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심석태 언론노조 SBS 본부장과 인연이 제법 오래다. SBS노조가 어용 소리를 들을 때부터 지금까지 SBS노조를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 안에서 고군분투해 온 몇 안 되는, 그래서 사측으로부터 ‘찍힌’ 까칠한 기자 출신 위원장이다.

▲ 26일 총파업 출정식에서 언론노조 SBS 심석태 본부장이 투쟁발언을 위해 연단에 올랐다ⓒ미디어스 윤희상
그가 지난 초여름 촛불문화제 정국에서 어렵게 아고라에 글을 썼다. SBS가 많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고, 적어도 시민들로부터 조중동과 같이 분류되어 그렇게 심한 야유를 받을 조직은 아니라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티즌이 두 패로 갈라졌다. SBS노조 위원장을 이해한다, 그리고 지지한다는 쪽과 SBS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쇼하지 말라는 냉담한 반응 쪽으로.

6월4일자 발행, <SBS노보>는 심 위원장과 그의 집행부가 느끼는 아픔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

5월24일 거리 시위가 시작된 날부터 일부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에 적잖은 SBS 취재진이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며,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너무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SBS와는 인터뷰 안 하겠다. 어차피 인터뷰해도 마음대로 편집하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며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다반사였다는 것.

심 위원장과 통화 중에 가끔씩 들었던 건 “후배 기자들이 선배 기자들의 업보를 뒤집어쓰고 당하는 고통이 너무 아프다”는 토로였다. 듣고 있던 필자로서는 SBS노조 집행부가 겪는 아픔 한편으로 SBS사측이 저질렀던 업보와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집행부와 젊은 조합원들이 느낄 수 있는 시민들에 대한 서운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인지, 심 위원장은 각종 집회장소와 기자회견장에서 SBS노조가 파업할 수 있다는 주장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최근 집회에서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KBS 정연주 사장 해임 과정에서도 동조파업을 말한 적이 있다. 8월 초, KBS 앞 촛불문화제에서 심 위원장은 “KBS가 총파업에 나서면 SBS 노조도 방송장악 저지를 위한 동조파업에 나서겠다”고 촛불들 앞에서 외쳤던 것이다.

사실상 동조파업이라는 건 ‘사직서’와 ‘인신구속’를 걸고 하는 아주 위험한 싸움이며, 이는 여간한 결의와 조직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또 당시 상황은 촛불이 거의 꺼져 KBS 앞만 밝히고 있는 터라 ‘방송장악 기도를 저지하고자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쯤으로 주장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던 정국이었다.

하지만 후배 조합원들로부터 아픔을 들었던 초여름의 촛불정국에서 SBS를 향한 차가운 눈초리를 떨쳐내고 싶었던 심 위원장은, ‘동조파업’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제시하며, SBS와 SBS노조의 역할론을 세상을 향해 밝히고자 했던 거였다.

촛불시민들이 ‘SBS를 보지도 않고 비난한다. 제발 좀 보고나서 비판하면 논쟁이라도 하고 변명이라도 할 텐데…’ 하며 ‘굳어 있는 SBS보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향한 SBS 노조위원장의 항변이 ‘동조파업 불사’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SBS노조의 심 위원장과 집행부가 얼마나 절박하게 SBS의 이미지 변화를 추구했는지 십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 26일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한나라당에 항의하기 위해 당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미디어스 윤희상

지난주 SBS노조가 사내에서 파업결의대회를 진행할 때, 예정된 시간에 나온 조합원 수가 사측에서 감시하러 나온 간부들 수보다 적었다. 하지만 불과 10여 분이 더 흘렀을 뿐인데, 순식간에 조합원들이 불어나 무려 300명 가까이 모여서 집회를 ‘성대하게’ 진행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심 위원장은 내심 뿌듯한 감동이었단다. 그리고 그 대오가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파업출정식 집회에 그대로 옮겨왔으니….

그런데 파업 첫날인 바로 그날, SBS 8시뉴스가 심 위원장의 뒤통수를 갈겨버렸다. 지상파의 저녁 종합뉴스에서 앵커의 발언은 신문으로 치면 ‘사설’이다. 사설로 파업 참가자 징계 운운하는 사측을 보며 노조위원장으로의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SBS 경영진이 하지 못했던, 또는 하지 않았던 SBS의 위상을 지난 1년 내내 제고하고 고양하는 데 앞장서 온 SBS노조가 사측의 기습적인 공격을 당하고 받은 충격은 그날 저녁 문자메시지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필자가 보낸 ‘고생한다, 힘내라’는 메시지에 대한 답장으로 심 위원장은 ‘안팎으로 죽겠다. 그러나 믿어라’는 내용이었던 같다.

미디어행동 김정대 사무처장이 28일 저녁 심 위원장을 만나 월요일 오후 SBS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할 계획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단다. 심 위원장은 “내부에서 반드시 해결하겠다. 필요하면 요청하겠다”며 완곡히 거절했단다.

외부의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SBS 앞마당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SBS를 성토하는 것이 아직은 조합원들의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젊은 조합원들이 단단히 결의를 다지고 있고, 블랙투쟁과 뉴스에서 기자가 등장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저항을 실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뜻 ‘외세 개입’이라는 악선전의 빌미를 사측에 줄까봐 저어하는 그 심경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SBS노조 설립 후 최초의 파업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SBS 내부의 작업은 살얼음을 밟는 느낌일 터.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SBS노조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는 외부의 시선은 초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SBS노조가 스스로 뚫고 나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SBS사측이 정권에 굴복했다. SBS보도국이 또다시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인터뷰 거절을 초래할 수 있는 굴종의 역사를 되풀이했다. SBS노조와 조합원들이 어렵사리 쌓아 올린, 아물지 않아 엉성하지만 공든 탑에 사측이 대놓고 폭격을 가해 버렸다. 하지만, SBS노조가 다시 허물어질 수도 있는 공든 탑을 재보수하고 단단히 아물게 해 마침내 금자탑으로 자랑할 수 있도록, 내부의 지난한 노력을 지금은 지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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