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지난 해 9월, 당정협의를 거쳐서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우선 매매시장 활력 회복을 통해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하여 전월세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공공부문의 역량은 장기임대주택 공급,, 주거비 부담 완화에 집중하되, 재정여건 등을 고려하여 민간의 임대시장 참여도 적극 유도해나가기로 했"(국토교통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 2014. 9. 1.)다고 밝혔다. ‘911 대책'은 2013년 주택구입자금 확대를 위해 DTL/LTV 완화를 골자로 하는 <4.1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이후 올해 9월 <주거안정대책>까지 총 8번 발표한 주거정책 중에 7번째에 속한다. 이제껏 박근혜 정부의 주택정책은 ‘각종 대출 완화를 통해서 주택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것'과 함께 ‘공공공급을 통제하더라도 민간건설사의 분양 및 주택사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작년 9월에 발표된 방안 역시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규제 완화 방안을 골자로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안이 지난 8월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률의 개정에 따라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이하 도정조례)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었다. 굳이 지난 8월 통과된 도정법의 기원을 밝힌 것은, 현재 서울시가 입법예고한 도정조례의 한계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의 도정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8월 도정법, 무엇을 담고 있었나

▲ 박근혜 정부가 작년 9월 1일에 발표한 내용 중 대부분이 올해 개정된 8월 도정법에 포함되었다.

작년 9월 1일 대책에 포함된 주택대량공급의 정책수단이었던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해서 LH 등의 대규모 택지개발의 근거를 없애고 공공주택법 및 도시개발법을 통한 중소형 택지 위주의 개발로 유도하는 방안이나 사업시행자에게 특정 비율 이상의 기부채납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은 민간건설사의 주택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기존 청약제도를 바꿔서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감점 조항을 폐지하고, 청약시 우선순위에 들어갈 수 있는 무주택자 기준에 공시가격 1.3천만원 이하 주택 소유자도 포함시켰다. 그러니까, 애초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공급을 위해 운영되던 기존 청약제도를 통해서도 수요가 잘 생기지 않으니까 그나마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기존 소유자의 분양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핵심적인 사항은 재건축 시장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대책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을 보면 첫째, 재건축 연한을 강제적으로 30년 이하로 만들었다. 다음으로 주관적 평가가 용이한 주거환경 평가기준도 2배 이상 높여서 안전진단 기준도 풀었다(기존: 구조안전성(40%), 건축마감 및 설비노후도(30%), 주거환경(15%), 비용분석(15%) -> 주거환경(40%)). 이렇게 되면 안전진단은 기술적인 평가수단에서 재건축 선호도 조사로 바뀌게 된다. 세번째로는 나름 민간공급을 통해서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던 기준을 낮추고 소형 평형 주택의 의무비율도 하향 조정했다. 통상 세대수 기준으로 민간주택사업자가 100채의 주택을 지으면, 이 중 20%는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하고 해당 지역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일 경우에는 60%를 85제곱미터 이하 주택으로 공급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각각 20%에서 15%로 축소했고, 연면적 기준 자체를 없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매수를 해야 했던 임대주택을 줄이고 기존 일반분양주택 비율을 높일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진단 통과 후 10년이 지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안전진단을 재실시하여 등급을 하향 조정하도록 했다. 결국 공공지원의 내용은 빠진 채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재건축을 하라고 등을 ‘적극적'으로 떠밀겠다는 의도다.

재건축 연한 조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행령이나 규정을 통해서 개정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정법률은 간단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이를 정부입법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도정법 개정안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기획예산처 장관이었던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1월에 발의한다.

▲ 지난 8월 도정법 개정사항. 전체 16개 개정안이 상정되었고 7월 14일 대안으로 회부되었으며 이것이 8월 11일 최종적으로 수정되어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해당 법률안이 공포된 것은 9월 1일부터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지난 8월 도정법 개정논의에 상정된 동법 개정안이 16개에 달했고 여기에는 정비구역 해제 요건을 완화하고 조합원 수 뿐만 아니라 토지면적의 ½ 이상의 소유자도 조합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며 조합해산 시에 사용 비용 일부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한 김경협 의원안(2012.8.)부터 지역난방시설 설치 비용에 대한 지방정부 지원을 명시하는 김태년 의원안(2015.4.)까지 3년간 발의된 개정안들이 포함되었다. 사실상 정부나 여당 입장에서는 작년 9월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를 해야 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많은 도정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묶어 놓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례 이렇게 개정안이 많을 경우에는 위원회 대안이라는 방식으로, 최대 공약수를 뽑아내 별도 개정안을 만들고 나머지 법률안은 폐기한다. 이 과정을 거친 것이 올해 8월 개정된 도정법이다.

