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민이야 많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스스로 저널리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처지는 못 된다. 세상은 가파르게 변하고 있고 사람들의 ‘뉴스 소비 방식’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통에 오늘의 저널리즘이 내일의 구닥다리가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잘 쓸지 보다 어떻게 하면 내 기사를 사람들이 읽도록 할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매체 환경을 고민하고 비평하는 입장에선 이 문제로 늘 맥이 빠진다.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 시대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를 꼽아보라면 공공성, 공정성, 다양성을 말하고 싶다. 공공성은 언론이 말 그대로 어떤 공적 가치를 수호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론이 어떤 사람의 출세 또는 부의 증가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공론을 조성하고 권력을 감시·비판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언론이 공정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안을 최대한 공정하게 다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정하게’라는 것은 모든 언론이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자기만의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 관점은 논조를 통해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이 관점에 다다르는 과정이다. 언론의 관점은 특정 사안을 다양한 측면에서, 그야말로 성실하게 다룬 결과물이어야 한다. 언론은 편파적일 수 있지만, 그러한 편파적 태도에 다다르는 과정만큼은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

물론 언론이 앞의 가치를 모두 수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늘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완벽한 과학적 관찰의 결과도 인간의 안구나 현미경과 같은 도구에 의해 왜곡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늘 감안해야 하는 것처럼 아무리 언론이 노력을 한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정도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 가능성을 고려하면 각자의 대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언론이 전체 저널리즘을 지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양성’이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공공성, 공정성, 다양성이 서로를 지탱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들을 묶어내고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론과 저널리즘 그 자체에 대한 비평이다. 이것이 비평의 영역이 보장되고 언론이 이 부담을 회피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이유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13 총선에 대비한 1차 인재 영입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현 변호사,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배승희 변호사, 김무성 대표,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 소장, 최진영 변호사, 변환봉 변호사. (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10일 총선을 대비한 1차 인재영입결과를 발표했다. 다수 언론은 새누리당이 영입한 인사들이 3, 40대 젊은 변호사로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지도를 넓인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종편의 시사프로그램들이 무리한 논리를 동원해 야당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데 주력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의 이번 결정은 어떤 ‘보은’으로 볼 수 있는 지점도 있다. 총선을 앞둔 인재영입은 결국 ‘공천’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당한 것이어서 기존의 인재영입과 경우가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결국 종편에 출연해 권력을 비호하고 야당을 깎아내린 것만으로 정치권으로의 진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게 핵심이다. 이제 종편은 이심전심의 수준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권언유착’의 창구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편이 저널리즘의 지평에서 어떤 대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한다기 보다는 이런 종류의 유착과 시청률 제고에 목숨을 걸고 있는 걸로 파악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공공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저널리즘에 대해 말하자면 최근 주류 언론들의 소셜미디어 활용 방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 선두에는 조선일보가 있는데, 이 신문의 페이스북 활용 방식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말로 ‘약을 빠는 듯’ 하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이다. 이를테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군 B-52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것에 대해 ‘떳다 떳다 핵폭격기’라는 설명을 다는 식이다. 이외에도 야권인사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을 쓰는가 하면 성차별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 조선일보의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롱 사례도 찾아보았으나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활용 방식이 정치적 냉소주의의 논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진지하지 않다거나 편파적인 게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 페이스북의 방식은 그들이 폄하할 마음을 먹은 대상에 대해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폄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다.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고 나면 남는 것은 ‘같은 편’으로부터의 환호다. 그 환호 안에서는 오로지 ‘편 가르기’가 있을 뿐 사안을 따져보고 사고를 확장할 기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언론이 풍자나 해학을 유도해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기사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저널리즘의 기준 안에서는 치열한 고민의 산물인 ‘관점’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소셜미디어 전략은 비웃기로 했기 때문에 비웃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한 사례다. 불행히도 이런 흐름은 다른 언론의 소셜미디어 활용 방식으로 전파돼나가고 있다.

이런 정치적 냉소주의가 ‘비평’의 가능성과 공간을 좁힌다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기가 반대하는 걸 조롱하고 비웃는 방식 외의 사고하는 방법을 점점 망각하고 있다. 기사를 읽고 기사의 내용에 대해 따져보는 게 아니라 기자의 ‘의도’부터 먼저 넘겨짚는다. 사람들은 언론에 ‘속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 조선일보의 방식은 언론이 속이기 위해 지면에서 진지한 척 하고 있을 뿐이라는 증거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론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언론을 대상으로 공공성과 공정성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건 이미 쉬운 일이 아니게 돼버렸다.

▲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신문법 시행령 헌법소원 제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은 세 번째로 언급한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다. 지난해 말 본지를 포함해 비 마이너, 참소리, 평화뉴스, 데일리벳 등 5인 미만 인터넷신문들은 소규모 인터넷 언론을 사실상 ‘강제 폐간’ 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여기에 참여한 노동, 장애인, 지역 이슈 등에 대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점을 수립해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것들을 보도해 온 언론이다. 이들이 5인 이상의 상시고용인원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력이 없거나 존재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류 매체가 주목하지 않는 힘든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은 이런 매체들을 존속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넘어 최소한의 공정성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미 권력 유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색채를 갖고 있는 인터넷 신문들은 광고비 집행과 관계자의 정부 내 요직 임명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전부 만들어줬다. 결국 박근혜 정부와 이들과 협력해 생존하고 있는 기득권이 꿈꾸는 언론 환경은 오로지 권력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만 언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맞서는 무기는 비평을 통해 담론의 힘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적 냉소와 권력의 노골적인 압력에 맞서 담론의 영역을 되살리고 모든 것을 ‘언어’의 방식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인이 이것을 깨닫는 것이 먼저이다. 야당도 종편 출연자를 영입했으니 마찬가지라고 하거나, 조선일보의 페이스북 이용 방식을 따라하거나, “권력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현실을 외면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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