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치 <중앙일보> 1면 기사 ‘미국·EU는 글로벌 미디어 키우는데 한국은 ‘이념·방송 이기주의’에 발목’을 읽기 전에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둬야 한다. 방송과 통신의 장비(단말기 포함) 제작을 제외한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서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해둬야 옹알이에 가까운 이 기사를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2월22일치 중앙일보 1면 머릿기사
옹알이를 접하기에 앞서 - 방송과 통신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

첫째 원천은 기업의 광고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광고시장의 규모는 진폭을 보이면서 조금씩 커지고는 있기는 하지만, 거의 ‘횡보 게걸음’ 상태에 있다고 보면 된다.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해 경쟁하는 방송 주체 간의 경쟁은 서로 윈윈하는 ‘정합 게임’(positive game)이 아니라, 누군가 광고수입을 늘리면 다른 누군가의 광고수입은 줄어드는 ‘영합 게임’(zero-sum game)의 결과를 낳는다는 얘기다.

광고시장의 변수는 이명박 정권이 사기를 쳤던 ‘747’ 공약 같은 게 실현되는 기적이 일어나든가, 아니면 기업들이 광고지출 총액관리 규모를 늘리든가 하는 것이다. 수신료를 현행 월 2500원에서 5000원으로 높일 경우, KBS 2TV의 축소되는 광고가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 다른 주체들의 광고시장 규모를 키우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도 단지 주관적 욕망일 뿐이다. 광고주들이 KBS 2TV의 축소되는 광고를 그대로 유지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이 KBS 이외의 다른 방송 주체들에 대해 갖는 광고시장 확대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원천은 유료방송의 경우 시청료가 해당된다. 현재 우리나라 유료방송의 시청료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시청료 수준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시청자의 시청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유료방송을 시청하는 가구의 최소 30%가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수 없어 유료방송에 가입한 동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세 번째 원천은 콘텐츠의 해외 판매를 통해 확보하는 수입이다. 해외수요가 크게 늘어나면 국내 방송과 통신의 전체 시장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국내 방송 콘텐츠가 한류를 불러일으켜 만든 해외수요 개척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옹알이 하나 - 허걱! 재벌과 신문의 지상파 소유 등이 일자리 21만개 창출? 근데 언제까지?

문제의 기사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 육성”을 적극 옹호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 규제 완화와 투자 활성화를 이뤄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내세운 방송 미디어 소유에 대한 재벌 대기업 기준 폐지, 신문의 방송 미디어 소유 전면 허용, 지상파방송의 주파수 재배치 관련 법안들을 옹호한다. 동원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막대한 일자리 창출과 생산유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의 허황된 예측이 동원된다. ‘일자리 창출 20만개-서비스 생산유발 효과 21조4천억원’이란 방송통신위의 예측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앞으로 5년 안에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10년 안에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20년 안에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발표한 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방송통신위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정감사에서 신뢰성 없는 전망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앞서 언급한 방송과 통신의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들에 비춰볼 때도 이런 예측은 허황된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 광고시장 규모의 급격한 확대는 근거 없는 주관적 욕망일 뿐이며, 유료방송의 급격한 시청료 인상 역시 불가능한 선택이다. 게다가, 이 기사는 “미국 타임워너 한 개 회사가 10만명 이상의 고용 효과를 낼 정도다”라는 내용을 방송통신위의 예측과 일관된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 사실처럼 인용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의 이런 예측과 타임워너의 고용 수준은 아무런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타임워너가 덩치를 키운 효과로 인해 얼마나 고용이 늘어났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원소스-멀티유스’(OSMU) 전략은 국내적인 측면에서 일자리에 오히려 부정적일 위험성이 높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소스 하나를 다양한 창구에 유통시킬 경우, 다양한 소스를 만들어내는 것과 견줘 일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소스-멀티유스는 대외적인 측면에서 판매수입 증대를 통해 국내 방송주체들의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기여를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기사는 해외 각국 정부가 미디어 콘텐츠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문제는 2000년 한류 열풍은 재벌 대기업 없이 지상파 방송이 콘텐츠 산업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이다. 반면, 재벌 대기업인 삼성과 LG, 현대 등과 같은 재벌 대기업이 1990년대 영화산업에 진출했으나 거의 실패한 바 있다.

