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에는 주인인 농민이 없다. 대도시 도심 곳곳 우람한 건물에 농협이 들어 있다. 농업과는 거리가 먼 도시민을 상대로 돈놀이하는 곳이다. 농업은 날로 황폐해지고 농민생활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이와 달리 농협은 금융업으로 날로 비대해지면서 조직은 더욱 관료화되고 있다. 돈을 많이 만지다보니 흙냄새 나는 농민과는 점점 멀어진다. 그곳이 복마전인지 역대 중앙회 회장이 줄줄이 쇠고랑을 찬다.

▲ 농협 광고 ⓒ농협
조합원 240만명이 참여하는 농업협동조합은 거대한 조직이다. 중앙회 산하에 지역조합만도 1190개가 있고 중앙회 임직원(정규직)만도 1만7800명이나 된다. 자회사만도 농업부문 11개사, 축산부문 2개사, 신용부문 4개사, 교육부문 4개사를 거느린 방대한 규모이다. 중앙회 회장은 재벌총수만큼이나 막대한 세력을 갖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철저한 중앙집중체제이다. 한마디로 제왕처럼 군림한다.

중앙회 회장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회장권한 축소가 논의되어 왔다. 2005년 농협법 개정에 따라 회장 지위가 상임에서 명예직인 비상임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표면적인 변화일 뿐 실질적으로는 권한축소가 없다. 회장은 총회와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중앙회 전무이사와 각 사업 대표이사 추천권 및 임명권을 소유한다. 직원 임면권, 도지회장 등 간부직원, 자회사 임원 임명권을 갖는다. 여기에다 대표이사간의 업무조정권도 행사한다. 막강한 인사권을 통해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구조이다.

회장의 임기는 4년인데 대표이사의 임기는 2년이다. 연임하려면 회장의 의중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회장이 인사에 관한 절대권을 행사하지만 이것을 감시·견제할 장치가 없다. 이사회는 사외이사 10명을 포함해 30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사외이사마저 회장이 추천함으로써 외부의 감시역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6명의 감사위원회마저도 이사 중에서 뽑는다. 구조적으로 감사기능의 독립성·중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든 조직기능이 회장에게 집중된 1인중심체제다.

여기에다 회장이 돈줄마저 쥐고 있다. 중앙회는 지역조합에 무이자 또는 저리자금을 해마다 수십억원씩 지원한다. 정부의 농업지원자금도 농협을 창구로 공급된다. 자금배정권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은 회장의 수중에 있는 꼴이다. 1190명의 조합장은 지역에서 선거로 뽑는다. 중앙회장은 지역조합장이 모여 선출한다. 조합장에 당선되려면 수억원을 뿌려야 한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돈줄을 쥔 회장이 선거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조합장은 지역조직을 가졌으니 국회의원도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그 까닭에 정치권도 감히 회장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농협 하나로마트 대지를 헐값에 판 대가로 3억원을 받아먹어 감방살이하는 정대근 전임회장의 부정사건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세종증권을 인수한 대가로 50억원, 또 자회사 휴켐스를 매각한 대가로 20억원이나 챙겼다는 것이다. 정씨는 비료회사인 자회사 남해화학도 팔아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전임 대통령 노무현의 형 노건평씨, 그의 정치후원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버티고 있다. 중앙회장의 위세를 말하고도 남는 대목이다.

누구도 제왕적 회장을 비판하지 못한다. 농협이 정치세력화하고 국회의원들이 비호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농림수산식품부가 임원추천권을 인사추천위원회가 갖도록 농협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폐기하고 말았다. 농협과 국회의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모처럼 바른 말을 했다. “농협이 돈을 벌어 가지고 사고나 치고, 정치를 하니까 안 된다”고 말이다. 농협을 인사권을 포함해 다 뜯어고쳐 농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농업정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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