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신당창당 구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안철수 의원은 과연 그답게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는 등의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발표한 입장에 최소한의 ‘정치적 고려’가 있다는 점은 힌트다. 이 힌트를 근거로 해서 문제를 잘 풀어보면 안철수 의원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는 건 비극이다.

안철수 의원 입장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새누리당도 아니고 제1야당도 아닌 중도적 정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내놓은 키워드를 보면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으로 보자면 ‘새누리당’은 안 된다는 얘기다.

안철수 의원은 또 “청산해야 할 사람들과는 연대하지 않는 정당을 만들겠다”고도 말했는데, 이는 그가 탈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집권 할 수도 없고 집권 해서도 안 되는 당”이라고 말한 바를 상기하게 한다. 안철수 의원은 “부패에 단호하고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지 않고, 수구적 생각을 갖지 않은 모든 분들과 함께할 것”이라고도 밝혔는데, ‘수구적 생각’이라는 대목을 빼면 이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에 동원했던 단어가 그대로 다시 등장한 것이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치세력화 기조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의원이 이날 드러낸 스탠스는 애초 예상된 것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독자적인 신당 추진이 야권 분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화된 것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선거연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단호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가 추진할 신당이 제1야당의 전통적 주요 기반인 수도권과 호남지역에서 그나마 위력을 발휘할 걸로 예상된다는 점을 돌아보면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해진다.

안철수 의원이 이런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추진하는 신당이 기존 야권 지지자가 아닌 이른 바 ‘무당파’의 지지를 주로 받을 수 있을 걸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혹자들은 안철수 의원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내 중도파 비주류들을 모아 ‘중도 제3정당’을 만드는데 성공하는 희망 섞인 시나리오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정치지형은 ‘양당+α’ 구조에서 ‘진보-중도-보수’의 삼분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당장 여론조사 결과의 추이만 갖고 한 정치세력의 중장기적 성과를 예측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선거의 결과라는 대목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면 지금 20%의 지지율을 얻는 어떤 세력이 존재한다고 해도 실제 선거가 치러질 경우 그만큼에 해당하는 득표를 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는지에 따라 득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박빙·초결집으로 치러질 수도권 지역구의 상황을 가정해보면 이게 어떤 상황인지 대충의 그림이 그려진다. 무당파의 상당수는 당장의 여론조사에는 ‘중도’로 해석되지만 양당제적 구도에서 실제 선거에 돌입할 경우 어찌됐건 지지정당을 정한다. 선거를 상정하고 보면 이 무당층의 상당수는 어쨌거나 새누리당 지지자이거나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이다. 이런 환경에서 ‘새누리당-제1야당-안철수신당’의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 여당의 분열이나 제3세력의 강화보다는 야권의 분열과 새누리당의 승리라는 결과가 될 확률이 높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안철수 의원이 ‘개헌선 저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 의석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게 내년 총선의 목표라고 강조하였는데, 새누리당이 그간 내세워 온 목표가 180석 정도이고 여기에 야권의 찬성론자들을 더해 개헌을 하겠다는 구상이 언급된 바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즉, 새누리당의 의석을 더 빼앗는 효과보다는 자신들이 ‘제1야당’의 지위에 도전하는 야권분열의 아수라장이 될 것을 스스로도 예상하고 있는 걸로 볼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야권 전체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적으로 그런 ‘새정치’가 필요하다면 다소 간의 절망을 감수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이날 언급한 정책적 전망이 그런 종류의 것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삶이 힘겨운 보통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다”고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부터 강조해왔던 ‘공정성장론’을 재차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들은 중도적 지향을 갖고 있는 정치권 인사라면 누구나 흔히 언급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거니와 구체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과 어떤 차이를 가진다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만한 것도 아니다. 이런 내용의 질의에 안철수 의원은 이번 주 일요일에 정강정책 집중토론을 진행하면 그러한 의문에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런 식의 태도는 여전히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결단’을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고 탈당한 이유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안철수 의원의 이날 입장 발표는 무엇을 위한 탈당이며 무엇을 위한 신당 창당인지 재차 되물을 수밖에 없게 한다. 안철수 의원이 이런 모든 정치적 맥락을 무시하고서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기성 정치에 밀어 넣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존중받을 수도 있다. 신당을 만들더라도 함께 할 사람을 잘 가려야 한다는 조언을 정치평론가들이 내놓은 건 이런 이유다. 그러나 이날 안철수 의원의 입장 발표에 배석한 이들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기성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국회의원으로서, 고위공무원으로서, ‘폴리페서’로서 지금의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온 인물들이다. 결국 이런 ‘그림’이 ‘철새도래지’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신당창당에 대한 이런 모든 비판과 비난, 의문을 걷어내고 남는 단 하나의 근거는 안철수 의원 본인이 언급하고 있는 ‘정권교체’, 즉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 하나뿐이다. 정치인의 권력 의지를 가지는 것을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그 정치인이 가진 역량의 문제이다. 안철수 의원이 자신있게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국민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것, 단 하나 뿐이다. 그 유일한 당위마저도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는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있다. 그 하룻밤의 꿈에 한국정치 전체의 퇴행이 동반될 수 있다는 건 이 긴 이야기의 가장 섬뜩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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