이 개정안에는 재건축 연한을 축소하는 것, 안전진단을 재실시하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되었고 그 외에도 기업형 임대주택에 요건을 완화하고, 일몰 사업의 경우에도 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되었다. 그러면서, 공공관리를 공공지원으로 명칭 변경하면서 사업시행인가 전에 시공사를 선정할 수도록 했으며 조합원 의결시 대리인을 통한 의결을 할 수 있도록 했고, 무효나 취소가 되어서 조합설립을 다시 신청할 경우 기존 동의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이번 도정법 개정안의 이런 내용은 수많은 지역 갈등을 야기했던 기존의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그나마 조금씩 개선 시켜왔던 내용을 일시에 후퇴시킨 것이고,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든 뉴타운 재개발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정책의지를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미 요건상 법률에 충족되지 않아 해산된 조합의 설립 동의서를 전혀 다른 조합의 설립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조합설립 자율권을 해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용인된 반면에, 조합해제 등에 관련된 사항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시도지사에 의한 직권해제 조항이 명문화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조례 등의 위임사항이 없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 부분이 개선되었다. 하나는 정비구역지정에서 사업시행인가 신청까지 5년, 추진위에서 조합설립까지 2년, 조합설립에서 사업시행인가까지 3년 내에서 일몰하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되었다. 또한 기존의 ‘정비사업의 시행에 따른 토지등소유자의 과도한 부담이 예상되는 경우' 및 ‘정비예정구역 또는 정비구역 추진 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시도의 조례로 정하도록 명시해, 지방정부의 자체적인 기준에 의해 뉴타운 재개발 사업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절충은 사실 작년 9월 정부의 규제완화를 통한 활성화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여전히 지역에서 계속되는 뉴타운재개발 주민들의 갈등과 고통의 해결이라는 점이 상호 절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서울시 도정조례 개정안

사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꾸준하게 뉴타운출구전략을 내놓고 있어왔다. 특히 올해 6월에 ‘뉴타운, 재개발 ABC 관리방안'을 발표해 정상추진, 정체, 추진곤란 지역으로 세분화하여 맞춤형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되는 곳은 지원을 해서라도 되게 하고 안되는 곳은 해제해 다른 정비방법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서울시의 일관된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경기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은 ‘직권해제' 등 적극적인 개입과 조치보다는 여전히 중재자의 역할에만 나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10년 넘게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제로 직권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민들의 요구는 2013년부터 계속되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중요한 공약 쟁점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서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재개발 갈등이 집중된 곳으로, 사업추진을 진행하는 조합 및 시공사 측과 이를 막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이 10년 째 반복된 탓에 사업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 서울시는 지난 6월 기존의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을 체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작년 3월 경기도가 기존의 해제기준에서 주민찬성 50%를 25%로 완화하는 방안을 담은 해제기준을 마련한 것과 대비하면 한참 소극적인 방안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기존 도정법 상의 직권해제보다는 상위법에 명시된 ‘50% 조합해제 동의서 제출'이라는 방법만을 유지했는데, 이는 김문수 도지사 시설 경기도가 자체 조례 및 규정을 통해서 진행한 직권해제 방안보다 한 참 낮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많은 주민들이 경기도의 사례를 들어 서울시에서도 적극적인 직권해제 방안을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서울의 특수성과 더불어 상위법에 명확한 위임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실제로 경기도만 하더라도 해당 기준 완화에 대해 지역 내 10개 정비사업조합 및 추진위가 위헌확인을 요청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경기도지사는 심판대상조항에도 불구하고 실무위원회의 검토, 주민 의견수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의결 등의 절차를 통해서 사업의 경제성, 주택분양률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도시정비구역의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토지등소유자의 25% 이상이 사업추진을 반대 또는 해제를 요청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경기도지사의 재량에 따라 구체적인 집행행위인 도시정비구역 해제처분이 매개되어야만 비로소 청구인들의 권리 의무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심판대상조항은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인정할 수 없다.”(2014헌마288)라는 판단을 내린다. 즉, 해제 요건에 있어 주민동의율을 어느 정도로 낮춰 잡더라도 실제 해제 절차에는 심의 과정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취지를 들었다.

실제로 서울시가 진행한 바 있는 ‘실태조사'에 따라 사업성이 나쁘게 나오더라도, 조합해제 동의율 50%가 넘지 못하면 역설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되는 처지에 묶여왔다. 어렵게 40% 가까이 동의서를 들고서도 내년 1월까지 한시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조합해제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지역이 부지기수다. 잘 생각해보면 관리처분 총회 등 이후 총회 의결정족이 75%이기 때문에, 실제 어떤 지역이든 25% 이상이 반대하면 이후 행정절차 추진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역의 경우에는 “주민들끼리 알아서 해라”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가 나서서 “하자" “말자"는 정책방향을 뚜렷이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사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출발은 서울시가 나서서 하자고 등을 떠민 결과이지 않았나). 이런 뜨뜨미지근한 서울시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주민들이 선택한 방법은 국회에서 직권해제에 대한 구체적인 위임규정을 담은 도정법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앞서 설명한 8월 도정법의 내용이다.

