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인이란 선수가 있다. 여성으로서 농구선수였다. 물론, 지금은 선수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다. 가끔 여자프로농구 해설을 하는 해설자(?)이기도 하다. 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의 신치용 감독의 딸이며, 출중한 농구실력에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2004년 불었던 ‘얼짱’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올해 24살의 꽃다운 나이. 그런데 이 선수가 벌써 ‘추억의 스타’가 되었다. 올 1월에 있었던 여자농구 출범 10주년 기념행사인 ‘10년 올스타전’을 보도하는 언론이 신혜인 선수를 ‘추억의 스타’로 규정했는데(세계일보 2008.01.04, 19면), 젊은 나이에 벌써 추억이 되다니. 당연한 말이지만, 선수로서 스무네살의 나이라면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신혜인 선수. 오늘 내가 미디어의 보도와 관련하여 말해보고자 하는 명사(名士)이다.

미디어의 또다른 보도 기법 : 한계화 기법

이 전 글에서 토드 기틀린의 미디어 보도기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서 설명하는 또다른 기법은 앞서 언급했던 미디어의 보도기법-하나의 주체를 사소하게 만드는 기법-과 비슷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인데, 이름하여 ‘한계화(marginalization)’ 기법이다. 이는, 보도하려는 대상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것, 다시 말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속성을 부각시켜 보도 대상의 성장 잠재력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법을 말한다.

또다시 시위를 예로 들어보자. 시위를 보도할 때 발휘되는 상식선은 무엇일까? 시위의 목적, 시위가 일어난 이유, 이런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보도의 주된 초점은 그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기사의 내용뿐 아니라 사진과 같은 이미지도 그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계화 기법을 이용하면 이러한 시위는 조금 달리 묘사된다. 헤드라인부터 시작하여 기사의 내용, 그리고 관련 사진까지 모두 변두리의 것들로 채워진다. 가령 시위로 인해 발생되는 교통체증을 부각시키면서 시위의 목적을 은폐하고, 더 이상 시위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여론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본질, 즉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을 공략하면서 본질의 발전성을 가로막는 것, 그것을 한계화 기법이라 명명한다.

스포츠는 여성에게도 이러한 보도기법이 적용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여자선수의 본질 그 ‘외부의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자선수의 본질은 ‘선수’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력이나 시합과 관련한 그 무엇과 관련하여 미디어의 초점이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간혹 보면 여자선수의 본질보다는 다른 쪽에 더 초점이 맞추어지는데, 가령 여자선수를 ‘누구의 애인이나 부인’ 식으로 묘사하거나 ‘한 때 플레이보이지 표지모델’과 같은 식으로 헤드라인과 기사본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여자선수들의 ‘연봉’을 말해주지 않는 것 역시 그들의 ‘선수로서의 성장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한계화 기법에 포함된다. 뭐, 이 정도야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미디어가 여자선수의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극단적인 경우 그 선수의 활동 자체에 제약을 가하거나, 더 나아가 선수들 사이의 소외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오늘 사례로 드는 신혜인 선수가 그 경우다.

얼짱 신드롬과 신혜인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얼짱 신드롬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얼짱’이란 ‘얼굴이 짱 멋있다(예쁘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물론 지금은 별별 짱들이 난무하지만, 그 때만 해도 이 용어는 매우 생소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해졌던 때는 아마 2003년부터가 아닐까 한다. 기억하는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한 포털사이트에 마련된 팬카페 회원수가 3만5천명을 육박한 인기의 주인공이 바로 특수강도 혐의로 공개수배된 여자 강도라는 사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그 강도의 얼굴이 예뻐서란다.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도에서 얼짱으로 호칭이 바뀌고, 마치 모든 것이 용서되는 분위기로 변해갔던 현상. 우리가 경험했던 얼짱문화의 한 폐해였다.

물론 얼굴이 짱인 게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얼굴이 짱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단순한 논리였다. 그동안 지겹게 비판받으면서도 추앙받아왔던 외모 지상주의의 또 다른 변이가 바로 이 ‘얼짱’ 신드롬인데, 그 신드롬의 가운데 신혜인 선수가 있었다. 신혜인 선수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 지금은 대학생이자 농구경기 해설자로 활동 중인 신혜인 선수. 왼쪽=스포츠2.0(2008.04.04), 오른쪽=www.witbox.co.kr
오늘 4순위로 신세계에 지명된 여고생 농구스타 신혜인의 등장에 여자 농구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네티즌 투표에서 1위를 할 정도의 미모, 185cm의 키에 뛰어난 돌파력과 슛 감각으로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해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MBC 스포츠 뉴스, 2003.10.30).

