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사청문회만 남았다. 지난 26일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의 사장 면접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 전부의 표를 거머쥐며 최종 1인이 된 고대영 후보는, 한 달도 되지 않아 KBS 문턱까지 입성했다. 미디어스는 국가기간방송사이자 공영방송인 KBS의 향후 3년을 책임질 KBS 사장을 선임하기까지의 ‘막힘없었던’ 한 달을 되돌아보았다.

‘최선의 후보’를 뽑기 위한 노력, 번번이 좌절

이번 사장 선임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선의 후보’를 뽑기 위한 어떤 시도나 노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류 심사부터 면접, 임명제청까지 사실상 ‘최종 임명’을 제외한 전 과정에서의 권한을 여당 성향 중심의 KBS 이사들이 독점해 생기는 한계와 부작용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다음달 23일 조대현 전 사장의 임기 만료가 예고됨에 따라, KBS이사회는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KBS 차기 사장을 공모했다. 공모 결과, KBS 전·현직 인사 12명을 포함해 총 14명이 지원했다. 이 중 10명은 지난해 7월 보도개입 사실이 드러나 해임된 길환영 사장 잔여 임기를 채울 보궐사장 공모 때에도 지원한 인물들이어서 화제가 됐다. (▷ 관련기사 : KBS 사장 공모에 조대현 고대영 홍성규 등 14명 지원)

KBS이사회는 사장 공모 마감날인 지난 7일 이사회 회의를 열어 ‘후임 사장 임명제청을 위한 절차와 방법의 건’을 논의했다. 이때 야당 추천 이사들은 사장 선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사장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 구성 △사회적 의견 수렴 토론회 개최 △사장 선임 기준 명시해 공통질문으로 반영 △특별다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선임 기준을 명시해 공통질문으로 반영하자는 제안만 수용됐고, 나머지는 모두 ‘부결’됐다. 여당 성향이 다수를 점한 7대 4 구조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사추위는 여야 구도가 뚜렷한 KBS이사회에서 벗어난 ‘독립된 기구’에서 사장을 추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회에 제출된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의 법안을 보면 사추위원을 △국회 3인(여성 1인 이상) △한국언론·방송·언론정보학회 추천 3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추천 1인 △KBS노동조합 추천 1인 △KBS 시청자위원회 추천 1인 △방송 관련 시청자 단체 추천 2인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학계, 시민사회, 시청자의 의견이 두루 반영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관련기사 : KBS, 공영방송 사장은 어떻게 뽑혀야 하는가)

사회적 의견 수렴 토론회 역시 사추위와 마찬가지로 각계의 폭넓은 제언을 받아들여 ‘더 나은 후보’를 뽑는 방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여당이사들은 토론회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후보들이 언급될 경우 선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오히려 공정한 사장 선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야당이사들이 지난 15일 KBS 양대 노조, 4대 협회(경영·기자·방송기술인·PD), 언론시민사회 패널을 초청해 간담회를 연 것이 전부였다.

특별다수제는 KBS 사장 선임 등 중요 안건에 대해 재적이사 2/3 이상의 찬성(총 11명으로 구성된 KBS이사회의 경우 8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 의결하는 제도다. 결과적으로 여당이사들의 이해만을 대변할 수 있는 다수결의 한계를 보완해, 여야 양측에게 고른 지지를 받은 후보를 최종 1인으로 선정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 역시 KBS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넘을 수 없는 7대 4의 벽, 면접 대상자도 최종 1인도 결국 ‘여당이사’ 손에서

다수의 힘은 강했다. 여당이사들은 이번 사장 선임 과정 국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장 선임 과정에서 야당이사들이 여러 가지 제안과 주장을 했지만, 결국 ‘표결’이 결과를 좌우했다. 여당이사 7명, 야당이사 4명이라는 근원적 한계는 좀처럼 극복되지 못했다.

▲ KBS이사회

여당이사들은 거침이 없었다. 사추위, 특별다수제, 사회적 의견 수렴 토론회를 거부한 데 이어 19일 이사회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위해 △후보자 중 KBS 본사·자회사 현직 사장(고대영·전진국·조대현)은 후보에서 사퇴시키고 △충분한 검증을 위해 사장 선임 일정을 연장해야 한다는 야당이사들의 의견을 또 다시 부결시켰다. (▷ 관련기사 : KBS 새 사장, 결국 여당이사들 ‘손’에서 나오나)

