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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후 비지상파 방송에 ‘남성 중심’ 예능이 부쩍 많아졌다. 진행자와 고정 패널이 전부 혹은 대부분 남성인 반면 여성은 게스트나 특별출연으로서 주변인의 역할을 맡는다. 프로그램 속 남성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요리하고 퀴즈를 풀고 반려동물을 돌보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밥 요리를 배우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남성들이 가진 다양한 특성들이 부각된다. 아이들 혹은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사랑, 육아나 요리 등에 적응해 가며 생기는 성장을 전제로 한 변화,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훌륭한 한 끼를 만들어 내는 센스, 어른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여러 매력을 뽐낸다. 왜 TV에서는 풍성하고 다양한 면모를 지닌 남성이 이렇게나 빈번히 등장하는데 여성들은 보이지 않을까.

▲ 8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회관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작은토론회>가 열렸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왼쪽에서 3번째)이 <‘대중문화 속 남성지배 현상과 여성의 비가시화’ : TV에서 재현되는 젠더와 가족의 역할 수행론을 중심으로> 발제를 하고 있다. ⓒ미디어스

8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회관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작은토론회>가 열렸다. <‘대중문화 속 남성지배 현상과 여성의 비가시화’ : TV에서 재현되는 젠더와 가족의 역할 수행론을 중심으로> 발제를 맡은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가부장제의 규범과 여성혐오의 관계성이 대중매체, 특히 TV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개인화와 자기계발이라는 문제가 한국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부장제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미디어가 반영하고 있는지 혹은 기존 특징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고 밝혔다.

이종임 연구원은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결합되며 새로운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새로운 남성성’이다. 과거 전통적 가부장이 아닌 부드러운 남편이자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새로운 남성성 구축을 위해서는 여성의 특질을 수용한 남성을 등장시켜야 하므로 여성은 배제된다. 변화한 새로운 남성성에 감동하는 여성으로만 등장하거나, 왜 남성이 ‘새로움’을 장착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해 주기 위한 ‘개념 없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재현되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남성성이 자주 등장하는 동안, 여성은 미디어 속에서 비중이 축소되거나 사라져 왔다. 동시에 미디어는 ‘여성혐오’적인 양상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여성혐오와 관련된 온갖 논란이 정점에 오른 시기가 바로 지난해였다. 팟캐스트에서 여성비하, 혐오적인 표현을 쏟아냈던 개그맨 장동민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1등 신문’ 조선일보에서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을 공공의 비웃음거리로 삼는 칼럼을 실었고, 자동차 트렁크 밖으로 나와 있는 여성의 맨다리와 그 옆에서 시가를 피우고 있는 남성을 주제로 한 맥심 표지는 ‘나쁜 남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성범죄적 요소를 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맥심 편집장은 오히려 네티즌들의 주장이 과도하다고 맞섰지만 미국 본사가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코스모폴리탄 영국판이 비판적 입장을 내놓자 ‘비자발적으로’ 전량 폐기하고 수익을 환원했다.

육아 예능 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 MBC <아빠! 어디가?>와 이를 이어받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남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덕에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지만, 여성이 일상적으로 하는 가사노동을 ‘낭만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은 오히려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시청자와 대중은 방송을 보고 함께 웃고 즐기는 사이 여성이 미디어에서 배제되고 있는지를 감지하기보다는 여성혐오에 가까운 불편한 이미지로 재생산되거나 혹은 희화화되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데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육아하는 아빠의 모습을 부각해 인기를 끌고 있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런 육아 예능은 집안일에 익숙해지고 아이와 노는 방법을 차츰 알아가는 남성들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이끌어내지만, 그 방식에서 한계를 보인다. 이종임 연구원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남편(아빠)의 가정적인 모습이나 아이와 소통하는 과정을 깨닫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지만 여성의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배제되어야만 남성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완성된다는 점은 문제”라며 “아내(엄마)의 모습은 남편의 희생으로 휴가를 보내거나 아이의 변화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방식으로만 등장했으며, 육아 과정은 ‘여행’과 ‘놀이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한 ‘체험’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남성성’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이 맡아 오던 역할을 수행해 여성의 ‘필요성’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여성들의 ‘힘든 노동’인 요리를 특수 상황에서 재현하며 ‘힘든 놀이’로 바꾸고, ‘차줌마’(차승원+아줌마)와 ‘참바다’(바닷일을 하는 가장을 의미하는 유해진의 별명) 등 성 역할을 입히며, ‘브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중년부부’ 관계를 탄생시켰다. 이종임 연구원은 “남성 출연자 중심의 방송에서는 남성과 남성 간의 관계를 통해 가정을 연출해, 여성 출연자의 필요성을 배제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종임 연구원은 “최근 몇 년 새롭게 제작되고 있는 프로그램 속 남성성은 탈권위적인 남성, 여성적 감수성을 표출하는 남성 등에 집중돼, 가부장의 위기를 남성의 새로운 영역 개척과 이미지 구성으로 돌파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면서도 “이런 재현방식이 진행될수록 여성의 모습은 제한적으로 묘사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여성되기’나 ‘역할수행’의 어려움을 전혀 담아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등장한다고 해도 ‘어려움’은 은폐되고 낭만화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성혐오의 일상화가, TV에서는 여성의 배제와 비가시화가 두드러진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젠더관이 최근 몇 년 새 지속되면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문제적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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