드래프트 4순위란다(참고로 이 때 1순위는 금호생명으로 갔던 정미란 선수였다). 혹시 프로스포츠에서 남자선수들과 관련해서 드래프트 2, 3, 4순위를 자세히 보도해주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내 기억엔 별로 없다. 프로의 세계에서 2위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혜인 선수는 이례적으로 드래프트 4순위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의 전폭적인 관심을 받았다. 농구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외모 때문에 말이다.

미디어만 관심을 보인 것은 물론 아니다. 대중들도 신혜인 선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얼짱이기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이 2003년도 11월에 실시한 스포츠 얼짱 인기투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었는데, 총 100만명이 참여한 이 투표에서 신혜인 선수는 29만4817표를 얻어 15만1218표를 얻어 2위를 차지한 안정환 선수를 간단하게 제쳐버렸다. 프로무대 데뷔전을 치르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것이다. 그녀의 나이 19살. 뻥을 조금 덧붙이자면, 지금의 김연아 선수같은 인기를 받았다고나 할까. 이 때 당시 유행했던 얼짱 신드롬으로 인해 더더욱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신혜인 선수는, 그 이후 프로무대 데뷔 때부터 더욱 강도 높은 미디어의 구애를 받게 된다.

신혜인, 얼굴만 보이고 들어갔다?

2004년 1월27일, 2004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가 개막하였다. 신혜인 선수가 데뷔를 하게 된 첫 무대가 바로 이 시즌이었는데, 데뷔 초부터 받아왔던 그녀의 인기는 이 시즌에서도 지속된다. 프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그다지 눈에 띄지 못하는 경기내용에도 불구하고 신혜인은 각종 일간신문의 스포츠 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기사내용 백이면 백 모두 ‘얼짱’이란 별명이 따라 붙는 것이었다. ‘스포츠 얼짱’, ‘농구 얼짱’, ‘베스트 얼짱’ 등등.

미디어가 얼굴마담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을까? 심지어 제대로 활약도 못했는데도 사진은 신혜인 선수의 것을 쓰고, 기사내용은 다른 것인 경우도 있었다.

▲ 조선일보(2004.01.29, C1면)
위의 기사는 현대 박선영 선수의 활약으로 신세계를 이겼다는 내용이 주된 초점이고, 내용 역시 박선영 선수의 기사가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사진과 헤드라인은? 보시는 바와 같다(혹, 기사의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은 조선일보 2004년 1월29일자 C1면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일명 ‘언저리 사진’. 옛날에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언저리 뉴스’라는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정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중요한 것처럼 말하면서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신혜인 선수의 이미지는 데뷔 초부터 데뷔 후까지 모두 ‘언저리’ 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이 후 신혜인 선수는 무득점 행진을 계속 하면서 슬슬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항간에서는 “실력도 안 되는 것이 부모 빽으로 프로 들어왔다”는 소리도 들리면서 그 스트레스의 강도는 수위를 넘게 된다. 문제는 그 부담이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경기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한 골도 넣지 못했음에도 기사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미지의 과용. WKBL(여자프로농구)이나 소속구단의 입장에서는 신혜인 선수가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흥행을 위한 역할을 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성적도 좋았으면 더 좋았을테고.

그렇다면 신혜인의 농구실력이 형편없었던 것이었나? 그건 또 그렇진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여자농구계에서 소위 톱 레벨에 들었던 선수였다. 출신고교인 숙명여고가 2003년 제40회 춘계연맹전에서 준우승하면서 우수상을, 같은 해 연맹회장기 때는 우승을 하면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참고로 이 대회에서 신혜인 선수는 14득점에 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못하는 실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프로농구 드래프트 4위도 그냥 얼굴로 된 것이라고 보면 안된다. 얼짱이라는 보도의 프레임에 계속 가두어 놓을 정도의 실력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인이다 보니 뛸 시간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실력 발휘할 기회도 많이 받지 못하면서 성적은 안나고, 보도는 계속 되고, 인터뷰하면서 흥행몰이는 해야하는 이중, 삼중고를 겪다보니 결국, 신혜인 선수는 지쳐버린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간히 문제가 되었던 부정맥도 프로 데뷔 후 심해져 프로 데뷔 3번째 해를 맞이하는 2005년 9월 수술을 받으면서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부정맥이라는 것이 심장박동을 야기하는 전기자극이 잘 만들어지지 못해 수축과 이완이 불규칙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그 원인이 다양하다.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신혜인의 부정맥이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런 개연성이 있음을 추측해볼 수는 있으리라.

