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총재 자리를 놓고 세간이 시끄럽다. 지난 16일 프로야구 8개 구단 사장단 조찬간담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KBO 수장으로 추대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을 못 견디고 결국 총재직 고사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6일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장단의 결정을 ‘불쾌하다’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절차상 문제’를 들먹였다.

문체부 공무원은 말씀 똑바로 하시라. 절차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그리고 거짓말 마시라. KBO가 무슨 정부 지원금을 받는가. 솔직히 말하시라. 박종웅 전 의원이 가기로 다 되어 있었는데 사장단이 다른 사람으로 결정해 난처해졌다고. 아니면 그냥 입 다물고 계시라. ‘영혼’은 없더라도 양식과 상식이 있다면 말이다.

유영구 이사장 추대가 알려지자 여권 고위 관계자는 “KBO 총재는 문화부 소관”이라며 프로야구계의 의지는 무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차기 총재는 이미 오래 전에 정해져 있었다. 사실은 청와대의 뜻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종웅 전 의원이다. 부산 사하구를 지역구로 했던 3선 의원 박종웅은 ‘YS의 입’이자 ‘복심’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 KBO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YS 달래려고 프로야구를 제물로

그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시 열린우리당 조경태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배지를 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력이 있다. 정치적 부활을 꿈꿨던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YS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한나라당 선대부위원장을 맡았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출마를 비난하는 등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 박종웅 전 국회의원 ⓒ박종웅 홈페이지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김덕룡, 김무성 등 민주계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키고 아들 현철과 박종웅의 공천신청조차 막아버리자 YS는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독설을 퍼부었고 이재오, 이방호의 낙선에 “기분이 좋아서 그날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말할 정도로 YS는 MB정권에 적대적이 됐다.

MB는 YS를 그런 식으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총선 뒤 둘만의 청와대 회동으로 말문을 텄고 9월 말 YS부친 김홍조 옹이 별세하자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중 직접 전화를 걸어 위로하면서 YS 최측근의 중용이 여권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YS 달래기의 실질적 카드는 바로 10월 김현철의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임명과 박종웅의 KBO 총재 내정이다. 10월 13일 이미 한 언론은 “박 전 의원이 신상우 현 총재 후임으로 사실상 결정된 것으로 안다”는 정치인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어쨌든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박종웅을 계속 밀어붙이기도 애매하게 됐다. 보궐선거 출마를 놓고 고심하는 강재섭 전 대표로 틀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MB정권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냥 밀어붙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유영구 이사장이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같이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은 전문인이 등장할 시기는 언제나 올까.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스포츠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할까.

MB정권, ‘자리’가 없다! / 프로야구도 전리품?

이번 KBO 총재 논란의 초점은 낙하산 인사라는 것인데 이제까지 보아온 낙하산 중에서도 가장 문제 많은 낙하산이다. 우선 ‘박종웅 내정’은 대통령 측근 인사 심기라기보다는 YS-MB 간 거래의 부산물이다. 더 정확하게는 MB의 YS달래기면서 YS의 민원해결 차원이다.

또 신상우 전 총재의 경우와도 비교된다. 노무현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정치적 후견인으로 노무현 아들의 주례까지 봤던 신 전 총재는 구단 사장들의 추대로 (사실 알아서 먼저 긴 것이겠지만) 총재가 됐다. 그런데 지금 문체부는 정치인 낙하산 인사에 넌덜머리가 난 구단 사장들이 만장일치로 추대한 인물을 압력을 가해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문체부가 얼마나 안하무인이고 제멋대로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KBO는 문체부 산하기관도, 공기업도 아니다. 사후승인권 하나 가지고 ‘까불지 마라’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스
MB정권이 출범한 이후 논공행상용 ‘자리’가 700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다. ‘자리’가 모자란 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정연주 전 KBS사장 퇴출을 시발로 이는 가속화됐다. 자리가 급하다보니 있던 사람도 내쫓았다. 유인촌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산하 기관장으로 있던 김윤수, 김정헌 등 대선배들을 협박하면서 자리 내놓으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가장 좋은 먹잇감은 문체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문체부의 업무가 문화, 예술, 언론, 체육, 관광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에 퍼져 있기에 다른 부처에 비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인사를 하기에 가장 좋다. 문체부는 정권출범 이후 산하 기관 38개 중 15개 단체의 수장을 성공적으로 물갈이했다고 한다. 그래도 번호표 들고 서있는 낙하산 대기자들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결국 닥치는 대로, 아무 데나 앉혀야 한다.

