의 오늘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를 통해 어떤 영감을 안겨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저 편의적으로 사고해 왔다. 대표적으로는 정당의 정책적 지향이라는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는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으나, 집권 반년 만에 그런 약속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우리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는, 어떤 도덕적 문제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건 사실 한국 정치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들이 답습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이 24일 대구시 동구 용계동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때만 되면 온갖 장밋빛 구호가 난무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쉽게 약속하고 거둬들이며 유권자들은 오히려 공약을 믿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건 정치적 냉소주의의 현실적 풍경이다. 공약을 하는 사람도 공약의 내용과 효과를 믿지 않고, 공약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거기에 실린 어떤 ‘진심’을 믿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공약은 다음에 예정된 행위를 무리없이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며, 이제는 유권자들도 이것을 잘 알게 됐다. 그래서 언론은 정치인이 내세운 공약의 정책적 내용을 평가하기보다는, 그런 공약을 내세운 정치인의 감과 재치에 점수를 매기는데 더 익숙해졌다.

보통 제1야당과 진보정당 간에 이뤄졌던 ‘야권연대’라는 것은 이런 현상의 전형이다. 진보정당은 제1야당과 후보단일화 등의 선거연대를 이루기 위해 진보적인 정책 구호들을 받아들여줄 것을 요구한다. 제1야당은 기성정치의 문법에서 정책 구호가 별다른 의미와 역할을 갖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므로 거의 ‘혁명’을 하자는 수준의 제안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진보정당의 제안을 받아들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진보정당은 정책과 가치를 약속받고 사실상 후보를 사퇴해 제1야당의 정치적 성과를 보조해줄 수 있는 핑계를 얻게 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정책적 구호가 얼마나 현실성을 갖게 되는지는 누구도 제대로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2010년의 무상급식 열풍이 ‘보편적 복지’라는 노선으로 구체화된 사실은 정당의 지향과 관련해 근래에 있었던 거의 유일한 모범적 사례이다. 적어도 다수의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하나의 노선적 맥락으로 수렴된 것은 꽤 이상적인 형태의 정당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중도’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보편적 복지라는 노선은 또다시 정치적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보편적 복지만 하면 뭐든지 될 것처럼 굴던 정치인들이 대선에서 지나친 좌클릭 때문에 패배했다며 일부 ‘선택적 복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장을 선회해버린 것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는 정치인도 믿지 않고 유권자들도 그걸 외치는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 악순환의 불행한 연결고리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이제 우리는 정당의 노선과 정책은 선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식의, 냉소주의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이 비박을 학살하고, 그 와중에 김무성계가 목숨을 건지는 광경은 일종의 느와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증오한다는 것 말고는 친박과 비박 간에 어떤 노선과 철학의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그냥 친박으로 또 비박으로 태어난 일군의 정치인들이 권력쟁탈만을 위해 끝없이 싸우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여당만큼 ‘막장’은 아니겠으나, 야권을 둘러싼 혼란 역시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로부터 시작된 더불어민주당의 대혼란을 보수언론들은 연일 ‘운동권 대 김종인’의 구도로 표현하고 있으나 실체적 진실은 그런 노선을 둘러싼 대립구도와는 거리가 멀다. 보수언론이 ‘운동권’으로 지칭하는 사람들이 이번 총선을 운동권에 어울리는 구호를 내세워 치르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김종인 대표가 ‘정치적 재산권’을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겠다는 것에 대한 무슨 논쟁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내의 여러 흐름이 제각기의 이해관계를 적당히 절충해 결국 문제를 봉합한 걸 보면 이런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국민의당 상황에 비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논란은 오히려 모범적이다. 국민의당은 아주 전형적인 형태의 공천 갈등에 휘말렸다. 당내 주요 인사들의 욕심과 아마추어적인 공천관리는 낙천자들의 농성과 주먹, 그리고 도끼라는 형태로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역시나 공천을 받고 못 받은 사람들 간에 무슨 정치적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국민의당은 이 문제와 관련한 가장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난리통 속에 그나마 가치와 노선을 말하며 행보한 것은 유승민 의원이 유일하다. 유승민 의원은 탈당의 변을 통해 어찌됐건 ‘보수개혁’을 말했고 헌법 조항을 언급하면서 권력이 자신을 버려도 국민을 믿고 가겠다는 원칙을 이야기 했다. 만일 유승민 의원이 탈당을 하면서 대통령께 죄송하다거나, 대통령이 아닌 그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당당히 당선돼 돌아가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하였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영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찌됐건 어떤 노선을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은 인상을 준 탓에 우리는 다시 깨닫게 됐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정치가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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