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자동차노조 배워라?

그간의 경험으로 그럴 줄 알았지만 조금 짜증이 난다. 경제 위기를 극복한다면서 진짜 범인들은 다 뒤로 빠지고 만만한 노동자에게 또 한번 희생해 줄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양새가 애걸이 아니라 훈계조다. 이건 좀 괘씸하다. 사고친 놈 따로 있고 뒷수습하는 놈 따로 있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다.

특히 언론이 신이 났다. 최근 전미자동차노조가 파산위기에 처한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3’의 생존을 위해 그 동안 쟁취했던 권리들을 상당 부분 포기하기로 한 것을 둘러싼 보도들이 그렇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 신날 일은 아닐 것인데 이들 기사를 보고 있자니 아주 신이나 죽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단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조선일보>가 있다. 제목부터가 아주 선정적이다. ‘“일자리만 지켜달라”고 무릎 꿇은 미(美) 자동차노조’-(12월 6일치 사설)-

▲ 조선일보 12월 6일치 사설
조선일보는 “UAW는 조합원 46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로 꼽힌다. 그 막강한 힘으로 1970년 67일 파업, 1998년 54일 파업 등을 이끌며 별의별 황당한 혜택을 챙겨 왔다”며 노조에 대한 반감을 일단 고스란히 쏟아낸다. 그리고 곧바로 하고 싶었던 본론으로 들어간다.

“노조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국가 경제가 함께 결딴난다는 점이다.(중략) …현대차 노조엔 민투위, 민노회, 민혁투, 민주현장처럼 ‘민주’ 자를 집어넣은 파벌이 7개나 된다. 이들은 국가 경제는커녕 자기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다. 노조원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기네 계파가 어떻게 하면 힘을 쓸 수 있느냐에만 골몰한다. (중략)…이런 식으로 가면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빅3 꼴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리하자면 경제위기는 ‘파벌 싸움만 하고 회사나 국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노조’ 때문이고 계속 그딴식으로 가면 미국 빅3꼴 난다는 훈계 내지는 협박이다. 설마 대 조선일보가 지금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이렇게까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진 않을 터. 제목처럼 노조는 일자리만 지켜달라 애걸하는 때가 올 것이니 어서 무릎 꿇으라는 메시지다.

조선일보만큼 노골적이진 않지만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도 지난 5일 ‘美 자동차 노조가 주는 교훈’이라는 연합시론을 통해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파산 위기에 몰린 건 물론 노조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살짝 구멍을 만들긴 하지만 “세계 시장을 지배하던 미국 자동차 산업을 붕괴 위기로 내몬 주범 중 하나로 단연 노조가 꼽힌다”고 단언한다. 결론은 역시 우리의 자동차 노조가 배울 점. 지금까지 노조가 회사의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과감히 개선책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 서울경제 12월 5일자 데스크칼럼
<매일경제>는 이날 ‘고개숙인 미국 車노조 “살려주세요” ’라는 기사에서 아예 “미국 자동차 빅3 ‘발목’을 잡고 있는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드디어 나섰다”며 발목을 잡았다는 점을 기정사실화 했다. 같은 날 <서울경제>는 데스크 칼럼 ‘빅3는 꿈에서 깨려는데’를 통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 이유는 “‘이기적인 노조’와 ‘무능한 경영진’의 합작품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역시 현대차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은 이기적인 노조와 무능한 경영진에 둘러싸인 빅3의 이 같은 갈지자 행보 덕분에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시장을 상대적으로 쉽게 파고들 수 있었다. (중략)…안타깝게도 현대차는 그동안 마치 ‘또 다른 빅3’ 같은 행보를 보여왔다. 생산라인 조정조차 ‘소단위 이기주의’에 휘둘려왔고 주변의 경제환경과 무관하게 툭하면 파업깃발을 올려세웠다.(중략)…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변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순간이 바로 현대차 위기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뭐 노동조합 탓이라고?…자동차 산업 위기의 진짜 원인

정말 그런가. 지금의 위기가 노동조합 때문인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언론의 호들갑처럼 노조 때문인가.

