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삼성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삼성 직업병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는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 사태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 삼성 동의하에 설치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재발방지대책을 포함해 ‘사과’와 ‘보상’ 의제를 담은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으나, 삼성은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 강화 및 외부 독립기구 옴부즈맨 위원회를 설립해 3년 간 점검을 받는다는 내용의 ‘재발방지대책’만 받아들인 셈이다.

반올림은 13일 오전 11시,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이 ‘사과’와 ‘보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올림은 우선 어제(12일)의 재발방지대책 합의에 대해 “비로소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문제가 외부 독립기구의 장기적인 진단과 평가를 받게 됐다”며 “지난 9년의 반올림 투쟁과 지난 3년의 교섭, 무엇보다 최근 100일간의 노숙 농성이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조정위가 내놓은 3가지 의제 중 1가지만을 합의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올림은 “삼성은 어제 재발방지대책 합의 직후 발표한 글에서 ‘조정권고안의 기준과 원칙을 기초로 보상과 사과가 진행된 데 이어 예방 문제에 대해서까지 완전히 합의에 이르렀다’며, 마치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말했다. 명백한 거짓이고 기만”이라며 “삼성은 교섭(조정) 약속을 파기한 채 자체적으로 강행한 사과와 보상을 앞세우며 관련 논의를 계속 거부해 왔다”고 밝혔다.

▲ 반올림은 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반올림 농성장 앞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에 대한 반올림 공식 입장 발표 및 사과와 보상 문제 해결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반올림)

반올림은 삼성이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 등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사과문을 보상 신청자들에게 개별 발송하고 있는 점 △직접 보상 대상을 심사해 내용까지 정하는 절차를 강행한 점을 지적했다.

조정위는 ‘노동건강인권 선언’을 할 것, 그간 위험 관리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해 고통을 연장시킨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대표이사의 기자회견 방식으로 한 후 피해자들에게 개별 전달할 것이라고 사과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회사와 보상 합의를 한 피해자에게만 개별적으로 발송하고 있다.

보상 범위와 절차에 대해서도 삼성은 조정위의 권고안을 따르지 않고 있다. 조정위는 보상 범위에 유산 및 불임을 포함시켰으나 삼성의 안에는 빠져 있고, 대상자 역시 협력업체 소속을 포함하라는 권고안과 달리 삼성은 “협력업체 위 근무기간 동안 위 업무를 ‘상주’ 협력사 소속으로 삼성반도체 LCD 사업장 내에서 ‘상시’ 수행한 자”에만 국한했다. 1996년 이전 퇴사자, 재직 중인 자를 대상에서 배제시키기도 했다.

조정위는 위로금을 공익법인이 정하도록 했으나 삼성은 회사가 위로금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익법인이 심의·산정·지급하도록 한 조정안과 달리 삼성은 회사가 직접 지명·구성한 보상위원회가 심의·확정하면 보상액수를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보상신청 기한을 작년 12월 31일로 못박기까지 했다.

반올림은 “진정한 사과가 되려면 스스로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그런데 삼성의 사과에는 삼성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잘못을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권고안은 독립된 외부기구에 의한 공정하고 투명하며 안정적으로 계속될 수 있는 보상을 권고했지만, 삼성은 일방적이고 폐쇄적일 뿐 아니라 한시적인 보상을 실시했다. 보상 대상에 있어서도 조정권고안의 내용과 달리 질병의 종류, 발병 시기, 업무 내용 등으로 상당수의 피해자들을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반올림은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는 총 222명이다. 사망자는 지난 달 사망한 이지혜 님을 포함하여 총 76명이다. 반올림에 알려진 숫자일 뿐이니 실제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이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의 문제는 지금 삼성이 고수하는 독단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삼성은 이제라도 반올림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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