체육과학연구원장에 뉴라이트 인물 앉히더니

특히 체육계가 ‘밥’이었다. 다른 분야는 그래도 털끝만큼의 인연이라도 있어야 낙하산을 내려보낼 수 있지만 체육계는 그런 것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관심이 많았다’ 한마디면 합리화됐다.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돼 시끄러운 언론계 낙하산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다.

지난달 전혀 엉뚱한 인물이 체육과학연구원장 자리를 차고 앉았다. 김정만이라는 사람이다.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이사라고 하는데 체육학계 중견쯤 되는 나는 물론 그쪽 학회 이사들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강호를 떠나 있던 고수인가? 그렇다. 그는 고수였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이었고 안산 단원갑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인물이다.

이제까지 체육과학연구원장은 공모를 통해 선정됐었는데 이번엔 공모도 없이 그냥 눌러 앉혔다. 특히 역대 연구원장은 말 그대로 연구능력을 인정받은 학계 인사들이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런데 학계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인물이 학자들이 앉아야 할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이다. 이에 반발이 없을 수 없다. 그는 한 달이 지나도록 그와의 만남조차 거부하고 있는 체육 관련 학회 회장들과 인사도 못한 상황이다.

체육계 말아먹는 정치인 낙하산

KBO 총재로 정치인 낙하산이 오는 것이 야구계 숙원사업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전두환 시절에나 통할 참으로 무식한 발언을 하는 이들이 있다. 우선 정치인들이 수장으로 들어앉은 경기단체들을 둘러보시라. 국회의원, 실세의원 앉혀서 잘 된 단체 있는가. 없다. 임기응변식 ‘땜빵행정’에나 익숙하지 해당종목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계획을 수립했다는 회장을 나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신상우 전 총재를 보자. 그가 KBO에 입성하면서 약속했던 돔구장 건설 어떻게 됐나. 뻥이었다. 60년대 지어진 노후한 지방구장에서 야구팬들이 목숨 걸고 프로야구 관람하는 문제는 해결 됐나. 내년도 목숨 걸어야 한다. 축구에 비해 시설인프라가 10분의 1수준인 열악한 야구환경 개선됐는가. 풋~

신상우 전 총재는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될 때,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설 때, 농협이 창단 의사를 밝혔다가 뒤집었을 때, 우리히어로즈의 가입금 문제 때, 현대 장원삼 선수 트레이드파동 때 아무 역할도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았다. 또 학원야구는 어떻고. 초등, 중등학교 야구팀과 선수는 계속 줄고 있고 한 팀 선수가 10명인 초등학교 팀, 15명이 안 되는 중학교 팀도 있다.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 KBO 총재 자리는 정치인들의 ‘쉬어가는 자리’였을 뿐이다. 전임 KBO총재 아홉 명 중 네 명은 국회로, 장관으로, 안기부장으로 임기 중 옮겨갔고 두 명은 구속됐다. 임기를 온전히 마치고 떠난 사람은 초대 서종철총재 뿐이었다. 재임기간 1년 이내의 단명 총재가 3명이나 되고, 6대 오명총재는 취임 25일만에 장관직을 위해 떠났다. 정말 뻔뻔스러운 사람들이다. 정치권의 이러한 낙하산 인사 때문에 프로야구는 중장기계획의 수립이 불가능했다.

프로야구계가 받은 건 낙하산이 아니라 낙하산폭탄

구단 사장들이 문체부의 낙하산 투입을 알면서도 유영구 이사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 낙하산에 대해서만큼은 이제 확실한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폭이 업소관리를 위해 이름뿐인 바지사장을 내세우는데 정치인 낙하산은 용도 면에서 바지사장만도 못하다. ‘폼’만 잡다가 판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문성이 확보된 리더가 필요하다. 참여정부 시절 문광부 산하 기관 중 가장 평가가 좋았던 기관을 꼽자면 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국관광공사였다. 진흥원은 설립과 함께 삼성전자 부사장이었던 서병문 원장이 취임했는데 서 원장은 특유의 전문성, 추진력, 청렴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연임하기도 했다. 관광공사는 한때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꼴찌에서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임 정치인 사장(조홍규)과 후임 전문경영인 사장(김종민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및 세계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장)의 차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번 낙하산 총재 논란은 한국프로야구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한다. 한때 구단주 출신 박용오 총재가 터놓은 민선총재시대를 정부가 가로막고 섰다. 한국프로야구는 또다시 정치인 낙하산 총재 시대로 회귀해야 하는 것인가. 프로야구마저 정권의 전리품인가.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해당분야에 일자무식인 사람이라면 그건 낙하산 정도가 아니라 낙하산폭탄 아닌가. 낙하산 내려보내는 사람이나 낙하산 본인이나 낯짝은 있을 텐데…. 참 할 말이 없다.

* 본 글은 <프레시안> ‘정희준의 어퍼컷’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