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성동일의 큰딸 성보라(류혜영 분)는 그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운동권 학생이다. 없는 집안에서 용케 서울대를 들어간,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기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라는 시대의 열망에 따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보라가 데모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성동일과 이일화는 눈이 뒤집어진다. 안다. 딸 보라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가면 반병신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기에, 행여나 딸이 잘못될까봐 부모 가슴은 타들어간다.

‘월동준비’라는 부제가 붙은 <응답하라 1988>의 7회의 또 다른 테마는 ‘희생’이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희생’은 가족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우 엄마(김선영 분)에게는 온전한 양말 한 켤레 없다. 죄다 헤지거나 구멍이 송송 뚫린 양말뿐이다. 선우네보다 형편이 나은 정환이네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여보, 엄마를 찾는 세 남자 때문에 정봉 엄마(라미란 분)은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여기에 보라 엄마(이일화 분)은 큰딸이 민주화 운동에 연루되어 있어 속이 말이 아니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슈퍼맨이라고. 본래 이름대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는 그녀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가족이다. 때로는 과도한 자식 사랑이 지탄받을 때도 있지만, 엄마의 사랑과 희생이 있기에 세상 모든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은 80년대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숭고한 희생을 말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고 하나, 여전히 서울의 주요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절반의 민주화. 그래서 대학생들은 6월 민주항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거리에 나섰고, 진정한 민주화를 바라는 자신들의 열망을 표출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갈 것 같은 두려움, 힘들게 들어간 학교에서 제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자신 때문에 속 끓일 부모님. 그러나 1980년대의 성보라들은 그 많은 걱정과 고민을 뒤로하고 거리에 나섰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민주화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27년 전 시대상을 소환해내는 방식은 감상적이다. 가족, 이웃 간의 사랑이 극 전면에 등장하며, 웬만한 문제는 가족의 이름으로 용서되고 해결된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봉합일 뿐,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절 어두웠던 시대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1988년 서울 변두리 골목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픽션극이다. 1988년을 대표하는 어떤 이야기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할지는 철저히 연출자와 작가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응답하라 1988>은 최루탄 가스에 힘겨워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청춘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온몸을 내던진 어머니의 희생과 결부되어 더욱 뜨거운 눈물과 감동을 자아낸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전력 때문에 경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대학생의 위기와 그런 딸의 체포를 막고자 폭우 속에서도 애걸복걸하는 엄마의 눈물. 그 한 장면에 서울올림픽,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가려진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보라 엄마와 성보라를 호명한다.

그런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의 노력에도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현실. 여전히 우리는 1980년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1988년을 빌려,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생의 가치를 일깨워준 <응답하라 1988>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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