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겨울 해는 짧디 짧습니다. 동쪽 능선에서 느즈막히 나온 해는 오전에 잠깐 보였다가 오후가 되면 서쪽 능선에 가려 산중은 온통 그늘입니다. 하늘 높이 큰 반원을 그리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던 해가 그리운 날들입니다. 그나마 잿빛 하늘에 해가 가려 온 땅이 꽁꽁 얼어있지 않은 날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해는 며칠 남은 동지까지 계속 짧아지겠지요.

이곳에 자리잡고 산 지 4년 되었습니다. 얼기설기 만든 집이라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아이들 방은 방바닥에 붙인 종이가 군데군데 뜯어지고 벽에 붙인 종이도 낡아 흙벽이 보이는 곳도 생겼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이 크면서 방이 하나 더 필요해 부엌으로 쓰던 곳을 방으로 만들고 마루로 쓰던 곳을 부엌으로 만들 거창한 계획을 했습니다.

봄 가을엔 밭농사와 산농사로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어 집공사는 여름과 겨울에 합니다.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을 때도 겨울에 집을 지었습니다. 방 한 칸 만들어 겨울 찬바람만 막아 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겨울엔 집공사 하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어 한겨울을 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다른 계절에 시간내기 힘듭니다. 먼저 아이들 방부터 시작하기 위해 방안 짐을 모두 꺼냈습니다. 살다 보면 짐은 늘어나는 법이지만 참으로 많은 짐을 쌓고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쓰지 않는 장난감, 학용품 등도 쌓아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항상 짐은 간소하게 가지자고 다짐하는데 이렇게 짐이 많으니 애쓴 흔적이 없습니다.

부엌으로 쓰던 곳을 방으로 만들기 위해 또 짐을 모두 꺼내고 구들을 놓고 있습니다. 무거운 돌을 들어나르고 흙을 퍼나르면서 4년 전 이 집을 짓기 위해 수도 없이 흙을 퍼나르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흙을 퍼나르는 시간은 세상에서 쫓고 있는 편리와 쌓아두기보다 몸 움직이며 간소하게 살자 한 마음을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는지 뒤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할 때 삶을 계획하고 새로운 마음을 다집니다.

첫 직장을 나가거나 새로운 일을 할 때도 마음을 다집니다. 이 첫 마음은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드는 첫눈처럼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하얀 첫눈이 자동차 바퀴에 먼지 범벅이 되듯이 깨끗한 첫 마음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남을 미워하는 마음, 편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맙니다.

산에서 첫눈은 봄 여름 가을 동안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버린 뒤에 내립니다. 밤새 부는 바람에 마른 가지까지 버린 뒤에 첫눈을 맞이합니다. 집공사를 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욕심, 편리를 하나 둘 버리고 첫 마음을 가져봅니다. 집 짓는 일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과 같습니다. 세상에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바람을 막아주고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흙 돌 나무 바람 햇빛과 함께 하고 따뜻함으로 세상과 만나는 보금자리가 집이고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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