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건 한고비 넘긴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당무 거부 사태는 문재인 전 대표가 급거 상경을 하고 비대위원들이 제각기 몰려가 전원 사의를 표명하며 머리를 조아림으로써 일단은 갈등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종인 대표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 이후 상황을 정확히 전망할 수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일련의 상황을 두고 언론 지면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난무했다. 김종인 대표의 ‘노욕’을 문제 삼는 주장부터 과도한 ‘우클릭’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각양각색의 부정적 평가들이 나왔다. 심지어 이런 문제제기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김종인 대표를 옹호하는 주장은 대개 ‘대권주자로서 문재인 대표의 이후 행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게 거의 유일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사태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냉소주의가 여전히 우리 정치의 현실을 강력하게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김종인 대표가 스스로를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2순위에 지명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다. 이른바 진보적 언론들은 이를 ‘노욕’으로 폄하 하였다. 언론의 이러한 반응은 스스로의 진단에 의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상당 부분은 대중의 반발을 반영한 것으로 비춰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광범위한 반발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고찰해보는 것도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비례 2번 김종인’에 대한 대중적 반발 논리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기본 도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당을 살리기 위해 비대위 대표를 맡은 줄 알았더니,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는 사익을 추구하였다는 게 대표적이다. “구원투수인줄 알았더니 구단주가 되려고 하더라”, “당을 살리랬더니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는 식의 비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실상 당의 대표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의 첫머리를 차지한 게 역사에 없었던 일은 아니다. 그리고 김종인 대표 말마따나 ‘용병’의 처지에 있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따져볼 수는 있어도 비례대표 순위가 1번이냐 14번이냐는 현실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2일 오후 국회에서 비대위 회의를 마친 뒤 구기동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대표의 국회 입성은 물론 이후 상황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스스로 킹메이커가 되지 않겠다고 발언했지만, 어찌됐든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는 한 어느 대권주자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 그 대권주자는 문재인 전 대표이다. 다만 과거 박근혜 후보의 예처럼 토사구팽 당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내에 진입한 김종인 대표의 다음 행보로 점쳐볼 수 있는 건 당 내에 ‘김종인계’로 부를 수 있을만한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김종인 대표는 당과 대권주자에 대한 일정한 통제에 나설 수 있게 되고 ‘팽’ 당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단 역시 갖추게 된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누군가가 이런 시나리오에 반대한다면 해결책은 두 가지다. 첫째는 김종인 대표의 국회 입성 자체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총선 직후 당을 떠나고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둘째는 김종인 대표의 국회 입성까지는 용인하되 이후 독자적인 정치행보를 할 수 없도록 이런 저런 생채기를 되도록 많이 남겨두는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비대위원회의 아마추어적 문제해결 능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후자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도 김종인 대표의 이후 행보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순위 2번을 받는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그를 전면에 내세워 ‘경제민주화’ 이슈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문재인 전 대표의 선거 전망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선 당연히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먼저 현재 구도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깃발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에 대한 이의가 존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형태의 정권심판론을 제기할 수도 있고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같은 소재를 활용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그런 전략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2년 대선 이후 ‘중도 전략’을 외쳐온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도 이번 선거를 차라리 경제 문제로 치르는 게 낫다는 구상에는 십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김종인 대표가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울만한 경제정책 전망의 대표적 인사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김종인 대표는 스스로를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로 포장해왔으나 그 다섯 글자에 실린 구체적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드러낸 바 없다. 김종인 대표는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한 바 있는데, 당시에도 장기적 비전을 갖고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방점을 두기 보다는 당장의 문제를 일단 해결하는 임기응변에 더 능한 모습을 보여준 걸로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도 다양한 버전의 경제민주화나 복지담론 등이 쏟아져 나왔으나, 김종인 대표가 제시한 정책들은 재벌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가하는 정도에 그친 바 있다. 김종인 대표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껏 지향해온 경제적 대안의 수위가 이정도인지에 대해 김종인 대표의 거취와 연관해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이 추구하는 게 뭔지,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통해 어느 정도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건지에 대한 당내의 일정한 합의가 이미 존재해야 한다. 김종인 대표의 영입은 그 자체로 그런 논의를 시작하기에 좋은 계기가 될 터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오직 김종인 대표의 어떤 정치공학적 능력에만 열광하는 불행한 상황이 이어졌다. 당 외에서의 이런 저런 정치적 도전을 “심심하니까 글 한 번 써본 거겠지”라는 식의 무시로 받아 넘기고 필리버스터 정국 직후의 동요를 ‘야권통합’이란 카드를 던져 무마한 그를 지지자들이 ‘갓종인’이라며 칭송한 것은 이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우리 편’의 소유일 때 어떤 ‘탁월한 능력’은 찬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능력이 ‘남의 것’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분노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김종인 대표에게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린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능력이 남에게로 넘어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그 능력은 남에게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 능력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두가 그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중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실제 필요로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고 또 말해야 한다. 이걸 철저히 고민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어떤 정치인에게 환호하다 말고 갑자기 속아 넘어갔다며 슬퍼하는 이상한 처지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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