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선언했다. 결심을 마침내 결행에 옮긴 셈이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대오를 규합하기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악법 저지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정권이 어떻게 대응할지, 보수신문과 수구진영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하다. 쉽게 밀리거나 법안 추진을 양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지역, 방송과 신문, 공영과 민영의 언론 노동자들이 일떠선 사실 자체의 의미는 너무나 크다. 노동자로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팍팍한 삶을 책임진 시민으로서, 역사가 지정한 책무를 짊어지고자 한 성실함과 진지함에 깊은 경의를 표시하게 된다.

▲ MBC 로비에 걸린 ‘총파업 구호’가 담긴 대형 펼침막ⓒ미디어스 윤희상

왜 파업인가? 왜 수많은 언론 노동자들이 하던 일, 잘 나가던 일을 중지하려 하는가? 이제 우리는 대중과 가까이 있는, 권력과도 거리 멀지 않은 이들의 집단행동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파업의 이유가 자신의 사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모두의 공익을 위해서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조직의 논리가 아닌, 사회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쉽게 알게 된다. 언론민주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자유언론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공영방송의 기초질서를 유지코자 나선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임을 간파하게 된다. 이번 언론노조의 파업은 ‘사회적인 것’이고 ‘공적인 것’이며, 무엇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이다. 치안국가에 틈을 내고, 그래서 민주정치를 가능케 하려는 일종의 ‘이성의 공적활용’ 행위다.

민주적 문제제기의 노력이다. 권력에 대한 저항의 실천이다. 사실 본격적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태동과 함께 정치권력, 자본권력, 미디어권력의 삼각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일방주의 동맹은 한미FTA 동의안 상정으로 이미 드러났고, 100여개에 이르는 법안의 이 달 내 일괄 처리로 이어질 것이며, 무엇보다 ‘언론장악 7대 악법’의 막가파식 추진으로 구체화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부시의 통치, 제국의 경영, 신자유주의 질서가 전지구적 금융자본의 위기와 더불어 급작스러운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공황의 공포가 미국 내 대중적 상식의 복원, 민주주의의 복구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한국은 포스트 신자유주의의 변화 바람으로부터 벗어나 있는가? 수구반동의 예외 지역인가?

냉전의 찬 기운이 온전하다. 오히려 흉흉한 ‘치안 스테이트’, 섬뜩한 공포정치가 득세하고 있다. ‘국가정체성 위기’의 담론이 횡횡하고, ‘반체제 불순세력 척결’의 언어가 판을 치고 있다. 민주광장을 차단하고, 대중교통을 단속하며, 자유언론을 구속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광장이 민주주의의 핵심 공간이면, 교통은 민주주의의 기본 양식. 아울러 언론자유, 자유언론이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고 가치이자 이념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바로 이 기본이 위험에 처한 것이며, 그렇게 보자면 체제를 불안케 하는 집단이 누구인지는 쉽게 드러난다. ‘언론장악 7대 악법’을 무지막지하게 추진하는 세력이고, 인터넷을 검열 통제코자 욕망하는 주체이며, 대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담합하는 자들이다.

언론노조 파업은 바로 이 권력의 비행을 집단적 작업 중지라는 모드로 폭로하려는 결단적 행위다. 권력이 여론청취의 능력을 상실하여 대의(representation)가 불가능해지면, 행동의 직접적 제시(presentation)가 불가피해진다. 파업이 그 제시의 노력인데, 사회적 언론/여론의 매개자인 언론 노동자들이 바로 이 최후의 카드를 짚어든 것이다. 그 만큼 권력과 사회간 ‘소통’, 대중교통이 심각하게 고장나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한 마디로 이번 파업은 2008년 한국사회의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이렌 소리다. 따라서 언론노조가 파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어내고, 그에 기초해 상식의 행동을 취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예의, ‘응대의 책임’이 된다.

▲ 26일 오후 2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국회 앞에서 ‘한나라당 7대 악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미디어스 윤희상

▲ 26일 언론노조가 총파업 출정식을 마치고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열고 있다ⓒ미디어몽구

언론노조 총파업의 결정적 계기가 된 ‘언론장악 7대 악법’의 위험성을 일일히 설명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정권과 재벌, 수구신문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법안에 반영되어 있는지는 대충의 내용을 봐도 척 알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의 63퍼센트가 거대 신문사의 방송사 소유에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신·방 겸영’, 보다 정확히 말해 신문사의 방송사 교차소유가 대세라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여론의 집중, 미디어 자본의 독점에 상식적 반대를 표시한다. 조중동 구독자 중에서도 61%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는 사실은 여론의 대세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왜 정권은 지상파 TV를 사실상 조중동, 재벌, 초국적자본에 나누어 주겠다는 것인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방송과 신문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이 위험하고 통신이 불안하며, 궁극적으로 시민의 자율교통, 대중의 민주언론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반대하면 자동적으로 ‘좌파’가 된다. 미디어행동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무조건적으로 ‘빨갱이’다. 학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로지르는 언론학자들의 모임인 ‘미디어공공성포럼’에 대해 조중동은 색깔론을 마다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세계의 흐름에 역행해 후퇴하고 있다. 정말 파시즘적 상태로 미쳐가고 있다. 광기가 지배하고, 폭력이 난무한다. 절대 유일의 옳음(The Right)의 테러가 횡행하며, 상식과 합리의 시민들은 ‘비국민’, ‘비애국’, ‘반체제’적 요소로 취급된다.

바로 이 브레이크 없는 신보수/신자유주의 독점무대에 언론노조가 ‘나쁜놈’의 모습으로 나섰다. 지역신문들이 ‘지면파업’을 선언했고, MBC는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SBS노조도 개국 이래 처음으로 파업에 동참한다. 극적인 출현이다. <무한도전>에 격려의 댓글이, 뉴스 진행에서 빠진 여성앵커에게 지지의 메시지가 폭주한다. 눈물나는 순간이다. 이런 감동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정은 결국 연대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야기의 반전, 사태의 굴절이 이루어지 않을까? ‘삐딱한 놈’들의 이후 스토리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물어본다. 어이! KBS 노조 여러분들은 여전히 태평하신가? 법안을 만들고 선전하느라 바쁘셨을 언론학자를 포함한 여러분들께도 송구영신! 진짜 지독한 농담이 필요한 때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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