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은 대선 후보의 한 명이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검증자료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은 적이 있다. 석연찮은 이유로 이 검증자료는 한나라당 안에서 “무가치하다”는 판정이 났다. 검증자료에는 1996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자, 이 전 시장은 ‘내가 사법처리 되면 전 지구당에 내려간 불법 정치자금의 실체를 공개해 같이 죽겠다’는 자해공갈을 하기도 했다는 내용이 그해 2월 일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 2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이 출입문을 봉쇄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갑자기 이런 옛일이 떠오르는 이유는, ‘독전대장’인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전쟁을 선언하고 속도전에 열을 올리는 한나라당이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의 당 운영에 관해 불만의 일단이 언론에 소개되기는 하는데, 그것이 공개적으로 거의 표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칼자루를 쥔, 170여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의연한 모습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못하고 ‘조폭’스럽게 구는 말못할 비밀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떠오른 게 바로 ‘공갈협박’과 관련된 위의 옛일이었다. 언론학의 학문분과인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는 약점이 많은 사람은 정상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거나 돈으로 매수하는 방식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혹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정치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지금의 한나라당에 정확히 부합하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믿거나 말거나, ‘언론 5적’들이야 자신들 말마따나 신념에 따라 언론장악법을 밀어붙인다고 치자. 정병국 의원이야 ‘YS 가방모찌’ 시절부터 몸에 밴 근성의 산물로 너그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고흥길 한나라당 문화관위원장은, 조중동과 거대 재벌한테 방송 미디어를 넘겨주려고 하는 판에, 중앙일보 출신이라는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모양새를 고려해 막후 활약하는 것으로 봐줄 수 있다. 최시중 방송통제위원장이야,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내용 발표 전에 ‘50조원, 100조원 대기업의 방송 소유라도 인정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천기를 누설했으니 이 역시 신념이라고 치자(아마도 방송통신위원회 안에서 그만이 언론악법 내용을 미리 귀띔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나머지 의원들은 어떻게 된 걸까? ‘주이야박’(낮에는 이명박 줄서기, 밤에는 박근혜 줄서기)이라는 말이 한나라당 안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금, ‘언론 5적’ 이외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왜 저리도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일까? 언론악법이 결국은 자신들에게까지 칼끝을 겨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재벌과 조중동이 방송을 장악하면,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이들에게 맞서지 못한다. 사회의 견제와 감시에서 완벽하게 벗어난다.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라도 할라치면 ‘언론탄압’이라고 들어설 것이고, 정치인 뒷조사 내용을 국가정보원과 공유한 채 정치인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가능성이 높다. 통신비밀보호법이, 국가정보원법이 개악되면 국가정보원은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뒷조사를 강화할 것이고, 그것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다. 아마 지금 이미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26일 언론노조가 기습적으로 한나라당사 앞 항의시위를 벌이자 당사 경비에 나선 경찰ⓒ미디어스 윤희상
그래서다. 언론 5적을 포함해 한나라당 대다수 의원들이 ‘약점’을 잡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김형오 국회의장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어서 언론악법만 직권상정을 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헛된 망상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새벽 날치가 예상되는 12월29일 월요일을 앞두고 28일 일요일 저녁 국회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서 언론노동자들과 함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의 건투를 비는 것은 물론, 약점을 잡혀 협박당할까 전전긍긍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한나라당의 ‘많은’ 의원들을 위해 촛불을 들자.

김형오 의장님, 힘내세요! 협박과 공작 정치의 대상에서 의장님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겁니다. 혹시나 협박에 시달리신다면, 언론노동자들이 기꺼이 도와드릴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의장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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