누구나 알다시피 지금 미국자동차 산업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금융위기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전에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SPM)가 확대되며 부동산 투기화로 이어지고, 투자은행들이 앞 다투어 신용대출을 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문제가 발생,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금융자본의 과도한 이윤추구 욕망이 금융위기를 불렀고 금융위기는 급기야 실물경제를 덮쳤다.

위기를 맞고 있는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을 단순히 제조업 자본으로 봐서는 안된다. GM은 생산기반을 가지고 있는 금융화된 자본이다. 금융세계화의 거품이 빠지면서 위기가 온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금융위기 전에도 이야기됐다. 이미 자동차산업은 전 지구적 과잉생산체제였다. 미국의 거대 자동차회사가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자동차시장이 포화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이 마치 노조 때문이라는 주장은 유치하다.

언론들이 노조의 이기적 행태라고 부각시키고 있는 유산비용(legacy cost) 역시 마찬가지다. 퇴직 후 퇴직자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보장받았다는 질타다. 노동자들이 왜 퇴직 후 의료보험 혜택까지 보장받으려고 투쟁하면 안 되는지 묻지 않는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살인적으로 유명하다. 평생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도 실직이나 퇴직을 하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차라리 미국 의료보험제도상의 결점을 지적하고 우리의 의료보험이 나아갈 길을 살펴보는 것이 언론의 역할에 합당하다.) 론 게텔핑거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노동자들을 자동차산업 부실의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것 같다”면서 “임금 및 퇴직자 혜택은 생산단가의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다시 우리 이야기다

지금 현장의 분위기는 최악이다. 자동차 제조업체를 비롯해 대공장들의 휴업과 감산이 잇따르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신청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고액연봉’ 소리를 듣게 해줬던 특근 휴근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고통스럽다. 노동자들은 수순으로 따라올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슴을 죄인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펀드니 증권이니 투자했다 그 마저도 거덜났다. 언론과 정부는 슬슬 경제가 어려우니 고통분담을 하자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한 노동자는 울분을 토한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이 현장 노동자들이 일을 안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10년 전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국민이 고스란히 가져갔다. 노동자와 국민의 희생으로 살아난 기업들은 어떤 행보를 걸었나. 그 희생은 잊은 채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해외공장 증설에 열을 올렸고 비정규직을 늘렸다. 자본은 상생을 거부하고 협력업체와 하청노동자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중 삼중의 착취를 통해 그 동안 이윤을 축적해왔다.

▲ <한겨레> 10월11일치 사회면 사진.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웃으며 법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을 실었다.
현대자본이 현대모비스나 글로비스를 통해 중간 착취를 일삼아 온 것은 ‘상생’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지금의 우리 경제의 위기 역시 금융위기로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환투기에 가담했다. 기업들의 여유 자본은 금융투기로 들어간다. 금융위기의 늪에 빠진 기업들이 휘청거린다.

다시 묻는다. 지금의 위기가 정말 노동조합 때문인가? 모든 언론이 훈계하는 것처럼 노조는 각성하고 회사와 상생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줄여야만 지금의 경제 위기를 ‘올바로’ 극복하는 걸까. 지금 상생을 고민해야 할 주체는 오히려 자본과 정부다. 언제나 희생을 딛고 혼자만 살아왔던 자본과 정부가 진정 상생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숙고하기 바란다. 자본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무한질주하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 앞에 와 있다.

진정 언론이 ‘국가’를 걱정하고 ‘경제’를 걱정한다면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감 표출이 아니라 ‘앞으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자본의 규제를 풀어주는 지금의 MB식 경제정책은 서민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지난 IMF 때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되는 희생을 하고 국민의 혈세를 긴급 수혈해 살아난 기업들이 현재 어떤 식으로 사회에 공헌해 왔는지 밝혀줬으면 한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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