한계화 보도가 가져다주는 두 가지의 문제

조기은퇴를 하게 된 신혜인 선수의 이러한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여자선수들을 외모의 프레임으로 한정하여 보도할 경우 몇 가지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외모에 초점을 두면서 한 개인의 다른 잠재가능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경우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나타나는데, 미디어가 그들의 외모나 수입과 같은 것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들의 일상의 고민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외로움이나 고통 같은 것은 ‘돈 많이 벌잖아’ 혹은 ‘예쁘잖아’라는 생각에 함몰된다. 여자선수들 역시 그렇다. 외모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다른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경기에서 활약이 안 되는 이유도, 그에 대한 고민도, 개인적인 문제도 모두 이러한 외모에 가려지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개인의 고민은 ‘행복한 고민’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골프선수 미셸 위의 경우, 그녀의 성적 고민은 ‘돈 많이 벌잖아’라는 한계화 결과물에 의해 배부른 고민으로 치환되었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외모에 초점을 둔 미디어 보도는 주체들 간의 소외의 문제도 발생시킨다. 신혜인 선수의 문제에 국한시켜 보자면, 반대급부로서 ‘소외된’ 대상이 만들어졌는데, 그게 바로 금호생명의 정미란 선수였다.

▲ 그림출처: 한겨레, 2004.02.06, 27면(왼쪽), 금호생명 레드윙스여자농구단 홈페이지(오른쪽).
“프로무대에서는 오직 실력으로 말한다.” ‘얼짱’ 신드롬에 가려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여자프로농구 새내기 정미란(19·1m82·금호생명)이 코트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성적은 얼굴순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펄펄 날고 있다(성연철, 2004.02.06, 27면, 한겨레)

2004년 프로에 갓 진출한 기대주에 불과하지만 시합에 잠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신혜인 선수. ‘드래프트 1순위’라는 명함과 시즌 시작 후 3경기 동안 평균 19.7분 출장에 7득점, 2.8리바운드로 신인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적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리 뚜렷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정미란 선수. 이 둘은 실제로 매체의 관심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물론 정미란 선수가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대립된 반대급부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미디어가 여자선수에 대한 보도의 잣대를 잘못 대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뉴스로서의 가치(newsworthy)를 외모로 삼아버리면, 즉 개인 대 개인 혹은 종목 대 종목 사이의 대립양상을 만들 수 있고, 이는 결국 소외의 문제로 발전된다. 소외는 정체성의 유무에 따른 소속감과 고립의 결과로 파생된다고 한다. 즉, 일반대중들에게 있어 운동선수들의 정체성은 미디어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소속감과 고립 역시 미디어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에 의해 정체성이 형성된 선수들은 대중들에게 ‘우리와 함께 있는 존재’로서 인식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고립을 형성하게 되어 결국에는 소외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계화에 그녀들을 가두지 말길

사소화와 한계화. 미디어가 여성스포츠를 바라보는 두 시선이다. 물론 미디어는 가부장적 성격을 지니기에 이 문제는 ‘남성이 스포츠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두 시선’으로 치환할 수 있겠다. 남성스포츠의 그것과는 또 다른 여성스포츠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발전시킴으로써 ‘또 다른 스포츠’로 나아가야 하거늘, 여성스포츠는 언제나 ‘여성’이 강조되어 눈요기로 전락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이는 대중에게 언제나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미디어가 신혜인에게 던졌던 그러한 시선이 가질 수 있었던 몇몇 문제를 짚어봤던 이 글은, 과연 이 땅에서 스포츠하는 여성이 제대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던진다. 사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미디어가 스포츠와 관련하여 여성선수들을 사소화와 한계화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현재 스포츠 세계에서 견고하게 구축된 남성중심의 헤게모니를 영속하려는 남성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동의하긴 어렵지만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스포츠 분야, 가령 축구, 농구, 배구 등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불균등 현상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말이다.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신혜인 선수와 같은 사례는 미디어의 한계화나 사소화의 보도기법이 어떠한 폐해를 가져올 수 있을지 잘 보여준다. 스포츠하는 여성들을 한계화에 가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맥 빠지는 결론’으로 글을 맺기는 싫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가질 필요는 있겠다. 특히 미디어의 보도를 소비하는 우리들이 말이다. 지속적인 견제와 비판. 법적 제재나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기하기 전에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우리의 인식을 깨우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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