실제로 공개적인 문제제기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사장에 공모한 다른 지원자들이 문제 삼을 만한 여지는 충분했다. 본사·자회사 현직 사장들은 타 후보들보다 KBS 내부 인물과 정보를 더욱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사장 최종 후보 1인을 선출하는 날짜를 당초 예정됐던 28일에서 26일로 앞당긴 것은 ABU(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방송 산업 발전과 회원사 간 방송 교류를 위해 출범한 방송사 연합체) 총회 출장을 가는 조대현 사장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사장 후보자 선임과 관련한 추가 서류 제출을 요청한 지 하루 만에 5배수 압축한 것도 ‘절차상 하자’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KBS이사회 사무국은 사장 후보 14명에게 △소득금액증명서 △납세사실증명서 △지방세 세목별 과세(납세) 증명서 3종을 내라는 문자를 20일 보냈다. 서류 제출 마감은 23일까지였으나 KBS이사회는 이틀이나 앞선 21일 바로 면접 대상자 5명을 추렸다. 14명에 대한 서류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영 후보가 최종 1인이 된 것도 여당이사들의 작품이었다. 사장 선임에 대한 거의 모든 제안이 수용되지 않자 야당이사들은 결국 ‘이사회 일정 전면 보이콧’이라는 수를 택했다. 그러나 여당이사들은 ‘굳이’ 야당이사들을 사장 선임의 장으로 이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당이사들은 21일 이사회에서 1시간 여 만에 14명의 후보 서류 심사를 끝내고 표결까지 해 면접 대상자 5명을 가려냈다. 후보 1명당 이사들이 심사하는 데 들인 시간은 평균 4분에 불과했다. (▷ 관련기사 : KBS 사장 심사, 한 명당 4분이면 끝? 이사회 졸속 처리 ‘도마’)

심사 방법도 단순했다. KBS이사회가 제시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비전과 철학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에 대한 신념 △KBS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나갈 경영능력과 리더십 △국가기간방송 KBS에 걸맞은 도덕성 등 4가지 기준에 맞춰 점수를 매기고 다득점자 5명을 뽑은 게 아니라, 1인 2표를 행사해 뽑았다. 그렇게 해서 압축된 강동순·고대영·이몽룡·조대현·홍성규 5명의 후보는, 지원 당시부터 KBS 내부는 물론 언론시민사회에서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들이었다.

▲ 10월 26일자 KBS <뉴스9> 보도

뒤늦게 야당이사들이 이사회에 복귀해 26일 최종 1인을 뽑을 때에는 11명 이사가 모두 참여했으나 이때도 키는 여당이사들이 쥐고 있었다. 여당이사 7명은 합심이라도 한 듯 고대영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7대 4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청와대의 시나리오가 쓰여져 있었고, 여당이사들이 그에 따라 표를 몰아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 관련기사 : 여당이사 ‘몰표’ 고대영, KBS 사장 최종 후보로 선출)

숨기고, 또 숨기고… 방송법에 명시된 ‘공개’ 정신은 어디에?

지난 7일부터 시작된 KBS 사장 선임 과정은 내내 베일에 싸여 있었다. KBS이사회 사무국은 사장 공모 마감일에 몇 명이 지원했는지 확인해 주었을 뿐 누가 지원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결국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14명의 이름이 드러났다.

KBS이사회는 사장 선임에 관한 논의를 하는 이사회 회의를 전부 비공개 처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28일 <방송법>이 개정됨에 따라, △타 법에 의해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 제한된 내용이 포함됐을 때 △명예훼손 및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 △감사·인사관리 관련 내용으로 공개할 시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때 등을 제외하고 이사회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 됐으나 소용없었다.

방송법 제46조 9항은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사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외를 구체화해 밝혀 둔 것은, 이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일반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KBS이사회는 ‘비공개’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자들과 국민 일반의 접근을 막았다.

면접도 마찬가지였다. 회의가 공개되지 않아 개별 이사들과 접촉해 면접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법에서 ‘공적책임’ 의무가 명시돼 있는 공영방송 KBS의 사장을 뽑으면서 지원 내역, 사장 선임 방법, 면접 내용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것이다. ‘사장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한 KBS 내부 구성원들과 언론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무시됐다.

잦은 불공정 보도 논란으로 보도국장 시절 93.5%, 보도본부장 시절 84.4%의 불신임을 얻었고, 지난해 사장 공모 당시에도 83.6%의 압도적 지지로 ‘최악의 후보’로 꼽히는 등 내부 평판이 좋지 못한 고대영 후보는 거센 반대와 우려 목소리에도 최종 1인으로 안착했다. KBS이사회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대영 후보를 임명제청한 상태다.

남은 관문은 ‘인사청문회’다. KBS이사회 사무국은 최근 고대영 후보를 위한 ‘청문회 준비팀’을 마련했다. 사무국이 주도하되, 청문회에 대비할 수 있는 사내에서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았다. 이달 초 보도본부 선거방송기획단장으로 임명된 장한식 단장을 포함해 7~8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 준비팀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련한다.

고대영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그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는 인사청문회법 제6조 2항과 11월 23일까지인 조대현 사장의 임기를 고려할 때 11월 중순 경으로 예상된다.

▲ 차기 사장 최종 1인으로 뽑힌 고대영 후보에 대한 KBS 내부 구성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KBS 7대 직능협회는 고대영 후보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최종 임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 설치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깃발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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