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이 아파트 투기 죽이기,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퍼부어왔다. IMF사태를 뚫고 태어난 김대중 정권은 고용창출을 내세워 모든 투기억제책을 일시에 풀었다. 투기광풍과 함께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집값 폭등과 힘겹게 싸우다 지쳐 퇴장했다. 이어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잠금장치를 모조리 열어젖히면서 투기망령을 부르는 굿판을 벌이는 모습이다. 역대정권이 정책의 후유증과 부작용은 뒷전에 둔 채 근시안적인 대책에 매달려 국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경제파탄이란 난제를 안은 김대중 정권은 실업구제를 위한 경기부양이 화급했다. 그래서 주택경기 부양에 매진했다. 1970대 이후 역대 정권이 투기망령을 가두려고 채웠던 온갖 족쇄를 앞뒤를 가리자 않고 한꺼번에 풀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아파트 투기가 저금리을 타고 광풍을 일으켰다. 김 정권이 기겁해 뚜껑을 닫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결국 김 정권의 정책실패가 노무현 정권의 덜미를 잡은 꼴이 되고 말았다.

▲ 한겨레신문 12월9일자 30면
노 정권이 투기를 잡는다고 몸부림쳤지만 그것은 시장이 아닌 유령과 사투를 벌이는 형국이었다. 투기억제책을 내놓아도 번번이 시장이 이반하여 광풍만 드세졌으니 말이다. 병인도 똑바로 모른 채 잘못된 처방에 매달린 꼴이었다. 당시 500조원 이상의 부동자금이 갈 곳을 잃고 헤매는데 거꾸로 금리를 내렸다. 결국 부동자금한테 갈 길을 터줘 집값, 땅값을 들쑤시게 만들었다. 여기에다 정권실세들이 돌아다니며 허튼 소리나 늘어놓아 정책신뢰를 더욱 추락시켰다.

이 나라에서 보통사람의 재산 모으기란 아파트 평수 늘리기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세제개편에 매달렸다. 순진하게도 주택개념을 ‘소유’가 아닌 ‘거주’로 바꾼다는 발상이었다. 그래서 보유세를 크게 올리고 1가구 1주택에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강화했다. 그것도 모자라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세금이 부담스러우면 살던 집을 팔고 셋방살이로 나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공급이 늘어나고 수요는 줄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세금폭탄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중과세 정책을 밀어붙인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당시 저금리에 편승한 부동산 투기는 세계적 현상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영국 등 주요국가에서는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투기가 진정세로 돌아섰다. 노 정권은 반대로 내렸다. 또 각종 개발계획을 쏟아냈다. 도시형태만 해도 40여개나 된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지식기반도시도 모자라 수도권 8개에 신도시를 짓는다며 삽질했다. 여기서 풀린 토지수용 보상비가 투기자금에 가세했다. 병세가 위독하면 때로는 극약처방도 필요하다. 막상 아파트 원가공개, 분양가 상한제는 막판까지도 고개를 졌다 실기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작년 봄부터 멀리서 쓰나미처럼 덮칠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 사이 ‘747’을 띄운다며 허황한 꿈에 젖어 9월 외환위기설을 괴담으로 치부했다. 경기가 급속하게 냉각하고 산더미마냥 쌓인 미분양 아파트가 건설회사의 숨통을 죄자 다급한 모양이다. 재건축 문턱을 헐어내고 투기 빗장을 모조리 풀기에 바쁘다. 투기라도 살려 건설회사의 집단도산을 막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요진작을 통한 주택경기 부양으로 건설회사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가격이 하락세를 타고 있어 돈이 있어도 안사고 은행대출이 막혀 돈이 없어서도 못 산다.

미분양 자금 50조~60조원, PF대출(개발금융) 73조원은 선택과 집중에 의해 선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그 해답은 주택정책이 아닌 금융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투기억제책은 발동장치(trigger system) 같아 잘못 건들면 발사한다. 과거정권의 잘못된 전철을 무서워하라.

<이 글은 경인일보·경남도민일보 2008년 12월2일자, 한라일보 12월4일자, 충북일보 12월5일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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