당연히 이제는 서울시가 답해야 되는 처지가 되었고, 그것이 지난 10월 29일 입법예고된 도정조례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앞서 살펴본 8월 도정법의 주요한 내용을 수임하여 개정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도 도정법 개정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재건축 연한을 기존 40년에서 30년으로 낮추고, 기존의 공공관리를 공공지원으로 역할을 줄이고 지원 범위 역시 ‘정비구역 지정에서 관리처분시까지’의 규정을 삭제했다. 전반적으로 서울시가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추기 성안된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 지난 10월 29일 입법예고된 조례안에 대해 11월 9일 현재 92건에 달하는 온라인 의견이 제출되었다. 실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직권해제를 요구하는 지역과 이에 반대하는 지역 간의 대립이 선명하다. 서울시 법무행정서비스(http://legal.seoul.go.kr/legal/front/page/lawmake.html?pAct=lawmake_view&pLawmakeNo=1906)

하지만 직권해제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부분에서 쟁점이 나타난다. 조례 개정안에서 직권해제는 “사업추진에 대한 주민의사, 사업성, 추진상황, 주민갈등 등 및 정체 정도, 지역의 역사 및 문화적 가치의 보전 필요성 등"(제4조의3)을 고려하여 하도록 했으며, 추정비례율 80% 이하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이거나 추진위원장, 조합장의 부재로 장기간 추진위원회 및 조합의 활동이 중단되는 곳, 자연경관지구, 최고고도지구, 역사문화환경 보존구역 등으로 기존 조합의 개발 행위가 중단된 곳을 대상으로 구청장이 사업찬성자 조사를 실시해 찬성률이 50% 이하일 경우 직권해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까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조합이 만들어졌어도 장기간 사업 추진이 되지 않거나 혹은 별도의 경제성 분석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부담이 분명해 보이는 경우에는 시장이 구청장에게 ‘이런 저런 지역은 해제하려고 한다'고 통보하면 구청장이 해당 지역 토지 등 소유자에게 조사를 실시해서 50% 이상이 계속 사업하자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해제하는 절차인 셈이다.

당초 지역 주민들이 요구했던 직권해제 신청절차가 없어 사실상 직권해제 대상지역을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작 주민갈등이 심한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을 대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더욱 아쉬운 것은 소위 한옥마을, 성곽마을 등 서울시가 역점을 두고 ‘보존하려는 지역’을 위해 지나치게 하향식 행정절차로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직권해제 절차 역시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보다는 서울시의 ‘간택'을 받는 것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이 결정하고 공공이 지원하도록 해야

지역 주민들의 오래된 노력으로 도정법이 개정되었고, 서울시장의 의지를 통해서 뉴타운재개발의 직권해제가 가능하도록 법적 권한이 명확해 졌다. 이제는 상위법 운운하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왕에 상위법령의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한다면, 좀더 개정의 취지를 명확하게 담는 것이 좋았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투표 방안이다. 알다시피 최초 정비구역 지정부터 지금까지 해당 사업은 언제나 ‘토지등소유자'만을 위한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실제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투기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에 의해 사업방식이나 추진형태가 변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상이한 토지등소유자라는 말은, 그 내의 실거주자와 투자목적 구매자 간에 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오히려 실거주자 중심의 의견수렴 방식과 활동 지원을 고민하면서 개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서울시가 어정쩡한 행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로 사업전환까지 제시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정조례 개정안은 기존 조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 맞지만, 과연 현실성있게 집행될 수 있겠나 싶은 우려가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현재 도정법 상 조합해제가 가능한 시점이 내년 1월 말까지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직권해제의 내용은 좀 더 실효성있게 고민될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하면, 첫번째는 어찌되었던 주민들 스스로 직권해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기존 조합에 의해 독점되었던 지역내 흐름을 바꿀 수 있으려면 기존의 비대위 활동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을 통해서 리더쉽 교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년 1월로 종료되는 조합해제 신청을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사업 해제 방안이 이번 직권해제 조항에 담겨져야 한다. 그래야 내년 1월이 지난 후에도 사실상 이도저도 아니게 멈춰 있는 장기 갈등지역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현재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 간에 치킨 게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양쪽 주민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되고, 공공의 지원을 감당해야 하는 서울시 역시도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이해관계자는 계약관계를 통해서 보호받는 정비사업체나 시공사 뿐이다. 따라서 기존의 해제냐, 지속추진이냐는 선택지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해제를 통한 다른 재생사업의 추진인가 아니면 지속추진을 통한 기존 도시정비사업의 추진인가라는 사업 종류에 대한 선택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주민들이 직접 직권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의 마련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번 서울시 도정조례 개정안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여전히 직권해제의 선택 및 판단을 서울시 내부 행정절차로 독점하는 구조인데 정말 양 측의 갈등을 제대로 조정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서울시는 여전히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와 같이 직권해제도 자신들의 권한 내 사무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번 서울시의 도정조례는 한걸음을 대딛은 것인가 아니면 제자리 걸음을 한 것뿐인가 모호할 밖에.

김상철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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