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올해 상반기 폭넓게 광우병에 대해 취재하며 얻은 결론이다.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게 동물성 사료 때문인데,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는 EU나 일본은 물론, 인접국가 캐나다보다도 느슨하다. 지금의 조치로는 교차오염으로 인한 광우병을 막을 수 없다. 병든 소로 동물사료를 만드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나마 이러한 현재보다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는 내년 중반 정도부터나 시행된다. 문제는 소의 경우도 광우병의 잠복기가 3~4년 혹은 그 이상 되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느슨한 사료 조치 속에서 길러진 소에게서 언제 광우병이 발병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모든 동물성 사료 사용을 금지한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광우병이 발병하는 이유가 바로 이 ‘잠복기’ 때문이다.

▲ 지난 6월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 넘어까지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미디어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미국 쇠고기를, 아주 최소한의 규제만 거쳐 수입할 수 있도록 한 현재의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발병한 광우병은 단 3건 뿐이며, 그것도 2006년 이후 추가로 보고된 발병 사례는 없다. 이 사실은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변하고, 촛불 민심을 ‘왜곡된 보도로 인한 허위의식’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적지 않은 세력(조, 중, 동 보수적 신문들도 포함된다)에게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도 이 사실을 중요하게 판단했다. 당연히, 보수적 신문들은 헌재의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중앙일보 12월 27일 보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파동에 대한 헌재 결정의 핵심 취지는 ‘과장과 기우’다”).

그러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소라고 해서 특별히 광우병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느슨한 사료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들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을까? 그 답은 검사 비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길러지는 약 1억 마리의 소 가운데 광우병 전수 검사의 대상이 되는 소는 0.1%도 되지 않는다. 주저앉는 증상을 보이는 ‘다우너(downer) 소’의 경우 EU와 일본은 100% 전수검사를 하지만, 미국은 단 2%만 검사한다. 정상적인 소는 아예 검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광우병이 아주 많이 발병하는 상황이라면 광우병 소를 찾아낼 수 있지만, 1년에 10마리 이하로 발생하는 경우라면 광우병 소를 찾아낼 수가 없다. 이것은 내 지적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2007년 4월 9일 OIE(국제수역사무국) 총회 때 공식적으로 제시했던 사항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예전의 수입위생조건은 올해 체결한 조건보다는 훨씬 엄격했다. 그런데 그때의 협상이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며 비판하던 보수적 신문들은 왜 지금, 그때보다 훨씬 느슨해진 현재의 수입위생조건이 도리어 안전하다며 강변하고 있는가? 같은 팩트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뀐 것도 큰 문제지만, 언론의 변화는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정부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인정했듯,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보수적 신문들도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위해서 광우병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인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이유는 될 수 있지만, 언론의 이유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정책 집행자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들(보수적 신문들)은 달라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다. 본디 비정치적인 광우병과 미국 쇠고기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당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그 문제 자체만을 추적했던 지난 4월말부터 7월말까지의 기간은 ‘기자로서’ 내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나 역시 예전보다 안전하지 않은 쇠고기를 먹게 된 ‘국민으로서는’ 마찬가지로 불행해진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기자로서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취재만 하는 것으로 기자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외부의 압박 없이 있는 그대로, ‘취재해 온 것’이 기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평가받고 기사가 된다는 평가를 받으면 방송할 수 있었던 당시는, 윗 단락에 쓴 내용들을 모두 보도할 수 있었던 당시는, ‘MBC 기자’로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로비에서 MBC노조원들이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지금 MBC를 비롯한 여러 언론노동자들은 노트북과 마이크를 놓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나의 경우 사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지금도, 파고들어가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에 바빠 진실을 추적할 수 없는, 그러나 진실이 궁금한 국민을 대신해, ‘가려진 진실’을 최대한 추적해야 할 문제들 말이다. 기자라면 그러한 일을 하는 댓가로 급여를 받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 더욱이 국민의 재산인 ‘방송’을 도구로 보도하는 방송기자라면 그러한 일은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종의 ‘의무’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다. 그 의무를 더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기업과 신문사들이 지상파 방송사의 지분을 각각 20%씩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말이다. 이 규정에 근거해 최대한 상상의 폭을 넓혀보면, MBC의 지분을 20%는 삼성, 20%는 조선일보, 20%는 중앙일보가 각각 가질 수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기자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지만 쉽지 않다. 갈수록 정보는 감춰지고 있고, 진실은 더욱 교묘히 가려지고 있어서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져서 ‘이건 100% 네 잘못!’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그래서다. 지금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회사 지분을 20%씩 갖고 있는 자본과 족벌 신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아마 더욱 쉽지 않아질 것이다. 취재하더라도 보도할 수 없는 ‘성역(聖域)’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다. 마이크와 노트북을 잠시 놓은 이유는, 자신이 없어서다. 내가 몸담고 있는 MBC가 지금과 전혀 다른 회사가 됐을 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MBC 보도국 사회정책팀 소속으로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입이 없는 사람들의 입이 되겠다는 첫 마음을,
모든 진실은 진보적이라는 기자생활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성적으로 게으른 몸과 마음을 취재현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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