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즘 개봉하는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이 이른바 슬래셔로 불리는 잔혹한 난도질에 기대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잔혹한 장면이 남발해서 공포영화를 더더욱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공포영화를 뽑는다면 단연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1973년 작품 '엑소시스트'이다.

별다른 잔혹한 장면이 없이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시종일관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고, 악령이 깃든 소녀의 얼굴과 기괴한 동작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공포의 전율은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이른바 심령공포로 불리는 영화 '엑소시스트'는 개봉 당시 실제로 극장 안에서 많은 관객들이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엑소시스트'는 지금도 역대 공포 영화 중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 있다. 2001년에 개봉한 리마스터링 버전을 극장에서 보면서 공포의 전율에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영화 <검은 사제들> 스틸이미지
영화 '검은 사제들'은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영화 '엑소시스트'를 떠오르게 하였다. 12개의 악마들 중 하나가 서울에 잠입했고 그 악령이 우연히 한 소녀의 몸속에 들어간다는 과정이 '엑소시스트'와 유사하다. 여기에 천주교 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구마단이라는 설정을 추가하여 흥미를 불러 일으켰는데 과연 '엑소시스트'와 어떤 차별성이 있을지 궁금증이 유발되었다.

일단 소재는 비슷하지만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가능하면 지나친 공포에 몰입시키려 하지 않은 배려가 느껴졌다. 그 장치는 바로 퇴마사로 활약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들이다. 신부답지 않게 술과 담배는 기본이거니와 거친 말도 마다하지 않는 김신부 역의 김윤석과, 성가대 연습이 싫어 김신부를 돕는 일에 참여하는 최부제 역의 강동원 모두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신부의 이미지에서 일탈하여 예기치 못한 유머코드를 선사한다.

만약 두 캐릭터가 신부의 기본적인 이미지에 충실했다면 영화의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지고 공포감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중심인물을 마치 버디 액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가깝게 배치하면서 영화의 오락성은 한층 강화되었다. 신부 옷을 입었지만 김신부와 최부제 콤비는 마치 헐리웃 블록버스터 '리썰웨폰'의 멜 깁슨-대니 글로버 콤비나 '맨인블랙'의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 콤비의 케미를 떠올리게 한다.

▲ 영화 <검은 사제들> 스틸이미지
그래도 두 배우 모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영화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고 거짓말 같은 설정에 현실감을 강하게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의 발견은 자신의 몸에 악령이 깃든 영신 역을 연기한 박소담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악령이 깃들여진 모습을 신들린 듯이 표현하는데 영화 '엑소시스트'의 린다 블레어 못지않은 공포감을 선사한다.

심령공포와 퇴마사라는 흔치 않은 장르이지만 영화의 표현방식은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본 듯한 설정을 많이 차용하여 생경한 느낌을 많이 줄여준 것이 영화의 흥행 요인이라 여겨진다. 특히나 김윤석과 강동원 콤비 캐스팅은 영화의 관심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 거부감 없이 몰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할 때 어떻게 하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영화 '검은 사제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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