옹알이 둘 -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동원하는 지상파 독과점이란 ‘신화’

문제의 기사는 이런 ‘역사’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다. 그러면서, “지상파 독과점으로 인해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 지연돼 왔다”는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과 “지상파 중심 생산구조 등으로 인해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장을 소개하며 “지상파 독과점에 발목 잡혔다”고 쓰고 있다. 이 기사를 쓴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에게 묻고 싶다. ‘박사’ 기자로서 ‘지상파 독과점’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변해 달라고 말이다. 지상파 방송시장 안에서 지상파 독과점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유료방송을 포함한 전체 방송시장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전체 방송시장을 대상으로 할 때 지상파 방송의 비중(광고수입 기준)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따라서 ‘지상파 독과점’이란 용어는 폐기하는 게 타당하다.

▲ <표> 연도별·매체별 광고 구성비(단위: %)
남는 문제는 ‘지상파방송, 특히 지상파방송 3사의 콘텐츠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가 유료방송 시장에 지나치게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가 겨냥하는 핵심 지점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의 계열 PP들이 유료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2006년 말 기준 지상파 계열 PP가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전체 유료방송 PP 시장의 15.4%에 이른다. 주요 MPP들의 매출액 중에서 지상파 계열 PP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이 유료방송 시장으로 수평 확장하는 동기는 지상파 방송 본체의 손실을 만회하는 한편, 수직 계열화한 기업의 규모 및 범위의 경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지상파방송 3사의 계열 PP가 유료방송의 유통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지상파 본체와 유료방송의 PP가 직접계약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가 지상파 계열 PP를 통해 또다시 유통됨으로써 이중 삼중의 유통이 구조적으로 보장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지상파 계열 PP는 자체 제작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부분이 지상파 망에서 1차 유통된 콘텐츠의 2차 유통을 목적으로 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지상파 본체가 저작권을 보유한 국내 제작물의 경우, 특히 드라마나 오락물이 2차 유통될 때 계열 PP를 거치지 않도록 하는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상파방송의 재원을 보장하는 제도 변경과 함께 이뤄질 경우, 대책의 실효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 <표> 지상파 계열 PP 매출액 및 시장점유율

▲ <표> 주요 MPP 현황
옹알이 셋 - 재벌과 신문 소유의 지상파 독과점은 OK! 왜? 방송사 이기주의가 아니라서?

이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과 중앙일보가 손잡고 지상파를 소유하도록 한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이럴 경우, 중앙일보가 말하는 ‘지상파방송의 독과점’은 훨씬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사 기자가 포함돼 있는데, 이런 논리적 모순의 탈출구를 벗어나야 하다. 그래서 동원된 논리가 이른바 ‘방송사 이기주의’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및 신문법 개정안에 대한 방송사 구성원들의 거부를 ‘방송사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수법이 그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방송사 이기주의가 없는 지상파방송 독과점(삼성과 중앙일보 등 재벌 대기업과 신문이 소유하는 지상파방송 독과점) OK, 방송사 이기주의에 물든 지금의 지상파방송 독과점 NO’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취재원의 발언이 황근 선문대 교수다. “한나라당 법안은 공영방송의 수신료 비중을 높여 공적 영역은 확대하고, 나머지는 산업 경쟁력을 키우자는 이원화 전략… 이를 두고 무조건 방송 장악, 공익성 훼손이라고만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형적인 방송사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외부 경쟁자가 생길 것 같으면 ‘방송장악 음모’라는 등의 공허하고 철지난 이념 논쟁을 반복하며 미디어 산업 발전과 도약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까지 비난했다.

옹알이를 듣고서 - 실상은 ‘일국영 다민영 체제’다!

길게 말하지 않으련다. ‘공허하고 철지난 이념’에 따라 나라를 전단하는 세력이 과연 누구인지만 묻고 싶을 뿐이다. KBS 수신료 인상이 공적 영역의 확대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두환씨가 5공화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유로 대신하고 싶다. 대통령 직속의 방송통신위원회, 민간자율이기는커녕 행정기구로 기능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나라당의 방송법 및 신문법 개정안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못하는 KBS 관제사장, KBS를 하나의 ‘국가장치’로 보는 현 집권층의 인식 수준,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수신료 비중 상승은 ‘사람’을 장악한 현 집권층이 ‘돈’까지 장악한다는 뜻 이외의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거기에 진정한 ‘수신료’의 정신, 곧 민주주의는 없기 때문이다. ‘다공영 일민영 체제’를 ‘일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꾼다고? 말은 바로 해야 한다. 그것은 ‘일국영 다민영 체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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